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다. 좀처럼 가시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추위가 물러서고 본격적으로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유월이 다가왔다. 이 말은 즉 한 해의 절반을 보내게 된다는 말과도 같다. 성실하게 넘긴 하루들처럼 2025년을 맞이해서 산 다이어리도 절반을 향해 갔다.
한 해의 시작을 맞이하며 새로운 다이어리를 장만하는 것은 나에게 일종의 습관같은 것이었다. 굳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지금 나의 취향을 담고 있는 한 권의 책을 스스로에게 설명해 주는 것과도 같았다. 그렇게 심사숙고해서 산 다이어리는 막상 20p도 다 쓰지 못하고 버려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책장의 한편에는 각 해를 대표하는 다이어리들이 한 무더기를 이루었다. 사람의 손길 한 번을 타지 않고 빳빳하게 썩어가는 종잇장들을 보며 이번만큼은 다이어리를 써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2025년의 다이어리를 시작하면서 목표로 둔 것은 간단했다. 꾸준하게 펼쳐보기. 매일 매일의 일을 열심히 작성하는 것도 아니고, 이것저것 붙여가며 꾸미는 것도 아닌, 그저 시간이 날 때마다 열어보는 행위에 집중하려 했다. 그렇게 다이어리와 친숙해지다 보면 그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기록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한 자, 한 자를 채워가다 보니 어느새 5개월이 지났다. 무엇 하나 진득하게 지속하는 법이 없는 나로서는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예쁜 글씨체로 빼곡히 채워져 읽는 맛이 있는 다이어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곳곳에 내 삶의 흔적이 묻어있는 것을 보면 뿌듯함이 들 곤 한다. 이제는 다이어리를 쓰는 나만의 법칙도 생기기 시작했다.
매달의 목표 작성하기
새로 맞이하는 달의 1일에는 그달에 이루고 싶은 목표들을 적는다. 30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해낼 수 있는 것들을 주로 적어 성취율을 높이려고 한다. 따라서 일이나 학업에서만의 계획적인 목표가 아니라 내 삶을 아울러 염원하는 것들을 모두 적는다. 예를 들면 한 달 동안 읽고 싶은 책의 권수나 영화의 개수, 구몬 일본어의 진도, 조성진 티켓팅 예매하기 등등…. 목표들을 목적어로 하여 문장을 만들었을 때 “무엇을 해야 한다!”처럼 압박감이 느껴지는 것들은 되도록 세우지 않으려고 한다. 도리어 “무엇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바람을 가지다 보면 부담감도 덜하고, 이루어 냈을 때 뿌듯함도 배가 된다.
다이어리를 피는 것이 습관이 되자 왜 지금까지는 열심히 쓰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이 줄곧 들곤 했다. 그렇게 과거를 되짚어보자 다이어리에 적은 무언가를 이뤄내야만 한다는 부담감이 주된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단기간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목표나 실현 가능성이 적은 계획들을 세우고, 시간이 지나고 가능성이 낮아질수록 아예 다이어리 자체를 쳐다보지 않는 방향으로 실패를 외면했다. 해야 한다는 것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목표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니 다이어리가 더 이상 밉지 않았다. 못 이뤄냈으면 다음 달에 다시 시도해 보아도 괜찮고, 아니면 실패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그 자체로도 만족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한 일을 간단하게 기술하기
다이어리의 달력 칸에는 간단하게 오늘 한 일들을 적는다. 사소하게 무엇을 했고, 어떤 것을 먹었고, 누구와 만났는지. 일기용으로 짜인 큰 칸에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줄글로 작성한다. 그러다 보니 다이어리 곳곳에는 비어 있는 칸들이 눈에 뜨이게 된다. 그러나 아무렴 어떤가. 아무것도 작성되어 있지 않은 날은 평탄한 날이다. 엄청나게 큰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아 나의 기분도 안정적일 수 있는 날. 그렇게 스스로 다짐하고 나니 새로운 일이 벌어지면 다이어리에 기록하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다. 남에게 말 못 할 것들이면 다이어리에 쏟아버리면 마음이 후련해지는 기분이다. 과거에 사로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보단 이렇게라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내일을 맞이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
올해의 버킷리스트 작성하기
다이어리 맨 뒷장에는 백지가 있다. 아무런 형식 없이 덩그러니 비어 있는 그 공간에 올해 안으로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들을 작성했다. 25년을 끝내고 2026년의 내가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를 생각해 보며 떠오르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써 내려갔다. 그렇게 쓰인 것들은 어떤 틀에도 갇혀 있지 않았다. 일반적인 규격에서 벗어나 나만의 것들을 만들다 보면 개성이라는 것이 생겼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의 실체를 만들어 나가다 보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 내고 싶은지 저절로 생각하게 된다. 구체성을 띠게 된 것들은 더 이상 지나쳐가는 상상 속의 유희거리가 아니었다.
새해의 첫날이 아니더라도, 버킷리스트는 심심할 때마다 펴보곤 했다. 새로운 것들이 떠오르면 추가하기도 하고, 약간은 현실에 맞게 수정도 했다. 그러다 보니 떠오른 것이 있다. 생각보다도 많은 것을 벌써 이뤄냈다는 것이다! 시작하기 전에는 해낼 수 있을까? 싶던 것이 막상 해보고 나면 별것도 아닌 경우가 많았다. 그 속에서 몰랐던 재미를 얻기도 했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것들도 생겨났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의식중에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체감되는 순간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아직 이루어 내지 못한 것들이 많다. 수많은 버킷 리스트 중에서 유별나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일본어 자격증 따기나 마작 배우기, 차를 끌고 안반데기에서 별을 보며 하룻밤을 보내기 등등. 마음속으로 되뇌기만 했던 것들을 실현하는 미래는 멀게만 느껴진다. 도달할 수 없는 저 먼 곳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별거 아니네! 라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분명 올 것임을 안다. 그때가 오게 되면 어떤 목표를 가지게 될지는 나조차도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조금 더 멋진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