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무수히 오던 5월의 어느 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으로 향했다. 《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이라는 제목으로 개최된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초현실주의(surrealism)는 1920년대 프랑스에서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시작된 전위적 예술운동으로, 이성과 합리성, 기존 질서에 대한 반발, 그리고 인간의 무의식과 꿈, 자유의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초현실주의는 일본을 거쳐 조선에 소개되었고, 이 과정에서 서구의 그것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일본에서는 이미 다다이즘, 표현주의, 미래파, 입체파 등 다양한 전위 예술이 소개된 상태였고, 초현실주의 역시 이 흐름 속에서 수용되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초현실주의가 추상과 결합된 형태로 해석되었으며, 작품 속 ‘상징’을 강조하는 방식이 서구와의 차이를 보였다. 이러한 특징은 일제의 지배를 받고 있던 조선에도 영향을 미쳤고, 조선에서는 민족적인 정체성과 상징성을 담아내는 수단으로 초현실주의가 이해되었다.
비록 초현실주의는 한국 미술사에서 하나의 ‘운동’으로 전개되지는 않았지만, 이번 전시는 그 경계에 있었던 여섯 명의 작가들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시는 총 4개의 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관에서는 본격적인 작가 소개에 앞서, 1920년대 말~1930년대 초 ‘초현실주의’라는 용어가 한국 미술계에 어떻게 소개되고 해석되었는지를 다룬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가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시도된 다양한 양식을 통해, 당시 한국 작가들이 서구 전위 예술을 어떻게 수용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일본의 영향을 받아 상징성을 탐색했던 작가들의 시도는, 한국적 초현실주의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이후 2관부터는 여섯 명의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소개된다.
김종남(마나베 하데오)은 경상남도 산청 출신으로, 일본 유학을 통해 초현실주의 미술을 접하고 일본으로 귀화한다. 작품 속 식물, 동물, 곤충 등의 자연 생물과 이종 결합된 생명체는 낯선 감각을 일으키며, 일본인과 한국인의 경계에서 정체성을 숨겨야 했던 작가의 불안감이 감지된다.
김욱규는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일본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함흥미술연구소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해방 후 세상과 단절된 채, 40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다. 표현주의에서 야수주의, 입체주의까지 넘나드는 그의 회화는 이산과 고독, 가난이라는 현실의 감정을 그로테스크한 형상으로 시각화한다.
김종하는 서울 출신으로 일본과 프랑스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귀국 후 ‘목우회’ 창립에 참여했다. 주로 구상회화를 제작했지만,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화면 구성으로 초현실주의적 경향을 드러냈다.
박광호는 대구 출신으로, 서울대 회화과 졸업 후 고향에서 교육 활동과 작업을 병행했다. 초기엔 전쟁과 사회 억압을 다룬 표현주의, 앵포르멜 계열의 회화를 제작했고, 이후에는 팝아트, 기하학적 추상 등 다양한 양식을 실험한다. 기계적인 일상 속 정념과 욕망을 오브제화하는 방식은 무의식을 끌어들이며 초현실주의적 면모를 보여준다.
김영환은 함경남도 안변군 출신으로, ‘신조형파’ 전시에 환상성과 문학성이 강한 작품을 출품하며 주목받았다. 전쟁과 분단을 경험한 그는 현실을 초현실로 재구성함으로써 비극적인 시대를 초월하려는 미적 실천을 시도한다.
신영헌은 평안남도 평원군 출신으로, ‘성북회화연구소’에서 수학한 뒤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의 회화에는 식민, 전쟁, 월남, 분단의 경험이 특정 종교를 넘어서는 독자적 형식으로 담겨 있다. 비록 본인은 특정 사조로 분류되기를 거부했지만, 그의 예술은 부조리한 현실을 재인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적 성격을 지닌다.
“한국에는 초현실주의가 없었다.” 이 말은 한국 미술사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어온 명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그 명제를 뒤흔드는 시도로 주목할 만하다. 이 전시는 '정통 초현실주의'의 기준을 따르기보다, 한국 근대미술 속에서 현실을 낯설게 바라보고 초현실적 감각을 표현한 작가들을 재조명한다. 이는 단순한 사조 분류를 넘어, 주류 미술사에서 소외된 작가들을 복원하고 한국 미술사의 다양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그러나 동시에, 전시를 보며 따라붙은 질문이 있다. “이것도 초현실주의인가?” 몇몇 작품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띠지만, 굳이 ‘초현실주의’로 명명되어야만 하는지는 의문이다. 초현실주의라는 용어가 개념적 이해를 돕기 위한 도구라기보다, 특정 형식을 부여하기 위한 틀처럼 작용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전시는 서구 중심의 미술사 틀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이지만, 동시에 ‘초현실주의’라는 서구 사조의 언어로 한국 미술을 증명하려는 역설을 안고 있다. “우리에게도 초현실주의가 있었다”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은 여전히 서구 미술사 체계 안에서의 편입을 전제로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한국 근대미술은 서구와의 접점 속에서 형성되었기에 사조적 연결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번 전시가 보여주듯, 때로는 특정 사조의 이름을 붙이는 행위 자체가, 작가 고유의 미감과 맥락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이제는 ‘초현실주의’라는 틀로 설명하기보다, 작가들이 시대와 현실을 마주하며 형성한 고유한 표현 세계를 그 자체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은 “우리에게도 초현실주의가 있었다”는 선언으로 시작되지만, 그것이 끝이어선 안 된다. 이제는 ‘우리의 것’을 서구와의 유사성으로 증명하려 하기보다, 고유한 미적 문법과 감각으로 읽어내려는 시선이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새로운 담론의 출발점이자, 여전히 경계 위에 놓인 전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