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2BD6F5E8-8DFE-4B47-B608-2D742CD247CF.jpg

 

 

어렸을 때, 가수들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노래의 주제는 늘 사랑 이야기뿐일까?

 

마치 정해진 공식처럼 다들 사랑을 노래하고, 이별에 아파하며 그 감정을 반복하는 이야기뿐이었다. 그땐 정말 노래 가사에 어떤 규제라도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은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가수’라는 단어 대신 ‘아티스트’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게 쓰이기 시작하면서, 음악의 세계도 더 다채로운 주제를 담아내고 있다. 최근 제니의 첫 솔로 앨범 ‘Ruby’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제니의 앨범은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낸, 최상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그 앨범에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 자신의 감정과 취향, 생각을 솔직하게 담은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유튜브 채널 ‘요정 재형’에서 그녀가 한 인터뷰도 기억에 남는다. 코로나 시기, 오랜 시간 멈추지 않고 달려왔던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몸과 마음을 보듬으면서 더 단단해졌다고 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으며, 자신만의 색채를 담은 앨범을 만들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 깊은 공감을 했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돌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나 역시 느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

 

사실 나의 학창 시절은 뚜렷한 주관 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의미 없이 정해진 목표를 향해 묵묵히 걷기만 했다. 하지만 휴학을 하게 되면서, 비로소 처음으로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갖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라는 사람에 대해 하나씩 천천히 알아가기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기가 내 삶에 있어 꽤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느낀다.

 

매일 한 장 이상의 글을 꾸준히 써보고,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를 적어보는 ‘취향 일기’를 만들어가면서,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내 마음의 결을 조금씩 들여다보게 됐다. 일종의 자아 탐구였다. 여행을 다니고,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공간과 사람을 만나며 내 안의 색깔이 점점 짙어졌다.

 

그렇게 쌓인 일상은 결국 내가 나를 더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고, 작은 조각들은 하나의 세계를 이루었다. 그 세계는 내게 자존감이 되어주었고, 지금까지도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힘이 되었다.

 

그 시간들이 자양분으로 크게 작용하여, 졸업 작품전을 준비할 때도 자연스럽게 나만의 이야기를 꺼내어 표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경험은 또 다른 경험으로 이어져, 더 큰 꿈을 꾸고 멀리 나아가게 해주었으며 작지만 분명한 목표도 만들어주었다.

 

*

 

네덜란드에서 수강한 디자인 수업의 첫 시간, 교수님은 프로젝트 주제를 정하기에 앞서 ‘이키가이’라는 자아 탐색 방법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 분석해보자고 했다. 프로젝트 이전에 ‘나’라는 존재부터 들여다보는 수업 방식은 처음이었으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수업의 시작이 된다는 점이 참 인상 깊었다.

 

몇 주 동안 '이키가이'의 4가지 질문인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는 무엇을 잘하는지’,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천천히 생각하고 정리해보는 과정을 거쳤다. 이런 시간을 통해 외국은 사람이 가진 본질과 내면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고, 그 안에서 진정한 ‘나’를 존중받는 느낌을 받았다. 반면, 한국 사회는 여전히 사회의 틀 안에 사람을 끼워 맞추는 데 익숙한 구조이기 때문에, 내가 먼저 내 안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것도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스스로를 잘 알게 되면 삶은 훨씬 더 풍요롭고 단단해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취향이 분명한 사람을 좋아한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나누는 그들의 세계는 단단하고 선명하며, 이런 태도는 늘 나에게 좋은 자극이 되어주었다.

 

나의 오랜 친구 중 한 명은 나와의 대화를 계기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긴 시간 탐색했고, 결국 지금까지 달려왔던 길과는 전혀 다른 삶을 선택했다. 그 결정이 얼마나 큰 용기였는지를 알기에, 나는 그 친구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겠지만, 지금의 그 친구는 누구보다 단단하고 행복해 보인다.

 

또 다른 친구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꿈이 있는 사람은 반짝인다는데, 너를 보면 그 말이 떠올라.”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바라봐 줬다는 사실, 그리고 그 말이 내게 남긴 따뜻한 울림은 지금도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다.

 

물론 지금의 나는 완벽하게 단단한 사람은 아니다. 여전히 불안한 날이 있고, 어떤 날은 휘청이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 나를 돌보며 오랜 시간 쌓아온 세계는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좋아하는 걸 꾸준히 사랑하고, 그것을 이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분명히 꿈꾸던 내가 되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지금의 나를 더 단단하게 지탱해주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나를 알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생각들을 계속 써 내려가고 싶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