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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알바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이맘때쯤이면 인턴이든 계약직이든 원하던 회사에 들어가서 돈을 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 떨어졌다. ‘자꾸’라고 할 만큼 여러 곳을 지원한 것도 아니었지만. 올해는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그만 미루고 죄다 해보자는 마음을 먹은 터라 돈 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 알바를 하기로 했다. 머리보다 몸을 쓰는 일을 하고 싶었고, 기왕이면 내 취향에 맞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집에서 거리가 아주 멀지 않으면서도 좋은 공간들이 즐비한 종로와 용산 위주로 알바 자리를 탐색했다.


마침 예전부터 좋아하던 카페에서 알바를 구하고 있었다. 카페에서 일하는 것은 내가 오래 품어온 로망 중 하나였다. 좋은 공간에서 맛있는 음료를 보기 좋게 만들어 손님에게 내놓는 것. 실상은 별 거 없을지 몰라도 한번은 경험해보고 싶었다. 게다가 커피를 만드는 것도 일종의 기술이므로 앞으로 써먹을 데도 많을 것 같았다. 커피야 전세계 어딜 가든 마시니까 나중에 워킹홀리데이를 가더라도 유용할 것 같았고. 막연하고 대책 하나 없는 꿈이긴 하지만, 언젠가 내 취향을 가득 담은 공간에서 카페 겸 바를 운영하고 싶다고 말하던 나로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꿈에 닿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러모로 괜찮은 것 같았다. 작년 하반기부터 자기소개서를 수차례 쓰며 쌓은 저력으로 곧장 알바 지원서를 써서 제출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그곳의 파트타이머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평일 러시 타임 알바를 하게 됐다. 매장 근처에 회사가 많아서 점심 시간이 되면 직장인들이 한꺼번에 몰렸다. 직장인이라면 주로 회사 주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테이크아웃을 할 거라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이곳은 레트로한 분위기의 소품과 조명으로 내부를 꾸며놓고, 가격대가 높은 핸드드립 커피를 판매하는, 말하자면 감성 카페인데도 불구하고 점심 시간에 찾는 직장인들이 많았다. 기나긴 근무 시간 중 커피라도 맛있는 걸 마시고 싶은 마음이려나.


아무튼, 손님과 주문이 밀려드는 시간대에 첫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안그래도 쉽게 긴장하는 성격인데, 처음 해보는 일인데다 처리해야 할 주문들이 많다고 생각하니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스스로 센스 있고 손이 야무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더 걱정됐다. 처음 하는 일이라 서툰 것이 당연한데,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사람이 되는 게 너무 싫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바짝 긴장한 채로, 그러나 실컷 허둥대며, 동시에 동료들에게 조심스러운 질문 폭격을 퍼부으면서 일했다. 그래서 고작 2시간의 근무였는데도 끝나면 힘이 쭉 빠졌다. 음료를 안 만들어도 챙겨야 할 것들이 이렇게 많은데 언제 다 익힐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동시에, 이제는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처음에는 처참하게 못하더라도 한 달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익숙해질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생각을 하면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게다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참 좋은 사람들이었다. 내가 서툴게 움직여도 ‘괜찮아요.’ ‘잘하고 계신데요?’ 라며 격려해줬고, 무엇이든 친절하게 알려줬다. 상냥한 동료들의 격려와 인내심 덕분에 긴장을 조금씩 내려놓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는 배리에이션 커피와 논커피 종류를 만들기 시작했다. 라떼, 비엔나, 레모네이드 같은 것들. 하나씩 완성해서 손님에게 내갈 때마다 은근히 뿌듯하고 즐거웠다. 실수로 재료를 더 넣어버려서 처음부터 새로 제조해야 할 때나, 또다시 실수할까봐 5ml씩 쪼록쪼록 재료를 넣을 때는 또 심장을 엄청 졸였지만. 그래도 일주일 넘게 만드니 여전히 긴장하긴 해도 제법 손에 익었다.


음료를 만들면서 재미를 느낀 것이 또 있었는데, 바로 음료를 더 맛있게 만드는 한끗 디테일이다. 예를 들면, 하이볼을 만들 때는 술을 넣고 13.5회를 저어야 한다든지.


