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들어요, 내 안의 뚝딱 소울
최초의 만들기는 놀이터에서 흙으로 만든 두꺼비집이었다. 그다음은 풀을 죄다 뜯어서 돌로 콩콩 빻은 다음 모래를 섞어 지은 자연식(?) 소꿉놀이 밥이었다. 나뭇가지 젓가락도 즉석에서 뚝 잘라 그 옆에 놓고 나름 구색을 맞췄더랬다.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무턱대고 종이학 천 마리를 접기도 했고, 창작 만화 방과 후 수업에 참여해 말도 안 되는 네 컷짜리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참 순수한 시절이었다. 그땐 그랬다. ‘왜?’ 냐고 묻는 법이 없었다. 순도 백 퍼센트짜리의 ‘천연 재미’들이 지천에 마구 깔려 있는 느낌이었다.
크면서는 자연스럽게 그 느낌과 멀어졌다. 과거의 꼼지락거림은 다 어린 시절의 일로 남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우연한 계기로 크레파스를 잡게 됐고, 생각지도 못하게 그게 본업이 되었다. 흙과 나뭇잎을 만지고 놀던 손에는 어느새 물감과 붓이 들려 있었다. 일 덕분에 재미난 경험을 많이 한 것도 사실이지만 일이기 때문에 무감각해진 것도 사실이다. 순수한 즐거움은 어느 시점부터 판타지가 되어 갔다.
이렇게 많이 그리고 이렇게 많이 만들 수 있나 싶었던 애증의 순간들. 강산도 한 번 변한다는 그 긴 세월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첫 번째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 시간과 작별한 지금 또 다르게 보이는 부분도 있다. 모니터 구석에 짱박혀 있던 폴더를 열었다. 부지런히 뚝딱였던 시간이 한꺼번에 우수수 쏟아졌다. 사진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꼼지락 사부작이 너 주 전공이었어~”
집중하는 눈빛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사진 속의 나. 몰두하는 모습에서 만든다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잠잠했던 마음이 뭔가를 막 만들고 싶다는 의욕으로 꿈틀거렸다. 엉뚱 발랄한 발명품을 뚝딱 만들어 내는 이 유쾌한 프로젝트가 나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것은 우연이 아닐 거다.
*해당 사진은 <기상천외 목공소> 공식 트레일러에 등장한 장면입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생각하기만 했던 아이디어가 눈앞에 현실로 나타난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게 뭐든 다 가능하다면? <기상천외 목공소>는 그런 면에서 독보적인 만들기 TV 쇼일 거다. 무한한 상상에 정말로 날개를 달아주니까. 최고의 제작자 팀에게 어느 날 꼬마 고객들이 작업을 의뢰해 온다. 그런데 이 귀여운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이 만만치가 않다. 지미와 그의 친구들은 다 같이 모여 어린이 고객들의 여러 발명 아이디어를 들어 보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제안을 하나 선택한다.
괜찮으면 OK, 그게 아니라면 NEXT. 왜 이런 게 필요하냐며 쓸모를 캐묻지 않는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안 할 이유가 없는 구미 당기는 일이기도 하지만 뭐든 생각해 내면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아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것이 금손 아저씨들의 깊은 속내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한때 이름을 날렸던 장난감 디자이너와 실력자 엔지니어, 꼼꼼한 설계자와 괴짜스럽고 감수성 넘치는 제작자가 똘똘 뭉쳐 솜씨를 발휘한다. 그 어디에도 없는 발명품을 실제로 만들기 위해!
유쾌한 목공 프로젝트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이 유쾌한 우당탕 프로젝트는 ‘공룡 타코 변기’, ‘유니콘 자전거’, ‘축구화 자동차’, ‘가위바위보’, ‘최강의 호두까기 인형’, ‘똥 투석기VS트레똥셰’, ‘해적 피자 대포’, ‘기타 보트’ 이렇게 총 8편으로 구성돼 있다.
