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mucha01.jpg

 

 

무하와의 네 번째 만남.


2013년부터 2025년까지 국내에서 열린 무하의 전시는 전부 보러 갔다. 앞의 두 번은 예술의전당, 뒤의 두 번은 마이아트 뮤지엄이었는데 2020년의 무하전을 보고나서 '어디선가 또 무하전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5년 만에 그때와 같은 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mucha02.jpg

 

 

이제는 반가움을 지나 익숙한 무하가 되었다.

 

사라 베르나르의 지스몽다 포스터가 있겠지, 욥과 모엣샹동 같은 상업 포스터도 있겠지, 사게절이나 보석 같은 연작이 한 구역을 차지하겠고 맨 마지막에는 무하의 민족적인 그림이 있겠지.

 

알고 있는 걸 다르게 보러 가는 시간을 기대했다.

 

 

mucha03.jpg

 

 

무하 그림이 취향과 안 맞을 수는 있겠지만 무하의 그림을 어렵게 느낄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홍보의 성격을 가진 포스터라는 직관적인 형태에 담긴 섬세한 아름다움이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에게 전달된다. 무하에게 유명세를 선사해준 지스몽다만 해도 그렇다. 이국적인 문양과 화려한 무늬의 의상, 그리고 화관을 쓴 여신 같은 모습을 한 사라. 화려하면서 섬세한 그림은 이미 알고 있지만 다시 봐도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다.

 

길이 2m에 달하는 기다란 작품이라 혹시 지난번에 놓쳤던 부분이 없었나 얼굴을 주변으로 시작해서 옷 자락을 따라 작품 하단까지 시선이 흐르게 된다.

 

 

mucha04.jpg

 

 

사실 자세히 보면 강조와 생략이 적절하게 섞여 있다.

 

주로 머리카락과 손이 그렇다. 가닥가닥이 아닌 외곽선만 강조된 형태로 물결치는 머리카락과 손톱이나 주름은 생략된 손가락을 보게 된다. 덕분에 시선이 분산되지 않고 정확하게 무하가 강조한 대로 집중하게 된다.

 

 

mucha05.jpg

 

 

그렇다. 시선의 흐름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무하의 Q-Formula.

 

원형 장식이나 후광을 인물의 뒤에 두어서 집중시키고 드레스 자락을 아래로 흐르게 하거나 소품을 아래에 두어 시선이 Q자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

 

 

mucha06.jpg

 

 

개인적으로 무하의 여러 특징이 드러난 작품 중 하나가 '비스코프 상공업 민속 박람회'라고 생각한다.

 

무하가 고향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작업한 작품으로 조국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의상은 모라비아의 각 지역의 특징을 조합해서 표현하였고, 모라비아의 문장인 독수리는 작품의 위쪽에 두었다.

 

데이지는 계절이나 아름다운 장식이 아닌 모라비아의 상징. 무하의 특징인 Q 공식도 드러나고, 애국자인 그의 성정도 드러난다.

 

그리고 시선의 흐름 마지막에 확인하게 되는 박람회 정보까지 무하이기에 가능한 작품은 이런 것이 아닐까.

 

 

mucha07.jpg

 

 

아무래도 무하를 설명할 때면 그의 성공 스토리를 강조하게 되는데 사람 무하의 일화가 담긴 따스한 포스터 작품을 이야기하고 싶다. 작품명은 즈덴카 체르니.

 

시카고 대학에서 강의할 당시 무하는 체코계 미국인인 체르니 가족과 함께 지냈다. 무하는 당시 어린 나이였던 즈덴카에게 나중에 좋은 연주자가 되면 그림을 그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즈덴카는 뛰어난 첼리스트가 되었고 무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첼로를 든 즈덴카 사진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다.

 

즈덴카의 유럽 공연 일정이 잡히자 그림은 유럽 공연 포스터가 되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유럽 공연은 무산되었고 즈덴카는 결혼 후에 음악 활동을 하지 못하였다고 전해지는데 무하는 어린 소녀와의 약속을 지켰고 그 증거는 아직까지 전시되고 있다.

 

 

mucha08.jpg

 

 

상업적인 포스터와 제품 디자인으로 일상에 예술을 심어 넣는 화가로서의 면모가 좋은 만큼, 정성스레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무하의 애국적인 면모도 좋아한다.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화가인 만큼 그의 작품을 우선 전시하기 때문에 이런 작품은 아무래도 후반에 자리할 수밖에 없는데 사람들 집중력이 조금 떨어진 상태에서 보게 될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있다.

 


mucha10.jpg


mucha09.jpg

 

 

같은 전시를 네 번 보는 동안 어떤 날은 도슨트에게서 설명을 들었고 어느 날은 예술 서적에서 무하를 찾아 읽었다. 반복되면서 쌓인 정보가 있으니 아무래도 작품 앞에 머무는 시간이 예전만큼 길지 않았다.

 

그림에서 덜어낸 집중력은 기획과 구성에 쓰게 되는데 이번 전시는 무하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신경 쓴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포스터를 보고 난 뒤에 실물을 전시해 두어서 '실제'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 그랬고, 장식 자료집으로 벽면을 가득 채운 것도, 작품을 위해 아치형 벽을 만든 거나 전시장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재현하는 과감함까지 무하를 어떻게든 최대한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드로잉과 삽화도 단순히 전시 작품 수를 채우거나 섹션의 비율을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무하의 관련 사진들을 보면 그림이라는 결과물이 아닌 화가 무하까지 관객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것만 같았다.

 

무하가 디자인한 우표와 지폐까지 전시했으니 이번 전시는 거의 무하 모음집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았다.



mucha11.jpg

 

 

네 번이나 보았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느꼈다.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딱 한 번 전시된 이후 두 번 다시 한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어서 그 작품이 다시 찾아온다면 그 하나를 위해서 발걸음할 의지가 충분하지만, 지금까지 봤던 무하전 중 이번이 제일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에 이 이상으로 무하를 전시장에 담는 일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만하면 되었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