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母性)의 얼굴은 평범하다. 어떤 감정도 다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무한한 사랑, 인내와 헌신, 걱정, 간절함, 강인함, 희생 등 어머니는 당연히 품어야 한다고 오랫동안 학습된 성스러운 감정들. 반대로 불신, 불안, 증오와 경멸, 통제 욕구, 나약함, 회피, 광기, 살인 충동과 같은 분노처럼 어두운 감정들까지도 당연히 담을 수 있는 게 어머니의 얼굴이다.
성범죄자가 된 아들을 둔 죄로 하루아침에 심판대에 오른 어머니라면 누구라도 감정이 극단적으로 오갈 것이다. 연극 <그의 어머니>는 하룻밤 사이 여학생 세 명을 성폭행한 17세 아들 ‘매튜’의 어머니 ‘브렌다’의 다양한 감정과 표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 솔직한 작품이다.
모성(母性)이란 ‘여성이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육체적 성질. 또는 그런 본능’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설명하고 있다. 연극 <그의 어머니>는 성범죄자가 된 아들 매튜가 가택 연금을 당한 후, 어머니 브렌다가 보여주는 그러한 본능들과 이성을 함께 다뤘다.
국립극단과 국립극장이 공동주최하는 연극 <그의 어머니>는 2025년 4월 2일 개막했다.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극은 4월 19일에 막을 내린다. 어머니 브렌다 역에 김선영, 9세 작은아들 제이슨 역에 최자운, 17세 큰아들 매튜 역에 최호재, 변호사 로버트엔 홍선우, 매튜 여자친구 제시카 역엔 이다혜, 브렌다 전남편 스티븐 역엔 김용준, 청소 도우미 역엔 김시영이 캐스팅됐다.
영화 <마더>, <케빈에 대하여> 등 아들의 죄와 마주하며 고통 받는 어머니를 다루는 작품들처럼 <그의 어머니>도 브렌다를 벼랑 끝까지 몰아넣는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잔인하거나 성(性)적인 장면, 연출, 묘사는 나오지 않는다. 1막 엔딩에서 집 앞을 점령한 기자들에 대한 분노, 뒤틀린 모성을 보여주기 위해 브렌다가 기자들 앞에서 옷을 벗는 신체(뒷모습) 노출을 하지만 개연성 없는 노출은 아니다.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상황 대신 브렌다의 극으로 치달은 날카로운 감정만을 묘사하는 처절한 장면이다.
브렌다는 둘째 아들 제이슨의 순수함을 지키고, 그를 매튜의 영향권에 들이지 않기 위해 예민해진다. 기자들은 싫지만 형은 좋아하는 제이슨은 엄마의 앞뒤 안 맞는 행동을 이해 못한다.
엄마로선 부정해야 하지만 여자로선 부정할 수 없는 아들의 추악한 성범죄도 브렌다를 미치게 만든다. 엄마로선 여전사가 돼야 하지만, 여자로선 아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경계심이 들기 때문이다. 모성은 이성, 여자로서의 직감은 본능인 것이다. (국립극단은 작품 홍보 영상 속 문구를 ‘어머니로서의 본성과 인간으로서의 이성’이라 했다. 류주연 연출가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건 그것은 모두 옳다’고 했기에 각자가 느끼는 바가 답일 것이다.)
아들의 죄, 자식 잘못 키웠다는 자책감, 회피하고 싶은 마음, 피해 여학생들에 대한 원망, 어린 제이슨을 매튜에게서 분리하며 받는 스트레스, 친구이자 변호사인 로버트의 냉정한 충고들, 불쑥 찾아와 아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우기는 매튜 여자친구 제시카까지. 수많은 감정들과 상황들이 도화선이 돼 브렌다의 광기는 폭발한다.