한번은 하이볼 주문이 세 잔이나 들어와서 나도 처음으로 하이볼을 제조해봤다.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가 레시피를 읊어주면 그대로 따라 만드는 식이었는데, 술과 농축액을 넣고 나서 13.5회를 저으라고 했다. 13회도, 14회도 아니고 13.5회. 술을 잘 몰라서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그게 맛있는 하이볼을 만드는 정석 같은 거라고 했다. 그렇게 하는 게 정말 효과가 있나? 한두 번 정도의 차이는 알아채기 어려워도, 5~6회 덜 젓거나 더 저을 경우에는 차이가 꽤 크게 난다고 했다.


내친김에 직접 맛을 비교해보도록 매니저님이 두 잔을 만들어주셨다. 13.5회 섞어 제조한 하이볼과 아예 안 섞고 만든 하이볼. 내가 손님이라고 생각하고, 두 잔 다 마시기 직전에 머들러로 대여섯번 저은 뒤 마셔봤다. 향미가 확연히 차이 났다. 당연히 13.5번 저은 잔이 술에 넣은 재료의 향이 풍부하게 느껴졌다. 제조할 때 한번도 안 저은 잔은 전자와 비교해 거의 알콜 맛만 났다. 내 혀가 민감한 편이 아닌데도 맛이 그렇게나 다르게 느껴졌다.


또 다른 디테일도 배웠는데, 탄산음료를 따를 때는 얼음에 최대한 닿지 않아야 좋다는 거였다. 이것도 비교 실험을 해봤다. 하나는 탄산수를 얼음에 최대한 닿지 않게 따르고, 다른 하나는 얼음 위로 냅다 부었는데, 이번에도 정말 달랐다. 얼음을 비껴서 부었을 때 탄산이 훨씬 톡톡 튀었다. 너무 신기하고 즐거웠다. 꽤 충격적이어서 몇 번이나 신기하다며 탄복했다. 사소한 디테일 하나로도 맛이 달라지는구나. 집에서 요리를 해먹더라도 못 먹을 정도만 아니게끔 대강 만들던, 입으로 들어가는 것에서 디테일이라는 걸 한번도 챙겨본 적이 없던 내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렇지, 그렇겠지. 디자인을 할 때도 선 굵기가 0.5cm인지 0.75cm인지에 따라서 느껴지는 미감이 그렇게나 달랐다. 언뜻 보면 비슷해보일 미세한 요소들을 최적의 상태로 맞추겠다고 나도 수백수천번 수정하지 않았었나. 이렇게 생각하니 음료나 음식을 만들 때 디테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 같았다. 내가 문외한이라 그렇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챌 테다. 여기에 더해, 거의 매일 스페셜티 커피를 마시며 각 원두가 가진 향과 맛을 느껴보고 있는데, 아직은 미세한 차이를 구별하기 어렵지만 이것도 새로운 재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천천히 집중해서 음미하다보면 그것을 이루는 요소요소를 보다 명확히 인식할 수 있을 테고, 그러면 분명 더 즐거워질 것이다.


카페에서 일하면서 내 세계가 한 뼘 더 넓어진 기분이다. 이왕 일하는 김에, 또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인 김에 적극적으로 알아보면 더 즐겁겠지. 며칠 전에는 커피 내리는 법도 배웠으니 커피의 세계를 더 깊게 파고들어봐야지. 그래서 이제는 카페를 가더라도 공간을 넘어 커피에 대한 이야기까지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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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Dawon
타지에서 만난 디테일과의 재회가 참 반가우셨을 것 같아요 ㅎㅎ
그런데 저는 왠지 모르게, 13.5의 미감보다도 수백 번의 시도에 더 마음이 갔어요~
하이볼을 휘적이는 것도, 디자인을 끄적이는 것도…
그 처음 한 번의 미약한 도전에서 이어진다는 점이 새삼 마음에 와닿았달까요.
멋진 경험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따뜻하게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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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1 12:59:4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