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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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자연에는 어떤 경이가 있다. 청록의 깊고 넓은 바다나 웅장하게 솟구친 지형을 보면서 우리는 자연에 쉽게 압도된다. 그러나 자연의 경이로움은 그 거대한 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서, 우리는 자연이 선물한 아주 작은 생명, 예컨대 콘크리트 벽 틈을 비집고 수줍게 피어난 민들레나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채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체에도 금세 마음을 뺏기고 만다. 자연에 속한 생명체로서 자연을 예찬하고 경외감을 표하는 일은 문학의 오래된 갈래 중 하나다.


그리고 어떤 소설이 있다.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압도적 감각을 쉽사리 잊고 살아가는 우리를 일깨우는 소설. 그러나 자연에 대한 단순한 예찬으로 끝나는 것만은 아닌 소설. 자연에 대한 경이를 품은 이가 그 자연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면서, 결국 인간에게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그런 소설 한 편을 놀라운 마음으로 펼친다.


샬롯 맥커너히의 『늑대가 있었다』(잔, 2025)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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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각하는 개인과 무감각한 사회


 

야생 늑대를 번식시켜 숲을 살린다. 언뜻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두 명제는 자연의 오묘한 이치를 담은 채 이어진다. 늑대가 사냥을 통해 사슴의 개체를 조절하고 이동을 강제한다. 어린 새싹과 나무까지 집요하게 먹어치우는 사슴의 개체가 줄어들면 황폐화된 숲이 천천히 복원되기 시작한다. 숲이 살아나면서 건강한 생태계가 조성된다. 그러나 자연을 자연스럽게 되돌리는 이 프로젝트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며, 또한 가축을 키워 생계를 유지하는 지역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 수도 있다. 자연의 일에 인간이 단단히 개입되어 있기에 자연을 복원하는 프로젝트는 대체로 난항을 겪는다. 인티가 속한 스코틀랜드 케언곰스 늑대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늑대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인티는 자연을 사랑하는 생태학자다. 어린 시절 쌍둥이 동생 애기와 아빠와 함께 숲에서 ‘한계 생존’을 경험하며 살았던 그녀에게 자연은 반드시 지키고 복원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인티는 그녀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나머지 절반, 즉 인간의 사회에 대해서는 자주 환멸감을 느낀다. 자연 복원이라는 전인류 차원의 중대한 문제 앞에서 기르는 가축의 보호를 먼저 걱정하는 이기심과, 늑대라는 생명체에 대한 근거 없는 적의감을 품은 채 분노를 표출하는 주민들의 폭력성은 그녀를 인간에게서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생계를 핑계로 생태를 파괴하고, 다름을 이유로 공존을 포기하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현재와 서늘할 정도로 닮아 있다.


인간에 대한 그녀의 불신은 어쩌면 그녀가 앓고 있는 신경학적 증상과도 밀접하게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거울 촉각 공감각’이라는 증상을 앓고 있는 인티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생명체가 느끼는 감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예컨대 누군가에게 난 상처를 보면 그만큼의 통증을 직접 느끼는 것. 눈에 보이는 대상과 하나가 되어 “고통과 즐거움 또한 고스란히”(22쪽) 공유하는 그녀가 목격하는 대상은 당연히 자연(동물)과 인간이다. 자연 속에 머물 때 언제나 평온함과 경외감을 느끼는 그녀지만, 인간을 목격할 때 그녀가 공유하는 감정은 주로 고통과 분노다.


 

아빠가 나의 가장 큰 재능은 다른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누군가의 몸 안에 머물며 다른 사람의 삶을 느껴 볼 수 있고, 그렇게 여러 사람의 몸을 체험하며 많은 것을 알게 되는,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기적적인 능력이라고 했다. (…) 또한 연민은 우리가 배워야 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했다. 누군가 우리에게 상처를 주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고 용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엄마는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 이제는 분명하다. 아니 전부터 분명했다. 엄마가 옳았다.

 

- 77-78p.

 

 

인티는 아빠에게서 자연과 인간에 대한 연민을 배우지만, 엄마로부터 그 모든 것을 부정하는 삶의 방식 또한 함께 배운다. 경찰인 엄마는 인티가 어릴 때부터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끔찍한 일들, “사람들이 겪는 최악의 모습”(72쪽)을 보여주면서 그녀를 강하게 길들이기를 원한다. 인티는 아빠가 남기고 간 삶의 방식을 따르면서도 인간에 대한 불신을 함께 습득한다. 그녀의 공감각 증상은 이처럼 자연의 평온과 인간의 폭력을 동시에 공유하는 인물이 세상을 수용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늑대는 야성적이지만, 인간은 폭력적이다. 인간 사회에 머물기보다 차라리 늑대를 보호하며 자연을 지키려는 그녀의 바람은 점차 인간에 대한 연민을 잃게 된 그녀의 생존 전략이다. 예민하게 공감각하는 그녀는 자연과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사회에서 야생의 늑대처럼 처절하게 생존해야만 한다.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케언곰스 늑대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마을 주민들은 반발하고 조롱한다. 그들의 모든 언행은 인티와 동료들, 그리고 늑대들을 향한 위협적인 폭력으로 다가온다. 사유지의 경계조차 넘지 않은 늑대를 총으로 쏴서 죽인 남자, 죄 없는 늑대를 죽여 보란 듯이 전시해놓고 조롱하는 사내 등, 늑대를 핑계 삼아 주민들은 인간이 가진 섬뜩한 폭력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인티는 종종, 혹은 자주 누군가에 대한 강한 분노와 살의마저 느끼는데, 그녀에게는 미지의 존재인 늑대를 성급하게 괴물로 상정해놓고 폭력적 태도로 일관하는 그들이야말로 죽어 마땅한 괴물로 느껴지는 것.


