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과 미국이 치열한 우주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던 냉전 시대.
두 강대국의 우주 경쟁 속에서 소련은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여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공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리는 데 성공한다. 소련이 미국을 제치고 우주 개발의 첫걸음을 내디딘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뒤이어 소련은 스푸트니크 2호 발사를 계획한다. 이번에는 무인 위성이 아닌, ‘라이카’라는 이름의 우주 탐사견과 함께. 라이카는 귀환 장치가 없는 우주선에 실려 최초로 우주로 떠난 존재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뮤지컬 <라이카>의 내용이다. 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만약 라이카가 우주의 어느 별에서 불시착하게 된다면이라는 상상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 <어린 왕자>를 엮어 이야기를 이어간다. 실제 역사적 존재인 라이카와 함께 <어린 왕자> 속에 담겨 있던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과 철학적 사유를 더해 극은 두 가지의 이야기를 상상의 얼개로 촘촘히 쌓아 올린다.
극 중 라이카는 어린 왕자와 장미가 살고 있던 B612 행성에 불시착한다. 이곳에서 일찌감치 라이카가 행성에 도착할 줄 알았던 어린 왕자와 장미, 바오밥들이 라이카를 맞이한다.
여기서 어린 왕자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동화와는 다르게 인간에게 깊은 혐오감을 가진 존재로 그려진다.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자신보다 힘이 약한 존재를 억압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며 그는 이러한 인간을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다며 소행성 충돌로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어린 왕자가 라이카를 기다린 이유 역시, 라이카 역시 인간의 욕심으로 희생된 존재이기 때문에 본인과 같은 생각을 가졌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이카는 달랐다. 라이카는 인간을 처벌하기 위해 지구를 폭발시키는 것은 또 다른 희생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라이카도 자신이 실험 대상이 되어 귀환장치 없이 우주로 떠나야 했다는 사실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한동안 왕자가 만든 에너지 비축 장치의 페달을 세게 밟으며 괴로워했으니까.
그러나 라이카는 왕자의 복수심에 동조하지 않는 대신 용서의 방법을 택한다.
뮤지컬은 라이카가 다른 이의 선택에 의해 우주로 보내졌던 존재가 아닌, 자신만의 주체적인 선택을 향해 어떻게 달려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메시지는 다름 아닌 장미의 목소리를 통해 관객들에게 보다 극적으로 전달된다.
장미는 자신도 어린 왕자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으며, 자신이 왕자를 미워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던 어느 날, 웅덩이에 비친 자신을 보게 되었을 때 웅덩이 안에는 아주 못생긴 나뿐이었다고. 장미는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잃고 싶지 않아 ‘나를 사랑하기로 선택’을 결심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그런가, 극 중 내내 나오는 장미의 자기애는 결코 밉지 않다. 지구로 다시 가보겠다는 선택을 내린 라이카를 응원하고,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자신의 잎을 떼어주기도 한다. 이쯤 되면 우리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된다.
뮤지컬 <라이카>는 개, 외계인, 장미, 로봇.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목소리를 빌려 '인간다움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극을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던진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여겨온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를 넘어서, 동식물과 같은 다른 존재들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성찰을 하게 만든다.
극의 마지막에는 라이카 이후에도 인간에 의해 희생되었던 존재들에 대한 자막이 흘러나온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정말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극이 끝난 후에도 이 질문이 계속해서 마음속에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