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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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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다. 무의미하다. 때로는 실속 없고, 때로는 헛되다. 하지만 그런 글도 이야기가 된다.

 

무엇을 이야기라 할 수 있을까? 기승전결 구조를 성실하게 따르는 것? 세계관, 인물, 사건 등의 구성 요소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것? 전개에 개연성을 갖춘 것? 핍진성을 갖춘 것? 복선이 탄탄한 것? 튼튼하게 설계된 이야기란 첨탑 꼭대기에 마침내 교훈이란 십자가를 꽂는 것? 이 중 하나만 따르는 것 혹은 이 중 모두를 따르는 것? 이야기가 가져야 하는 가장 기본 조건이란 무엇일까. 요즘 나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만약, 위의 조건을 모두 충족하거나 혹은 하나만 충족한 것이 이야기라면, <고독의 이야기들>에 실린 발터 벤야민의 단편들은 이야기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몇몇은 예외일 수 있으나, 대부분은 그렇다. 1부의 [꿈과 몽상]은 발터 벤야민이 직접 꾼 꿈의 기록들로 구성되어 있다. 꿈은 원래 엉뚱하다. 꿈속의 공간은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초현실 세계다. 또, 등장하는 인물들의 얼굴과 이름은 뒤죽박죽이며, 가끔은 제대로 된 형상조차 가지고 있질 않다. 사건은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시간은 차례대로 흐르지 않는다. 인사불성이 된 만취자의 기억처럼, 혹은 타임워프가 가능한 SF 영화처럼 시간의 흐름은 변화무쌍하다. 크게 심호흡하며 지면을 내달리는데, 중력도, 공기도 없는 장소가 바로 꿈이다. 프로이트 말대로 꿈이란 무의식의 발현인지도 모른다. 영적 세계로부터 도착한 응답일 수도 있다. 인류가 미처 몰랐던 다른 차원으로부터의 초대일 가능성도 있겠다. 그러나 꿈의 정체가 무엇이든, 꿈은 나 외의 다른 사람을 이해시킬 만한 것이 못 된다. 애초에 개연성도, 상식도, 순서랄 것도 없어서 남에게 설명하기에 난감하다. 다른 사람이 꾼 꿈이란 그저 이상한 환상, 알 수 없는 단어들의 조합일 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1부를 읽은 나의 감상이 그러했고.

 

2부의 [여행]은 나에게 또 다른 허무함을 안겨주었다. 2부에서 등장하는 이야기는 '썰'의 형태를 띠고 있다. 벤야민은 이야기의 화자가 왜 이 장소에 머무르게 되었는지, 화자에게 말을 거는 상대가 도대체 누구인지, 들려주는 이야기의 결말이 무엇이고 결국 이 말을 꺼낸 상대의 의도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 주지 않는다. 일부는 대화가 끝까지 마무리되지 못한 채로 중간에 끊기기도 한다. 반면, 3부의 [놀이와 교육론]은 앞선 단편들에 비해 가장 '구조를 잘 갖추'고 있다. 그러나, 역시 교훈은 없다. 특출난 사건도 없다. 독자가 여기서 엿볼 수 있는 것은 벤야민의 공상과 재치, 말장난에서 오는 작은 반전 정도다. 그의 단편을 읽은 후, 독자들 마음속에 이러한 의문이 떠오른다. "그래서 도대체 뭘 얘기하려는 거야?"

 

3부 [놀이와 교육론]에 첨부된 벤야민의 서평 두 편은 당황한 독자들을 위해 마련된 귀한 이정표다. 여기서 이야기를 대하는 벤야민의 자세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는 이야기의 힘을 믿었고, 그 힘이 아이들을 이끌어줄 만큼 충분히 강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이야기가 아이들 교육에 있어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으며, 되리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단어를 단순히 암기할 때보다 하나의 문장으로 연결해 노래로 따라 부를 때 훨씬 잘 외워지던 경험은 누구나 있지 않은가. 문제는 이야기를 '어떻게' 쓸 것인가였다. 아이들이 읽을 것이니 충격을 줄 만한 내용은 덜고, 모범적인 이야기들로 구성하는 '착한 검열'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른들이 읽는 문학보다 더 높은 강도의 검열이, 교정이, 편집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벤야민은 이러한 의문들을 지나 조금 더 본질적인 문제에 다가섰다. 아이들이 이야기로부터 영감과 교훈을 얻기 위해선, 먼저 아이들이 이야기를 기억해야 한다. 고로 아이들은 어떤 이야기에 즐거워하는가? 벤야민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함을 역설한다.

 

꿈과 몽상은 전개가 엉성하다. 엉뚱하고, 엉망진창이며 교훈이 없다. 여행 중 듣는 썰들은 보통 가십 위주다. 주제가 수십번씩 바뀌며, 분명한 결론 없이 흐린 말끝과 함께 대화가 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3부에서 보이는 수많은 말장난과 공상은 또 어떠한가. 벤야민의 이야기들은 사람에 비유하자면, 멀끔한 양복 차림의 지혜로운 신사보단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형형색색의 옷을 두서없이 걸친 광대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아이들은 자신의 순수성을, 순수하기에 서슴없이 튀어나올 수 있는 폭력성을 이해해 줄 철부지 어른에게 더 이끌리는 법이다. 법, 상식, 이치와 논리를 무시하는 꿈은 그러기에 무한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놀이터다. 가십을 떠드는 동안, 사람들은 친밀감을 형성한다. 말장난은 또 다른 말장난을 부르고, 이는 곧 놀이가 된다. 구조에 충실하지 않아도 된다. 전개가 깔끔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럴싸한 교훈이 없어도 좋다. 유치하고, 허무맹랑하고, 의미 없고, 한심할 정도로 과장되어도 좋다. 이야기꾼의 의무는 오로지 '재밌게 떠들기' 뿐이다. 결국에 이야기란 잘 만든 공산품이 아닌, 소통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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