꼬마 고객의 아이디어로 만든 발명품들은 하나같이 그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4m 키를 자랑하는 공룡이 캔디 타코를 마구 발사하는가 하면, 유니콘 자전거는 반짝반짝한 방귀를 뿜으며 힘차게 나아간다. 축구화는 몇십 배의 커다란 자동차가 되고, 대왕 가위바위보로는 어마어마한 시합까지 벌인다. 무적 턱을 가진 호두까기 인형은 뭐든 다 부수고 스무디까지 만들어 낸다. 심지어 고양이 투석기는 똥도 멀리 날려 버린다. 피자 해적선에서는 피자 대포를 쏘고, 사람 두 명을 태운 초대형 기타는 물 위에 둥둥 뜨는 보트가 된다.
아무것도 없는 제로 상태에서 실체를 갖춘 작품으로 탄생할 때의 희열이란! 발명품을 직접 작동시키는 순간은 40분 여정에서 단연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익살스러우면서도 귀여운 그 자태에 홀린 듯 마음을 뺏겨 버리고 말 것이다. 뭐든 상상할 수 있고 뭐든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 <기상천외 목공소>는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독려하고 있다.
‘고양이 똥 투석기’부터 ‘기타 보트’까지
*주의: 내용상 똥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원하는 게 뭐야?”
“고양이 똥을 날려 버리고 싶어요!”
똥 투석기가 허를 찌른다. 고양이가 마당에 똥을 많이 싸서 똥 쏘는 기계가 필요하다는 꼬마 클라이언트. 시작은 투석기 한 대였다. 그런데 중세 시대의 공성무기였던 ‘트레부셰’도 투석기의 한 종류였다는 말에 제작할 게 갑자기 두 대로 는다. 이는 결국 투석기 두 대의 대결로 이어진다. 금손 아저씨들은 둘씩 팀이 되어 서로를 견제하기도 하고, 저쪽에 있는 사람이 너무 미워서 그쪽으로 뭘 던지는 인간이 참 사악하지 않냐는 농담도 하며 제작에 열을 올린다.
중간 점검 연락으로 난이도는 더 올라간다. 디자인적으로 더 보완해 달라는 요청에 투석기에 고양이 장식을 달기로 한다. 고양이 얼굴과 변기통을 장착함으로써 한순간에 투석기 사양이 업그레이드된다. 이에 질세라 강철 트레부셰는 360도 회전하며 속도를 얻는 회전축을 장착해 버린다. 과연 누가 똥을 더 멀리 던지게 될까?
‘제 1회 고양이 똥쏘기 대회’가 개최된 역사의 현장. 고양이 똥 투석기냐 강철 트레똥셰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지미와 그의 친구들은 대포알로 쓸 모형 똥을 신중히 고른다. 1번 타자는 귀여운 고양이 똥 투석기. 길쭉한 대포를 장전해 발사한 순간, 멀리 못 가고 바로 앞에서 똑 떨어지고 만다. 연이은 2번 타자 강철 트레똥셰. 왕구슬 대포를 발사한 순간, 시원하게 쭉쭉 뻗어 나간다. 동시에 트레똥셰 기계도 같이 질질 끌려간다.
안 웃을 줄 알았는데 강철 트레똥셰 때문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똥 때문에 웃다니. 어이가 없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 장면이 떠올라 또 한 번 웃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맞다. 나 똥 얘기 좋아했다.
야무진 고객이 나타났다. 자기가 요즘 음악에 빠졌다며 기타 보트를 한번 구상해 봤다고 스케치한 그림을 당당하게 보여 준다. 말만 보트가 아니라 사람이 탈 수 있고, 실제로도 물에 뜰 수 있는 보트여야 했다. 금손의 전문가들이 일사불란하게 업무를 분담한다.
갈고 자르고 구부러뜨리고 조이고 붙이는 과정의 연속. 그 안에 흥미로운 요소가 꽤 있었다. 각종 공구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그들을 지켜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했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재료를 사용할 것인지 상의하는 내용을 통해 전혀 몰랐던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했다.
