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있는 감상에는 맥락이 필요하다
전시회를 찾는 사람들은 늘어났지만, 작품과의 대화를 어색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를 포함해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미술 작품 앞에서 '깊이 있는 감상'을 어려워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는 현대인의 미술 감상 고민에 작은 해답을 제시한다.
작가는 수동적 관람에서 벗어나 능동적 참여를 적극 권장하기 위해 예술 작품의 여러 맥락을 소개한다. 책은 능동적인 질문 던지기, 개인적 해석 이끌어내기, 예술 작품을 폭넓은 역사적 그리고 문화적 맥락과 연결 짓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예술의 기본 개념부터 선사시대의 벽화,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작품 감상을 위한 필수 지식이 체계적으로 소개되어 있다. 형식과 매체, 미술 사조, 조각의 역사뿐 아니라, 저자의 전문 분야인 작품 보존과 복원, 도난과 약탈 등 작품에 얽힌 흥미로운 비화까지 폭넓게 다룬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실용적인 가이드라인을 직접적으로 제공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작품을 볼 때 "작가는 어떤 의도로 이 작품을 만들었을까?", "이 작품이 만들어졌던 역사적 배경은 무엇일까?", "이 작품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통해 능동적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작품 앞에서의 당혹감 대신 작품과 보다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자신감이 키워진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미술을 어렵고 복잡한 학문이 아니라 친근하고 흥미로운 분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책 속에서 그림에서 많이 활용되는 '알레고리'를 얘기할 때가 가장 흥미로웠고, 큰 도움이 되었다.
미술 작품을 해독하는 도상학은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먼저 '성인'에 관한 연구다. 그 다음은 개념의 의인화와 관련이 있는 '알레고리'다. 만약 인물이 한 손에 저울과 검을 들고 있다면 '정의'라는 개념을 상징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세 번째는 이렇게 각각의 사물들이 상징을 담고 있는 '감춰진 상징주의'다. 이 성인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물건들을 잘 살펴보면 된다. 비종교인이어서 그런지, 성인과 관련된 내용은 늘 낯설어서 알고 싶었는데 덕분에 많은 의문을 해소했다.
또한 간단하게 사조를 정리해놓은 부분도 딱 궁금했던 부분을 독자에게 요약해준다. 마치 시험기간 전날 족집게 과외 선생님이 필요한 부분만 정리해준 내용을 읽는 느낌이 든다. 사조도, 성인과 알레고리도, 유형별로 소개해놓아 읽는데 속이 시원했다.
알레고리와 사조 뿐만 아니라 책에서 또 유형화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은 '사고방식' 그 자체다.
책의 후반부인 8장에서, 작가는 두 가지 개념화 방식을 제시한다. 바로 구체적인 부분에서 시작하는 상향식 사고와 전체적인 개념에서 시작하는 하향식 사고이다. 하향식 사고는 앞서 말한 '알레고리'가 풍부한 작품을 해석하는 데 필요하지만 추상미술은 이러한 연역적, 기본적 지식이 거의 필요하지 않은 상향식 사고가 활용된다. 이는 이전에 아트인사이트의 또 다른 문화초대였던 책 <감상의 심리학>이 떠오르는 부분이었다. <감상의 심리학>에서는 우리의 시각적 기제로 이를 설명했다면,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에서는 이를 '환원주의'로 일컫는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핵심적인 요소만 선택하는 방식이라는 정의로 깔끔하게 정리해주었다.
책의 전반부는 미술사의 흐름과 감상법에 집중한다. 회화와 조각의 역사, 다양한 미술 사조의 핵심 개념들을 간략히 정리해주는 부분이다. 후반부에서는 미술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를 살펴본다. 작가의 전문 분야인 미술작품의 보존과 복원, 도난과 위작 같은 미술 범죄 사례를 소개한다. 그리고 미술 시장의 가치 형성, NFT와 같은 최신 미술 동향도 언급하며 마무리한다.
책은 과거, 현재, 미래의 미술을 폭넓게 아우르는데 성공했다. 중요한 것들만 골라서 설명해놓아 '족집게 과외'를 받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는 느낌도 들어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만 작가의 유머가 군데 군데 들어가 있어 그의 열정과 진심이 느껴진다. 이렇게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는 미술을 감상할 때 발생하는 여러 가지 고민과 어려움을 현실적으로 다루면서도 친절하고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책을 통해 독자들은 미술 작품과의 보다 적극적이고 의미 있는 상호작용 방법을 배우게 되고, 작품 앞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작품을 탐구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미술관을 찾을 때마다 작품 앞에서 짧게 머무르며 고민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길잡이이자, 미술 감상 능력을 한층 높여줄 좋은 동반자가 되어준다.
이 책의 영어 제목은 '12 hour art expert'이다. 12시간 만에 미술 전문가만큼은 아니어도, '이 그림, 어디서 한 번 들어봤는데?' 정도에 다다르게 도와줄 책인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