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자신의 첫 장래희망을 기억하는가? 그 장래희망을 좋아하게 된 이유도 기억하는가?
나는 우리의 첫사랑은 사실 그 누구도 아닌, 우리가 처음 꾼 꿈이라고 생각한다. 상상 속 미래의 내가 나의 첫사랑 아니었을까. 어릴 적 우리는 이 꿈을 당연히 이룰 거라 믿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얼마나 막연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간혹 그 첫사랑을 보란 듯이 이룬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릴 적 꿈과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나의 첫 꿈은 외교관이었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한국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던 때였고, 그래서 영어를 잘하면 외교관을 장래희망으로 말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외교관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모른 채 내 꿈이 외교관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나에게 이 과정은 쉬워야 했다. 그래서 영어 학원을 다니다가 처음으로 레벨 테스트에 떨어진 것은 인정하기 참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엄마를 졸라 바로 학원을 그만두었다. 옮긴 학원을 잘 다니다가, 또다시 테스트에 떨어지자 그 민망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일이 반복되었다.
레벨 테스트뿐만이 아니었다. 해외에서 오래 살다 온 아이들, 그냥 재능을 나보다 훨씬 타고난 아이들, 자신만의 공부하는 법을 일찍 터득한 아이들과 부딪힐수록 점점 내 부족함을 마주하는 것이 어려웠다. 마주하기 어려웠던 마음만큼, 포기하는 것은 쉬웠다.
그래서 나는 <보이 인 더 풀> 속 석영의 흔들리던 눈빛이 남 같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수영 영재로 불리던 석영. 그녀는 대회에서 상도 여러 번 받았던 아이였다. 아마 반에서 수영을 가장 잘하는 아이로 통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못해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을 테다. 그러나 물갈퀴가 달린 소년 우주를 만나며, 석영의 당연한 세상에는 물수제비가 던져진다.
순수한 소년 우주는 오직 석영에게만 자신의 비밀인 물갈퀴를 보여준다. 그리고 석영은 그런 우주에게 수영 선수가 되라며 쿨한 척 말하지만, 우주의 신체적 재능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 석영은 바로 수영을 그만두고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생이 된다. 그리고 우주는 정말로 수영 선수가 되어 상을 휩쓸고 다닌다. 게다가 석영의 애매한 재능을 자꾸 상기시키는 건 우주뿐만이 아니다. 피아노를 꾸준히 하기 위해 서울로 짐을 들고 올라가기까지 하는 석영의 동생은 재능뿐만 아니라 열정도 남다르다.
석영이 본인의 의심에 순응했다면, 우주는 자신의 의심을 계속 외면하는 인물이다. 우주는 석영의 말 한마디에 선수까지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수영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의 마음에 남아 있는 의심의 정체는 다름 아닌 그 '물갈퀴'. 그는 자신의 성과가 진정한 실력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한다. 그렇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성장한 두 사람은 청춘이 되어 다시 만난다. 묘한 기류가 흐르지만 이를 더 묘하게 하는 것은 지금의 자신에 대한 묘한 감정 때문이다.
설렘과 자격지심이 섞인 날을 보낸 석영은 자신처럼 수영을 포기한 친구를 만나자, 우주의 비밀을 홧김에 말해버린다. 질투였을까,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친구에 대한 연민이었을까. 석영의 말은 너무도 빠르게 퍼져나가 우주는 대회에서 실격당하고 만다. 그러자 우주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물갈퀴를 잘라낸다. 그렇게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아쿠아리움에서 둘은 다시 조용히 마주한다. 그리고 둘의 얼굴은 생각보다 밝다.
꿈은 사랑과 닮아 있다. 사랑 노래를 남녀 간의 이야기가 아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의 대화로 들어보라. 특히 이별 노래를 이렇게 상정하고 들어보라. 내가 과거에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해하고 보내주는 나의 성장기가 된다. <보이 인 더 풀>이 새로운 성장영화로 다가왔던 것은 이 '이별 노래'와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플러스가 아닌 마이너스의 결말이 개운하다.
아주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피아노 곡을 작곡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을 하는 동생을 바라보는 석영의 눈빛이 그랬다. 과거의 자신이 느꼈던 트라우마와 우울감이 얼마나 작은 것이었는지를 깨닫고, 동시에 동생처럼 계속 사랑하는 걸 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기도 하고, 순식간에 이 생각들이 석영의 머릿속에서 오가는 모습을 효우 배우가 잘 그려냈다. 오만가지 생각을 하지만, 동시에 한결 편안해 보이는 석영이었다.
성장은 뭔가를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도통 털어지지 않던 것을 보내줄 때 이뤄지는 것이다.
우주는 어땠을까. 그는 왜 물갈퀴를 잘라야만 했을까. 아마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물갈퀴 없이도 나는 괜찮은 사람일까?' '누군가의 사랑, 관심, 인정을 받지 않아도 나는 특별할 수 있을까?' GV에서 류연수 감독은 물갈퀴라는 설정은 사실 학부 시절 단편을 장편화하는 과정에서 마감에 쫓기다 보니 탄생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이 설정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상징하게 되었다.
류 감독은 타고난 것들로 승부해야 하는 이들의 고통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했다. 수영, 피겨스케이팅처럼 신체 변화 하나로 자신의 기술을 완전히 잃게 될 만큼 치명적인 세상. 잔인한 세계지만, 상반된 두 인물을 보면 '자격'이라는 건 결국 자신이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보이 인 더 풀>의 캐스팅도 흥미로웠다. 류 감독은 '스우파'에서 인상 깊었던 무대 연기를 보여준 댄서 효우를 캐스팅한 이유로, 새로운 얼굴의 신선함과 특유의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 과장되지 않은 표정이 좋았다고 말했다. 나를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을 때에야 누군가는 내 안의 원석을 알아봐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GV에서 이를 더 실감하며 나왔는데, GV에서 마지막에 진행한 '관객과의 대화'에서 세 분의 관객이 던진 질문이 너무나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영화의 개인적인 해석과 감사 인사, 그리고 모두가 함께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을 던지는 세 분을 보며 '나보다 질문을 잘 하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을 텐데, 내 글에 의미가 있을까?' 같은 생각으로 뻗쳤다. 글을 쓸 때마다 늘 이 고민을 해왔다. 그렇지만 누군가 나보다 무엇을 잘한다는 게 내가 써야 할 이유를 지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감정을 계속 확인하고, 나만의 목소리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보이 인 더 풀>이라는 제목에서 오는 설렘이 있다. 수영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신비로운 소년이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수영장은 소리와 움직임이 바깥과 다르다. 웅웅거리는 소리, 찰랑거리는 물, 괜히 긴장감을 주는 락스 냄새... 한낮의 여름,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과 떨어져 있을 수 있는 곳 같다. 그래서 내면으로 침잠하는 것도 쉬운 곳. 빛을 굴절시키고 모든 움직임을 느리게 만드는 곳. 유년 기억과 판타지가 뒤섞인 이야기일 것 같았다. 한때 유행했던 밈, '여름이었다'를 연상케 한다.
두 인물 사이에는 사실 큰 대화가 오가지 않는다. 특히 청소년이 되고 나서는 더더욱. 그러나 어쩐지 우주에게 모자를 벗어보라는 석영의 말은 굉장한 고백처럼 들린다. 내 꿈과 했던 첫사랑, 첫 이별... 그들은 서로의 첫사랑이라기보다 그 첫사랑의 이별을 만들어준다.
성장통의 아름다움을 청춘 남녀로 표현한 <보이 인 더 풀>은 5월 14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