기상천외 목공소를 보며 제일 짜릿한 순간은 완성한 각각의 부품이 모여 하나의 완전체로 합쳐질 때이다. 5.8m짜리 완전체 기타를 보며 제작자들의 작업 능력에 소름이 쫙 끼치기도 했다.
호수에 배를 띄우는 순간조차 실은 의심을 조금 하고 있었다. 사람 둘을 태우면 아무래도 기타가 꼬르륵 가라앉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기타 보트에 몸을 싣는 지미 친구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편다. 노를 저으며 이렇게 외친다.
“된다! 된다!”
사람을 태운 거대한 기타 보트가 두둥실 물 위에 떠올랐다. 괴짜 삼촌은 이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자축이라도 하듯 곧바로 세레모니를 선보인다. 기타 보트에서 진짜 기타를 연주하며 고객 제이든을 위한 노래를 바친다. 꼬마 의뢰인보다 어른들이 더 즐거워 보였던 건 기분 탓이었을까?
정보 전달도 쉽고 재밌게
<기상천외 목공소>에는 시청자를 잡아끄는 힘이 있다. 시각적인 재미, 제작자들의 활약상, 유용한 정보 전달 이 세 부분에서의 짜임새가 참 훌륭했다. 특히 제작하는 과정 중간마다 조금씩 곁들여지는 과학 정보는 기상천외한 목공 예능이 너무 가볍게만 흘러가지 않도록 중심을 잘 잡아주었다.
나무에 전도성 페이스트를 발라 전기를 흘려서 번개 무늬를 입히는 ‘리히텐베르크 버닝 기법’으로 기타의 외관을 디자인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나무의 잔가지 모양 같기도 한 그 번개 무늬를 보며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센스 있는 편집 또한 흡입력을 강화시켰다. ‘베니어’는 어떻게 만들까요? 하고 등장한 설명 영상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돌돌 돌아가는 통나무가 큰 면도날이 달린 공업용 기계에 스치며 얇게 깎여 나가는 영상도 이해하기 쉬웠고, 키친타월이 풀리 듯이 나오는 나무를 가리켜 베니어라고 부른다는 설명도 귀에 쏙쏙 들어왔다.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괜찮은 예능이라 생각된다. 아이, 어른, 가족, 우리 모두가 함께 보아도 두루두루 재미있는 웰메이드 만들기 쇼다.
앞으로 무얼 만들어 나갈까
모처럼 순수한 창작욕을 불태웠던 때로 잠깐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자유분방하고 즐거운 장면들 속에서 실컷 풀어지며 맑은 기운을 얻었다. 계산기를 두드리기보다 몸이 먼저 나갔던 시간들이 있었다. 이게 될지 안 될지, 내게 뭐가 남을지 타산을 하느라 스스로 선을 긋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래서 한계 말고 가능성의 편에 섰었다.
하지만 창작 활동이 장기전으로 들어가면서 점차 한계에 부닥치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매번 스스로의 바닥을 마주하는 것 같다. 견고히 쌓아온 것들이 이상하게 틀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부숴야 할 벽처럼 보이기도 한다. 좋은 창작물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은 가끔씩 사람을 지치고 버겁게 만든다.
그런데 이 또한 정상이라는 것을 잘 안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혼자 쪼그라들었다가 돌아서면 빵빵하게 바람 들어 다시 나풀거릴 나다. 그땐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는 바위였고, 지금은 세공하느라 작아진 단단한 조약돌이고.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말도 안 되는 발명품이 ‘뚝딱人’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다. 캔디 타코를 토해 내던 시퍼런 공룡이 좀 더 거칠게 막 들이받으라며 나를 꼬신다. 참고는 하겠다만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 앞으로 나는 무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당장은 오랜만에 불어닥친 이 창작욕을 잘 구워삶아 봐야겠다. 한계 말고 다시 나아가는 편에 서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