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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최근 '유니콘 남주'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다. 유니콘처럼, 즉 현실에 없을 것처럼 외모, 성격, 능력을 모두 갖춘 남자 주인공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여자 주인공에게 매우 순정적인 사랑을 바치는 것이 특징이다.
 
드라마 시장에서는 아직 여성 시청자가 더 많은 만큼 남자 주인공의 매력 구축에 공을 들이는 것은 중요하다. 실제로 로맨스 장르의 경우 드라마를 통해 비교적 더 큰 스타덤에 오르는 쪽도 대부분 남자 주연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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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유니콘 남주에 열광하나

    

어쩌면 그 철학적 기원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인간에게는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본성이 있다.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형태의 사랑과 인간상을 보는 것만으로 사람들은 충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또, 드라마는 오랫동안 대중과 가장 가까운 매체였다. 물론 지금은 OTT가 생기기는 했으나 영화는 본래 극장에 가야만 볼 수 있었던 반면, 드라마는 집 안방에서 즐길 수 있었다. 유니콘 남주를 통한 대리만족은, 이렇듯 현실의 피로감을 덜어주는 대중적 매체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유니콘의 비현실성, 약 혹은 독

 

하지만 같은 이유로 오히려 거부감을 표하는 시청자층도 있다. 현실과의 거리감이 약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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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오애순(아이유/문소리)과 양관식(박보검/박해준)의 사랑은 어린아이부터 노인이 되기까지 평생토록 애틋하기만 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다정하지만 특히 애순이가 인생의 팔 할도 아니고 십 할이라는 관식의 순애보가 설렘을 유발했다.
 
그러나 정확히 이 부분, 그저 애순이가 전부인 이 모습이 관식이라는 캐릭터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한다. 어렸을 땐 몰라도, 나이가 들고 현실적인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흔들림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애순은 부상길(최대훈)과 선을 보는 등 인간적인 고민의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관식은 시종일관 애순이뿐이다. 정작 애순에게 그토록 빠지고 확신을 갖게 된 과정은 제대로 묘사되지 않아, 마치 '애순에게 직진한다'라는 인물성을 부여받은 캐릭터로만 느껴진다. 이후 수많은 인생의 굴곡을 넘는 동안에도 둘은 한 번을 싸우지조차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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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제주도 배경 시대극인 영화 <인어공주>를 떠올려보자면, 조연순(전도연)과 김진국(박해일) 역시 젊은 날 제주 바닷가 마을에서 눈부시게 아름답고 풋풋한 사랑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든 연순(고두심)은 억척스러운 사람이 됐고, 진국(김봉근)은 더욱 소심하고 답답한 사람이 됐다. 생계를 위해 노력하고 자녀를 키우는 과정에서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둘은 서로에게 가감 없이 실망하고 미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끝에서 연순은 진국의 병사(病死) 이후, 딸 나영(전도연)으로 인해 진국과의 옛 추억을 떠올리다 결국 웃음을 짓는다. 유니콘 같은 남자는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진실한 사랑이었음을 보여준다.
 
비현실적이기만 한 낭만보다, 때로는 현실에 발 딛고 선 빛바랜 낭만이 더 아름답고 유의미하기도 하다.
 
 
 
드라마의 작품성 확보를 위하여

 

'유니콘 남주'의 존재는 이처럼 수용자에게뿐 아니라, 또한 작품 자체적으로도 아쉬움을 남긴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자연히 위기 극복을 남자 주인공에게 기대게 된다. 이는 두 인물을 모두 다소 납작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보호하고 구원하는 서사가 클리셰로 굳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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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완벽한 비서>에서 강지윤(한지민)의 결핍을 다정하게 채워주는 유은호(이준혁), <동백꽃 필 무렵>에서 앞뒤 가리지 않고 동백(공효진)을 전폭 지지하는 황용식(강하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박은빈)에게 빠져들어 곁을 지키는 이준호(강태오), <선재 업고 튀어>에서 임솔(김혜윤)에게 일편단심이라 '솔친자'라고 불린 류선재(변우석) 등 인기를 얻은 드라마들 속 남자 주인공의 모습은 유독 비슷한 인상을 주는 듯하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장르 불문 로맨스 요소가 과하다'라는 것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비판이다. 드라마는 영화에 비해 통속적이기만 한 매체로 여겨지지만, 영화는 단편 서사, 드라마는 장편 서사일 뿐 드라마도 예술의 한 장르로서 작품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환상적인 로맨스도 분명 많은 수요와 가치가 있는 영역이지만, 보다 다양한 내용을 통해 K-드라마가 더욱 깊고 넓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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