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KakaoTalk_Photo_2025-04-17-17-10-56 1.png

 

 

<칵테일, 러브, 좀비>, <트로피컬 나이트> 등을 통해 고어하지만 희망찬, 귀엽지만 잔혹한, 무섭지만 애틋한, 섬뜩하지만 경쾌한 자신만의 세계를 견고히 구축해 나가는 조예은 작가의 신작이 발간되었다. 제4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수상작이자 조예은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시프트>의 개정판이다. 현재 동명으로 연재되고 있는 네이버 웹툰의 원작 IP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시프트>는 조예은 작가가 처음으로 완성한 장편이라고 한다. 처음 쓴 장편이 대상을 받고, 바로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이다. 실제로 <시프트>는 스토리의 힘이 강한 작품이다. 2017년 교보문고 스토리 대상 공모전 심사 당시 흥미로운 사건을 긴장감 있게 풀어냈다는 호평을 받은 작품이니만큼, 흡입력 있는 전개와 속도감 있는 스토리가 책을 술술 넘기게 만들었다.

 

 

 

초인은 영웅인가, 죄인인가


 

과거 초능력을 지닌 주인공은 주로 영웅으로 묘사되었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갖춘 슈퍼 히어로의 존재.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초인적인 힘을 가진 것 자체가 축복인지 저주인지에 대한 관점이 추가되었다. 큰 힘에 따르는 큰 책임. 대의를 위해 행해야 하는 슈퍼 히어로의 모순.

 

찬과 란은 전혀 슈퍼히어로가 아니었다. 그들은 사회의 환호 대신, 학대와 착취의 대상으로서 살아가야 했다.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사이비 교주의 돈벌이 수단으로 여겨졌다. 초능력이란 이들에게 화려한 영웅의 상징이 아니라 무겁고 잔혹한 저주에 가까웠다. 영웅이라 불릴 수도, 영웅이 될 의지도 없었다. 찬은 동생을 구하기 전까지는 이 능력을 숨기고 살았는데, 어쩌면 이 능력이 사람들에게 축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이 순간 느끼는 감정은 후련함이나 통쾌함이 아니었다.

정체를 할 수 없는 모호함, 진즉 했어야 할 일을 늦게 마쳤다는 부채감과 메스꺼움에 가까웠다.

 

p257

 

 

자신의 능력을 선한 방향으로 사용해도, 평생 도덕적 고뇌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자리. 그 자리가 영웅이 아닌 스스로 만든 지옥 속에 갇힌 죄인의 자리임을 알았기에 평생을 숨기고 살았지만, 단 한 번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능력을 발현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또 찰나의 영웅인 삶이었을까. 사는 동안에는 자신의 능력 탓에 사랑하는 동생을 힘들게 한다는 죄책감과, 죽을 때에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 그 능력을 물려주는 선택을 했다는 미안함에 평생 죄인으로 살았을 찬의 인생에 축복을 빌고 싶었다.

 

 

 

전이(轉移)는 능력인가, 저주인가


 

찬과 란이 가진 능력은 고통을 치료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저 '옮기는' 능력이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단지 누군가에게 다시 전이될 뿐이다. 전이를 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고통을 전가할 대상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과도 같다. 손이 맞닿는 것 하나만으로 고통을 내릴 수 있는 알량한 전지전능함.

 

우리가 고통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선택의 책임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능력을 가진 자는 고통을 줄 상대, 고통의 종류와 강도를 선택할 수 있었다. 심지어 전이자는 그 고통의 형체를 자신이 느껴야만 한다는 것이 더욱 비극적이다. 고통의 대상을 선택을 하는 자신의 선택 역시 고통임을 받아들이며, 그 선택을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고통의 형태를 느껴야만 한다는 것은 오히려 얼마나 무기력한가.

 

 

이 상처가 그렇게 찾아 헤맨 저주다.

그것은 저주인 동시에 달아난 남자가 채린에게 축복을 내릴 수 있다는 증거였다. 축복이 정말 축복인지는 확신이 없어졌지만.

 

p77

 

 

능력자가 능력을 행하는 순간, 어떤 선택을 해도 능력자가 행복할 수 있는 결론이 없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상처가 전이된 사람에게 그 능력은 저주다. 전이하는 능력을 가지고도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을 방치하는 것 역시 괴로움이다. 어떤 선택을 해도 죄책감의 굴레에 빠지는 구조. 오히려 희망과 행복을 꿈꿀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능력을 타고났다는 이유로 더 무기력한 삶을 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의 총량은 무한히 늘어나는 세상 속에서 이를 해소하지는 못한 채 총량만 맞추며 살아가는 삶에서 어찌 저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으랴.

