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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빽빽한 활자가 가지런히 정돈된 종이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이 무게감 있는 활자들의 세계에서 벗어난 거의 유일한 장르가 있는데, 바로 ‘그림책’이다.

 

그 이름부터 ‘그림’에 초점을 둔 것처럼 보이는 그림책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충분히 감동을 주는 장르지만) 왠지 모르게 어린이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져 부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오늘 소개할 도서 『그림책 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만들기 7단계』는 현재 전 세계에서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윤나라, 이서연 작가의 공동 집필서다. 누구나 자신만의 그림책을 만들 수 있도록, 그림책 만들기의 전체 과정을 총 7단계로 나누어 안내한다. 각 단계는 자세한 설명과 실천 과제, 그리고 작가들 간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들의 대화 부분은 마치 그림책 제작 팟캐스트를 듣는 듯한 따뜻한 기분을 선사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흐름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언젠가 그림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소망이 피어 오를지도 모른다.

 

림책은 일반적으로 밝고 가벼운 이미지로 인식되기 때문에, 그 창작 과정 또한 상대적으로 간단할 것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림책의 숨겨진 고단한 이야기를 열어보는,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림책 만들기의 마음가짐


 

그림책 만들기의 시작 전,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관점의 전환이다. : 그림책을 ‘보는 사람’이 아닌, ‘전달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이 책은 그림책 독자였던 우리가 창작자의 입장에서 고민하게끔 유도한다.

 

예쁘다고만 생각했던 표지에도 의도가 숨어 있고, 책의 크기나 두께 같은 물리적 요소들까지 모두 치밀한 기획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에 감탄하게 된다. 예를 들어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는 주요 캐릭터를 표지에 크게 담아 주제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고, 세로로 긴 책은 키가 큰 동물 이야기의 몰입감을 높여준다.

 

오일 파스텔의 꾸덕한 질감, 수채화의 투명한 느낌 등 재료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을 전달할 수 있으며, 때로는 과감한 생략을 통해 메시지를 더욱 강렬하게 전하기도 한다. 이처럼 그림책의 ‘그림’은 단순히 색채 있는 이미지 그 이상이다. 텍스트와 구조, 재료와 디자인, 그 모든 심미적 요소가 어우러진 총체적 예술이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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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마음에 직관적으로 닿기 위해 어떤 징검다리를 놓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림책 작가라는 존재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또 한가지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마음가짐은, 바로 완성의 다짐이다. 실제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고단한 과정 끝에 중도 포기하는 수강생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과물의 완성도가 아니다.

 

즉, 좋은 그림책이란 ‘더 잘 만든 책’이 아니라, ‘나만의 이야기를 끝까지 담아낸 책’이다. 작가들은 완성된 결과물이 꼭 정형화된 일련의 순서를 거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한다. 중요한 건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그것을 함께 나눌 누군가와의 경험이다.

 

[“제가 좋은 그림책이라고 느꼈던 작품 같은 힘을 가진 무엇을, 저 또한 만드는 일이에요. 작업에서 순수하게 느낄 수 있는 즐거움도 있지만, 의미 있는 결과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좋은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요.”] (p. 213)

 

좋은 그림책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저마다 마음속에 간직한 한 권의 그림책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여유 있는 시간, 그 책을 다시 펼쳐본다면 이제는 그 글과 그림 뒤에 숨어 있는 작가의 애정 어린 시간까지도 함께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나의 그림책: 나를 발견하는 일


 

그림책 만들기의 궁극적 목적은 독자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데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제작자는 독자를 위한 고려와 배려로 수많은 선택을 거듭하게 된다는 것을 앞서 읽었다. (215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에서 조차, 그 과정의 치열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결국 출발점이 되는 것은 나의 오롯한 생각과 감정이다. 진솔한 그림책이야 말로, 감동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7단계 중 가장 중요한 단계가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심는 단계라고 느꼈다.

 

["평범하게만 흘러가는 것 같은 일상에서도 잊지 못할 일화가 있습니다. …. 자기만의 관점으로 바라본 장면을 그릴 수 있다면, 그 이야기 또한 특별해질 것입니다. 살면서 겪는 여러 소소한 경험은 이야기를 길어올릴 수 있는 원천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p.45)

 

아이디어는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고, 하나의 아이디어는 다양한 주제와 감정으로 뻗어 나간다는 점이 너무나 흥미롭다. 인간이 모두 고유하듯, 그들의 그림책 또한 각기 다른 색과 형태를 가진다. 하나의 그림책은 마치 한 명의 인물과도 같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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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아이디어가 곧장 그림책으로 실현되지는 않는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남긴 단상과 잘 다듬어진 작품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따라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현 가능한 형태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끈기 있는 훈련이 필요함을 이 책은 강조한다.

 

책에서는 그 훈련의 방법으로 일기 쓰기, 다양한 콘텐츠 접하기, 전시 감상, 사람들과의 대화, 좋아하는 그림책 다시 보기, 사진 앨범 들여다보기, 낙서하기 등 일상 속에서의 여러 훈련법을 제안한다. 스스로에게 "나는 무엇을 그리고 싶은가,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가"를 묻고 또 묻는 이 과정이, 결국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 될 것이다.

 

[“낭만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결과적으론 그림책이 가진 힘을 믿게 돼요.”] (p. 211)

 

우리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아주 어린 순간부터, 이미 그림책에 담긴 힘을 받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그 뒤편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빚어낸 누군가의 손끝을 따라, 언젠가는 우리도 각자만의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상상해 본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박유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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