인간의 위협으로부터 늑대와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서 인티는 괴물이 된 인간과 맞서야 한다. 그러나 죽음을 죽음으로 돌려주는 일은 결코 허용될 수 없을 텐데, 생명을 위해서 생명을 해치는 행위 역시 괴물 같은 폭력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괴물과 싸우는 그녀가 똑같은 괴물이 되지 않도록 돕는 것은 던컨이다. 경찰관인 던컨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어떤 사건에도 침착함과 냉정함을 유지한다. 인티의 연민이 자연을 향했다면, 던컨의 연민은 우선 인간을 향한다. “세상에 빌어먹을 만큼 많고, 모두 똑같은, 그냥 사람이에요”(186쪽). 인티와 던컨은 너무 다르면서 동시에 너무 비슷한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기 시작한다.


반면 인티가 가장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는 인물은 스튜어트다. 아내를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스튜어트에게 향하는 인티의 분노는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혐오이자 끔찍한 트라우마에 의해 발현된 방어기제처럼 느껴진다. 인티의 동생 애기 역시 과거 남편의 폭력에 의해서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 자연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불간섭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인티이지만, 인간이 벌이는 악행은 간섭하지 않고서는 결코 끝낼 수 없음을 이미 경험한 바 있으므로, 인티는 스튜어트의 악행을 끝내고자 개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와 동침했던 던컨이 사라진 밤, 인티는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스튜어트의 시신을 발견한다. 늑대의 짓인지, 인간의 짓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하던 인티는 우선 늑대를 향해 쏟아질 주민들의 의심과 분노를 막기 위해 스튜어트의 시신을 땅에 묻기로 결정한다. 마치 피할 수 없는 운명인 듯, 그날 밤 괴물은 결국 탄생하고 만다. 괴물을 지키기 위해 괴물과 맞서며 괴물을 은폐하는 괴물이.

 

 

 

지극한 사랑의 이야기


 

스튜어트가 실종된 후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던컨은 냉정한 태도로 인티를 조사하고, 인티는 반대로 던컨의 행적에 의문을 품는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심하면서, 한편으로 서로가 저지른 일이 아니길 바라면서 차근차근 진실을 좇는다. 이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인티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두 사람의 아이다. 두 사람은 뱃속의 아이처럼 자라나는 서로의 애정을 애써 무시하면서 흐릿한 진실을 찾기 위해 몰두한다. 두 사람의 시간이 주춤하던 어느 날, 던컨이 무언가의 습격을 받아 쓰러진다. 쓰러진 던컨을 발견한 인티는 스튜어트를 죽인 괴물의 정체가 유난히 공격적이었던 10호 늑대일 거라는, 애써 부정해왔던 추측을 확신하면서, 총을 들고 숲으로 향한다. 모든 일을 수습하기 위해서 “늑대를 죽이러”(437쪽), 혹은 괴물을 죽이러.


10호 늑대를 죽이기 위해 만삭의 몸을 이끌고 끝없는 눈밭을 헤매는 인티의 여정은 사뭇 비장하다. 낯선 땅에 적응하지 못해 유난히 공격성을 드러내던 10호 늑대는, 인간을 낯설게 반목했던 자신의 모습과 닮아있으므로, 그녀가 느끼는 분노는 늑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444쪽)을 향하는 분노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늑대 무리들을,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기꺼이 괴물이 되어 단 한 발의 폭력을 발사한다. 죽은 늑대를 쓰다듬으며 반복하는 사과는 그녀가 언제부턴가 괴물이 되어버린 또 다른 그녀 자신을 죽이면서 전하는 위로처럼 들린다. “정말 미안해”(449쪽).


늑대를 죽이고 돌아오는 길, 갑작스러운 진통을 느껴 숲속에서 홀로 출산을 하고 딸을 품에 안은 인티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삶의 감각을 느낀다. 자신의 모든 것이 된 또 다른 인간을 향한 막연한 사랑.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고, 인간에 대해 감각하기를 거부해왔던 그녀는 출산과 동시에 “반으로 줄었다가, 동시에 둘이”(454쪽)된, 자연과 인간에 사랑을 골고루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난 것. 뒤늦게 드러나는 살인 사건의 전말―스튜어트를 죽이고 던컨을 습격한 범인은 언니를 지켜주려 했던 애기였다는 것―은, 적어도 이 소설에서만큼은 평범한 하나의 사실에 불과하다. 이 소설이 품은 고귀한 진실은 이것이 “모든 생명체는 사랑을 안다”(292쪽)는 지극한 사랑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늑대가 있었다』는 모든 생명은 사랑을 한다는, 혹은 해야만 한다는, 아주 지독한 사랑의 소설이다. 책을 덮으면 늑대의 하울링처럼 멀리서 공유되는 어떤 소리가 울려온다. 인간이 경계를 느슨하게 허물면 자연스럽게 사랑이 온다고. 자연을 닮은 사랑이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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