 

 

 

기적은 구원인가, 지옥인가


 

<시프트>는 전이의 능력을 가진 존재를 맹목적으로 찾는 형사 이창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창은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로 전이되는 기적을 어릴 때 실제로 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조카의 불치병을 낫게 하기 위해 능력자를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 모든 것을 걸고, 경찰이라는 직업 윤리에 위배되는 일을 하면서까지 희망을 좇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거는 걸까요?

어떻게 스스로를 버리고 타인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무언가를 바랄 수 있죠?”

 

p229

 

 

란은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신의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희망을 잃은 사람이고, 이창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타인의 회복을 이루고자 희망에 기대 사는 사람이다. 이창은 비뚤어지고 맹목적인 믿음이 단 한 번 내려준 구원을 목도했던 사람이고, 란은 비틀리고 이기적인 욕망에 죽음의 코앞까지 경험하고 가족까지 잃은 사람이다. 고통을 전이하는 능력이 저주로 뿌리내린 사람과 구원으로 뿌리내린 사람의 대극.

 

사람은 희망을 좀먹고 산다. 그러나 절대 당도하지 않을 기약 없는 바람은 희망이 맞을까.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기적을 꿈꾸며 사는 것은 희망이 맞을까. 찬과 란이 꿈꾸었을 기적은 그들을 대하는 모든 사회와 사람이 선하고 따듯한 세상이었을 것이다. 이창이 꿈꾼 기적은 그들의 가족이 무사한 것, 누나의 불치병이 없었을 세상, 그게 안 되면 누나의 딸인 조카의 불치병이 존재하지 않았을 세상일 것이다.

 

고통의 시프트를 기준으로 대척점에 서 있던 둘의 유일하고도 처절한 공통점이 기적을 꿈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한 사람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란은 찬을 위해, 이창은 채린을 위해. 이룰 수 없는 꿈은 희망일까? 닿을 수 없는 기적은 구원일까? ‘로또에 당첨되게 해주세요’라며 다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마음 한 켠에 두고 살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는 순간 그 세상은 지옥이 될 것이다. 현실이 지옥인 삶에서 현실을 다시 딛고 일어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그렇기에 란의 마지막 선택을 이해할 수 있다.

 

 

 

종결은 자유인가, 꿈인가


 

<시프트>는 ‘스토리 공모전’의 대상을 받은 작품답게, 스토리 라인이 복합적이고 흥미진진했다. 사이비라는 소재와 스릴러라는 장르의 만남은 나름 익숙하다. 거기에 초능력이라는 판타지 소재와 복수라는 큰 흐름을 넣은 것도 아주 이례적이지는 않다. 그런데, 중심 맥락을 장르물과 거리가 있는 생명과 인간의 딜레마로 잡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영상이나 이미지보다 텍스트로 읽었을 때 공감을 더 잘 일으킬 수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크지 않아 보이는 차별점들이 시너지를 이뤄, 작지 않은 특화점을 만들어낸 것도 <시프트>의 장점이었다.

 

 

발아래 아무것도 없는 느낌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란은 바다가 아닌 우주를 떠올렸다. 추락이 아닌 유영.

 

p282

 

 

형의 이름 찬과 동생의 이름 란을 합치면 ‘찬란’한 형제들. 그런 란의 마지막 선택이 찬의 한 조각이라도 붙잡는 것이었다는 것이 짠했다. 결국 모두 자신의 기적을 붙잡고 산다면, 란의 기적은 찬이었기에. 그리고 찬의 기적도 란이었을 것이므로. 진정 자유에 닿았으면 그것대로 평온일 것이고, 그 자유가 한낱 꿈에 불과한 것이었대도 찬란한 순간에 닿았기에 그것대로 기쁨일 것이라 믿으며.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에 대한 고뇌와 딜레마에 대해서는 최진영 작가의 <단 한 사람> 리뷰 글인 ‘세상을 상실하는 건 한 사람을 구하는 것’에서도 익히 이야기한 적 있다. 그래서인지, 능력을 타고났다는 이유로 더 큰 무게의 책임을 져야 하는 란과 찬에게 마음이 더 갔다. 타고난 것 때문에 무언가를 더 지니고 살아야 한다면, 그것이 천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삶을 나는 살 수 있을까? 톡톡 튀는 소재와 시선으로만 알고 있던 조예은 작가의 깊이를 알 수 있는 작품, <시프트>였다.

 

 

 

20231104105048_gxtehped.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