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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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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라는 공간은 늘 정해진 틀 안에 있지만, 그 속을 채우는 감정은 단 한 번도 같았던 적이 없다.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교실 속 풍경을 과장되거나, 반대로 현실 이상으로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 결과, 우리는 어쩌면 지나쳐왔을 일상의 감정들에 다시금 시선을 돌리게 된다.


세 편의 학원물 애니메이션, 《스킵과 로퍼》, 《러브 콤플렉스》, 《오란고교 사교클럽》은 저마다 색깔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관계를 통해 성장하는 인물들’을 중심에 둔 서사를 펼쳐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른이 된 우리가 잊고 지낸 시절의 감정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마음은 서툴지만 진심은 닿는다 – 《스킵과 로퍼》가 전하는 청춘의 디테일


 

《스킵과 로퍼》는 도쿄로 전학 온 시골 출신 소녀 ‘이와쿠라 미츠미’의 눈을 통해 도시의 고등학교 생활과 그 안에서의 인간관계를 천천히 그려낸다. 이 작품이 돋보이는 지점은 단순한 성장담에 머물지 않고, 인물 간의 정서적 균형을 매우 현실적이고 세심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미츠미는 시골 출신의 우등생으로, 무엇이든 계획하고 철저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미츠미는 처음 보는 환경에서도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고 하지만, 도시생활의 속도와 미묘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주 당황한다. 반면 소스케는 도시인 됴코 출신으로, 겉보기엔 느긋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가진 인물이다. 소스케는 타인의 기대에 맞춰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데 익숙하지만, 내면에는 쉽게 드러내지 않는 치로와 거리를 감추고 있다. 단순히 엉뚱함과 여유로움의 대조가 아니라, 각자의 내면에 자리한 불안과 기대가 서로의 성격을 보완하며 드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상반된 성향들이 균형을 이룬다는 점이 이 작품의 중요한 서사 장치로 작용한다.


《스킵과 로퍼》는 모든 인물이 입체적이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도 감정의 입체감을 잃지 않는다. 이 때문에 관객은 특정 캐릭터에 머무르지 않고, 전체 풍경을 조망하는 감각을 얻게 된다. 이 섬세한 조율이야말로 이 작품이 청춘물로서 지닌 깊이이자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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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보다 중요한 건 마음의 거리 – 《러브 콤플렉스》가 말하는 내면의 이야기


 

키가 큰 여자 코이즈미 리사와 키가 작은 남자 오오타니 아츠시, 두 사람은 '고목나무와 매미'라는 별명을 가지고도 티격태격하며 같이 다닌다. 각자 정반대의 외모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두 고등학생 어떤 고교 생활을 보내게 될까?


작품은 ‘키 차이’라는 단순한 물리적 요소를 중심으로, 자존감, 열등감,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와 같은 감정의 층위를 천천히 쌓아간다. 둘은 서로를 의식하면서도 자꾸 어긋나고, 친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엔 머뭇거린다. 그 서툰 감정의 언어들이 때로는 코미디처럼, 때로는 진지하게 다가온다.


작품 속 일본어 사투리와 귀여운 작화는 이 감정의 생동감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그 말투 속에는 인물의 정체성과 지역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그 또한 이 작품이 단순한 로코물로 끝나지 않게 만드는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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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고 유쾌한데, 이상하게 마음에 남는다 - 《오란고교 사교클럽》이 던지는 질문


 

코미디와 패러디로 가득 찬 《오란고교 사교클럽》은 처음에는 그저 화려한 캐릭터 쇼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역할과 정체성'이라는 묵직한 주제가 흐르고 있다.


주인공 하루히는 여성임에도 남학생으로 오해받으며 사교클럽에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태도는 "여성성 혹은 남성성은 무엇으로 규정되는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진다. 하루히는 역할 기대를 전면 부정하는 캐릭터다. 성별보다 논리, 외모보다 실용이 앞선 현실주의자이다. 그녀의 태도는 여주인공이 전형적으로 겪는 삼각관계나 감정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게 하고, 독자에게 "꼭 그래야만 하나요?"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타마키를 비롯한 캐릭터들은 처음에는 정형화된 매력의 대표처럼 보이지만,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각자의 상처와 진심이 드러나며 개인의 서사와 감정선이 비교적 진지하게 전개된다.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라면 두 주인공들의 감정은 점차 뜨겁게 타오른다. 하지만 《오란고교 사교클럽》은 타마키와 하루히 사이의 감정을 섣불리 규정하지 않는다. 타마키는 하루히를 좋아하지만, 그것이 로맨스인지 보호 본능인지조차 혼란스러워한다. 하루히 역시 감정보다는 행동에 무게를 두는 인물이다. 관계는 있지만 경계가 흐릿하고, 감정은 있지만 정체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이 애매한 선은 오히려 더 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오란고교 사교클럽》은 성역할, 계급,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 등 우리가 쉽게 넘길 수 있는 주제를 코미디라는 장르적 외피를 빌려 말랑하게 풀어낸다. 님장 여주 클리셰를 현실주의적으로 탈바꿈시키며 이 작품은 결국, 진지한 것을 너무 진지하게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장르 클리셰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특히 오프닝과 엔딩곡은 그 유쾌함을 강화하면서도, 그 이면의 질문들을 더욱 오래 머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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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이들이 만화를 ‘어린이의 전유물’로 여긴다. 하지만 학원물을 그리는 이들은 대부분 성인이다. 어쩌면 학창시절이라는 소재야말로 어른들에게 가장 필요한 감정 회로일지도 모른다.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난 애니메이션은 오히려 감정을 더 솔직하게 꺼내놓는다. 교복을 입고 있던 우리의 모습은 사진 속에 멈췄지만, 그 시절의 감정은 여전히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 세 작품은 그런 감정의 숨결을 각자의 방식으로, 그리고 무척 섬세하게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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