차라리 나를 찍으라며 집 앞 기자들의 카메라 앞에서 나신을 드러내는 어머니 브렌다의 절규는 폭발적이다. 황색 언론(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범죄, 자극적 사건, 성적 추문 등을 경쟁적으로 과도하게 취재‧보도하는 저널리즘)에게 자신을 여성으로 소비하게 먹잇감을 던져준 행위라고도 볼 수 있겠다. 반대로 여성이기 전에 인간인 브렌다가 자신과 가족들을 괴롭히는 괴물들에게 날린 일격이기도 하다.
<그의 어머니>는 1990년대 말 언론의 명과 암도 다룬다. 기자들은 사명감으로 매튜 집 앞에 머무는 것이겠지만, 죄를 짓지 않은 가족들은 고통 받는다. 변호사 로버트는 평범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려 기자들 앞에 제이슨과 나서라 시키고, 그에 따르지만 결과는 좋지 않다. 하누카(유대인들이 연말연시에 8일간 치르는 빛의 축제. 이 기간 동안 매일 하나씩 초에 불을 켠다.) 기간이라 집안에서 조용히 의식을 치른 것도 언론에게 물어 뜯긴다. 가장 행복해야 할 빛의 절기, 촛불 대신 기자들의 플래시가 집안을 섬광처럼 밝히는 것이다.
기자들 앞에서 옷을 벗은 순간부터 언론의 타겟은 매튜에서 브렌다로 옮겨간다. 매튜와 제이슨, 즉 아들들은 지켰겠지만 자기 자신은 무방비 상태로 대중들 앞에 노출해버린 것이다. 브렌다는 지켜내려고 애쓰던 매튜에게 쌓였던 분노를 터트린다. 너에게 남은 건 증오뿐이고, 제이슨은 잘 키우고 싶다면서. 더없이 솔직해서 뼈저리게 이해 가는 분노다.
브렌다는 극 후반에 무너진다. 강인한 엄마이지만 인간이기에 연약하기 때문이다. 무딘 건지 무딘 척 하는 건지 아무렇지 않게 청소를 하는 도우미 테스가 브렌다는 혼란스럽다. 그녀는 브렌다에게 자식들에 대해 푸념한다. 자식들이 속썩여봤자 성범죄를 저지른 매튜만 할까. 테스의 생각 없어 보이는 태도와 웃음은 브렌다를 향한 배려와 따뜻함이었던 것이다.
헤드폰으로 음악까지 들으며 신나게 청소를 하는 테스에게 브렌다는 듣지 못할 고백을 한다. 마트에서 피해 여학생들 중 한 명의 엄마를 만났는데, 예상과는 달리 자신을 원망하지 않았다며 무너지는 브렌다. 그러면 안 된단 걸 알면서도 피해 여학생들을 원망하고, 집에 찾아온 매튜 여자친구 제시카도 쫓아냈지만(엄마로서의 ‘직감’ 때문에 매튜와 제시카를 분리한 것이긴 하다) 결국 여성들에게 위로받은 것이다.
어머니로서의 감정들을 전부 쏟아냈고, 드러내면 불리할 이기심마저 노출했기에 브렌다는 다면적, 입체적, 현실적인 캐릭터다. 다양한 영화, 드라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7년 만에 무대에 선 배우 김선영은 브렌다의 수많은 얼굴들을 강렬하게 드러내며 객석을 압도했다. 브렌다라는 역할에 모든 걸 쏟아 부으며 자신을 불태우는 김선영의 무대 복귀는 대성공이었다.
인간은 살면서 누구나 딜레마(dilemma : 진퇴양난, 궁지. 두 가지 중 어느 쪽을 선택해도 불리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함)에 빠진다. 딜레마에 빠지길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 원하지 않는데 빠져버리기도 한다. 브렌다 또한 미워할 수 없는 자식이라는 저주, 가족이라는 딜레마에 빠졌다. 브렌다는 그 저주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저주와 온몸으로 맞서 싸운 브렌다는 그의 어머니, 여성이기 전에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