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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재즈 공연장을 찾는 일은 언제나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품게 만든다. 늘 반가운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그 현장에 발을 들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조심스러워지는 건 왜일까. 어쩌면 재즈라는 장르가 가진 본질 때문일지도 모른다. 변주의 미학, 즉흥의 아름다움, 예측 불가능한 전개는 분명 재즈가 지닌 가장 매력적인 요소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전위적인 방향으로 흐를 때면 감상자에게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안고 자리를 잡는 이 아이러니가, 오히려 재즈의 세계가 지닌 깊이이자 매력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복잡한 마음을 안고 지난 4월 11일 저녁, 서울 성동구 성수아트홀을 찾았다. 그날은 ‘재즈브릿지컴퍼니’가 주최한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Mathis Picard Trio)의 첫 내한공연이 펼쳐지는 날이었다. 이름부터 낯설고 신선했던 이 세 명의 연주자는, 무대에 오르자마자 모든 긴장을 해소시키듯 경쾌한 에너지로 공연장의 공기를 바꾸었다. 두 팔을 높이 들고 유쾌한 포즈로 무대에 등장한 그들은, 첫 곡부터 관객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건 악기로 하는 인사이자, 우리가 곧 음악으로 깊게 연결될 거라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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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트리오는 피아니스트 마티스 피카드, 베이시스트 파커 맥앨리스터, 드러머 조에 파스칼로 구성돼 있었다. 국적도 배경도 서로 다른 세 사람은, 각자의 뿌리에서 끌어올린 음악적 정서를 절묘하게 엮어내며 폭발적인 앙상블을 완성했다. 공연 내내 그들의 연주는 마치 세 사람의 대화 같았고, 때론 서로를 밀어붙이고, 때론 포옹하듯 감싸며 한 편의 서사를 만들어갔다.

 

무엇보다 내 귀를 사로잡은 것은 베이스의 존재감이었다. 일반적인 재즈 트리오라면 콘트라베이스가 중심을 잡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보다 멜로딕하고 유연한 연주가 가능한 일렉 베이스가 사용됐다. 이를 통해 연주는 더욱 다채로운 음색을 만들어냈고, 사운드의 스펙트럼도 훨씬 넓게 느껴졌다. 파커 맥앨리스터는 단순히 저음을 받쳐주는 역할을 넘어서, 하나의 주인공으로서 무대를 리드했다. 그의 톤은 몽글몽글하면서도 선명했고, 공간을 빈틈없이 채우면서도 결코 무겁지 않았다. 중간중간 이펙터를 활용해 색다른 사운드를 덧입히는 순간들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피아니스트 마티스 피카드의 연주는 한마디로 ‘진정한 그루브’였다. 그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즐기고 있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자유롭게 리듬을 타며, 마치 몸 전체로 음악을 흡수하고 있는 듯한 모습은 무대 위에서 단연 눈에 띄었고, 그 자연스러운 몰입감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여유로운 태도, 리듬을 몸으로 표현하며 마치 춤을 추듯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은 단순한 연주자를 넘어선 ‘진짜 아티스트’의 면모를 보여줬다.

 

“즐기는 자는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면, 그 표현은 마티스 피카드를 위한 문장이 아닐까. 격렬하게 몰아치다가도 어느 순간 부드럽게 속도를 조절하며 흐름을 반전시키는 그의 연주는, 단순한 기교를 넘어서 완벽한 컨트롤과 감각의 결합이었다. 나는 그 순간, 완전히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드러머 조에 파스칼 역시 눈부신 존재였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리듬의 뼈대를 완벽하게 지탱했고, 공연 내내 지치지 않는 에너지로 무대를 끌어갔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그는 더욱 단단하고 깊은 스트로크로 무대를 휘어잡았다. 그의 드럼은 단순한 타격이 아닌, 공간 전체를 공명시키는 울림이었다. 타악기가 어떻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공연은 당초 오후 9시에 마무리될 예정이었지만, 관객들의 환호와 아쉬움에 응답하듯 연주자들은 무대에 다시 올라와 긴 앙코르를 이어갔다. 앙코르가 무조건 좋은 공연의 기준은 아니지만, 이날의 무대는 분명히 그러한 여운을 자아냈다. 연주자들이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관객과의 교감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가 깊이 전해졌다. 음악과 무대, 그 둘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 공연을 통해 나는 다시 한 번, 음악이 지닌 힘을 깊이 실감했다. 단순한 소리가 아닌 감정으로 각인되는 공연, 그 속에서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감정과 기억들이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깨어났다. 음악이란 결국, 누군가의 손을 조심스레 잡고 그 사람의 세계에 잠시 발을 들여놓는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가 펼쳐낸 그 다정한 세계는 나에게 잊지 못할 봄밤의 추억으로 남았다.

 

재즈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고, 나는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손을 잡는 일이 늘 쉽지만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그 손을 자연스럽게 마주 잡게 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재즈가 더는 낯설지 않다고. 앞으로 재즈 공연이 있다면, 기꺼이 그 자리를 찾게 될 거라고.

 

음악의 등급을 나누는 일은 의미 없지만, 이번 무대를 통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고급 음악’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1시간 30분 동안 쉼 없이 몰아쳤던 생생한 사운드, 그리고 그 속에서 오랜 시간 잠잠했던 내 감각들이 다시금 또렷이 깨어나는 느낌. 마치 오래된 창을 활짝 열고 신선한 바람을 들이마신 듯한 청량한 충격이었다.

 

공연은 끝났지만, 재즈가 주는 선물은 지금도 내 안에 숨 쉬고 있다. 그날의 소리와 공기, 여운과 감정은 아마도 오랫동안, 천천히 그리고 깊게 나를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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