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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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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한다는 것은>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이 있다. ‘멈추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며 살았구나.’ 글만 읽어도 느껴지는 저자의 노력과 그 노력이 만들어낸 삶이 파노라마처럼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저자 ‘김보미’는 포스트록 밴드 잠비나이 멤버이자 해금 연주가이다. 중학생 시절 처음 손에 쥔 해금은 어느덧 30여 년이란 세월을 함께 한 동반자가 되었다. 해금으로 이루어진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저자의 삶이 그려낸 발자취를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하나씩 마주하였다. 비록 멈춰있는 활자이지만 어떻게 해금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해금으로 어떤 꿈을 이루어 나갔는지 그 과정들이 머릿속에 선하게 그려지는 생동감을 느끼며 글을 읽어나갔다.


이 책은 새로운 전통음악 세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속에 담긴 저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익히 알고 있지만 생소한 해금과 국악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은 꽤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보다 더 눈에 띄었던 것은 저자가 터득하고 체득한 삶의 태도였다. 저자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러한 태도를 바탕으로 행동해 나갔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저자는 처음부터 해금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판소리가 좋아서 들어간 국립국악중학교에서 필수적으로 선택해야 했던 악기, 그중 해금을 선택한 건 여러 상황들을 고려해 봤을 때 가장 적합한 악기였을 뿐 좋아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좀처럼 해금에 안착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시절을 겪는다.


만약 저자가 여기서 멈추었다면 지금의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여 그것을 무기로 장착한다. 모든 사람은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갖고 있다. 이때 중요한 건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단점만 생각하느라 장점을 잊어버릴 것인지, 아니면 단점을 인정하고 장점을 극대화할 것인지 그건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저자는 친구들보다 손가락 움직임이 빠르지 않아 화려한 테크닉을 요하는 초절기교 과제를 연습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는 연주가로서 단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신 소리 자체에 강점을 지녔다. 여러 감각과 감정들을 소리로 표현하는 것, 소리에 세세한 감정과 서사를 실어 연주하는 것에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저자는 음악에 대한 사유와 이해의 시간을 통해 그 음악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사람이 되면서 해금을 사랑하게 된다.


해금이 가진 매력을 알고 연주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더욱 음악을 사랑하게 되니 자연스레 좋은 일도 따라왔다. 이처럼 자신이 하는 일을, 해야 할 일은 미워한다면 절대 잘할 수 없다. 즐기면서 하는 자에게 오는 이로움은 크다.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 / 만약 내 인생에서 그보다 더 빠르고 친밀하게 해금을 느꼈다면 어땠을까. 그럴듯한 성취를 더 빨리 이루어냈겠지만 기어가듯 움직이던 그 시간 동안 스스로 깨닫게 된 아름다움의 진리나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들은 결코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깨달음은 매우 더디고 괴롭게 찾아오기도 하지만 그만큼 길고 강한 생명력을 가진다."] (p.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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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는 잠비나이 공연을 하는 날들이 지속될수록 공허함이 짙어진다. 잠비나이 활동으로 쓴 음악적 에너지를 다시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산조(민속 음악에 속하는 기악 독주곡)’ 연습. 혼자만의 연주는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되었고 비워져 있는 마음을 채워주었다. 계속된 연습은 산조 음반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부족한 점이 많은 음반이었지만 덕분에 여러 곳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때로는 준비되지 않은 용감한 행동이 좋은 결과를 이끈다.

 

["모든 사람이 알고 있듯이 인생에서 완벽하게 준비된 때라는 건 없다. 시간이 지나며 성장하기에 완벽한 때라고 생각했을지라도 지나고 나면 설익은 과거가 되고 마는 게 인생이지 않나. 아마 그때 그 소리를 남기지 않았다면 영원히 준비만 하다 끝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p.52)


잠비나이는 혁신적인 그룹이다. 전통악기(거문고, 해금, 피리 등)로 연주하는 포스트록은 새로운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전통음악이 가진 이미지와 분위기를 깨부수고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나갔다. 이는 전통을 재창조하는 일이었다.

 

["잠비나이는 이런 방식에서 벗어나 국악기의 소리의 질감이나 음향적 이미지들을 적극 활용하여 음악을 만드는 길을 선택했다. 따라서 전통음악을 연주할 때 금기시되는 노이즈를 과감하게 사용하고, 때론 일부의 테크닉(시김새 등)을 확장시켜 곡 전반에 배치하기도 한다. / 국악기가 제 옷을 입고 당당하게 소리낼 수 있되, 현재 세계적으로 즐기는 보편적 음악 형식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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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음악의 색깔을 새롭게 칠해나가는 과정은 숱한 우여곡절을 만나는 길이었다. 데뷔 초, 국악계의 따가운 시선으로 무대에 오르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홍대 앞 클럽에서 잠비나이 음악을 선보인다. 그리고 신인 뮤지션을 발굴하는 ‘헬로루키’ 오디션에 도전하지만 긴 곡을 연주하는 탓에 세 번이나 떨어지고 만다. 이후 마지막 오디션에서 곡의 길이가 길다는 심사위원의 조언으로 짧은 곡이 탄생한다. 그 곡은 바로 ‘소멸의 시간’. 이 곡은 잠비나이의 미래를 바꾸어 놓는다. ‘소멸의 시간’ 뮤직비디오가 해외에 진출하는 발판이 되었기 때문이다.


첫 해외 공연인 ‘월드 빌리지 페스티벌(World Village Festival)’에서 선보인 연주는 대성공이었다.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성황리에 마친 이 공연을 계기로 네덜란드의 월드뮤직 전문 공연 에이전트 ‘얼스 비트’와 계약을 맺는다. 이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잠비나이의 음악을 널리 퍼트린다.


잠비나이는 전통과 현대를 이어지게 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소화했다. 최근 불교가 하나의 종교라는 것을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처럼 전통도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융합하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가치관도 변화하기에 새로움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뿌리는 지키되 새로움을 주어야 더욱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다. 그것을 잠비나이는 열정과 용기, 도전과 모험, 그리고 집념으로 해 내었다.

 

["모든 새로운 음악은 이전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형식에 당시의 사회상과 음악가 자신만의 감각과 취향이 결합되어 탄생한다. 새로운 음악은 그것을 만들기 위한 특별한 매뉴얼이 있다기보다는 한 음악가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모든 외부적인 요인과 내부적인 요인이 뒤엉켜 생성되는 아주 사적이고도 고유한 결과물이 아닐까."]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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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생각을 나눈다는 건 꽤 근사한 일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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