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동물이 죽으면 무지개 다리를 건너 동물들만이 사는 별로 간다고 한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저 죽음에 대해 완곡히 표현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돌아가셨다'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어색하고, '죽었다'라는 말로 치환하기에는 그들을 사랑하거나, 곁에서 봐온 세월이 너무 길었으니까.

 

나 역시 반려동물을 몇 차례 키웠지만, 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다'라는 말의 뜻에 대해 생각하기에는 어린 나이에 그들이 먼저 곁을 떠났다. 때문에 그들이 죽어서 지구를 떠나, 다른 별에서 살고 있다는 말에 대해 깊이 있게 고찰해본 적은 최근까지도 없었다.

 

그 말의 무게와, 그에 담긴 반려인들의 소망에 대해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된 것은 뮤지컬 [라이카]를 본 후였다. 뮤지컬의 제목과 캐치프레이즈처럼, 인간보다 먼저 우주 여행에 동원되었던 개, 라이카의 이야기이다.

 

냉전 시대, 앞다투어 우주라는 드넓은 공간을 먼저 정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심에 따라 라이카는 그를 관리하던 가장 가까운 연구원인 캐롤라인을 떠나 우주로 향한다. 다만, 현실과 다른 점은 그가 소설 속의 어린왕자가 사는 행성, B612에 도착한다는 점이다.

 

소설 속의 왕자와 달리 왕자는 지구에도, 인간에도 염증을 느끼는 염세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캐롤라인을 비롯한 인간을 너무도 사랑했던 라이카는 그 행성에서 왕자와 장미, 바오밥 나무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가 인간을 싫어하게 된 이유와 함께 자신도 인간을 싫어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되고 큰 충격에 빠진다. 때가 되면 지구로 돌아가 캐롤라인과 재회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라이카의 로켓에는 귀환 장치가 없었던 것이다.

 

귀환 장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라이카는 고통스러웠던 실험들, 그럼에도 캐롤라인을 위해 버텼던 나날들에 대해 생각하며 한참을 괴로워한다. 그럼에도, 결국 라이카는 캐롤라인을 만나기로 결심한다. 함께 생활하며 라이카의 진심을 알게 된 왕자도 지구로 돌아가서 전처럼 살지 않더라도, 캐롤라인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라이카의 소망을 이루어준다.

 

 

3472591859091344460.jpg

 

 

줄거리 부분을 읽으며, 라이카가 뜬금 없이 어린왕자의 행성으로 갔는지 의문이 생기는 이들 또한 있을 것이다.

 

마침 이 후기를 작성하던 중에 이에 대한 공식적인 인터뷰가 라이브러리 씨어터의 공식 계정에 올라와 첨언하자면, 뮤지컬에서 표현되는, 라이카가 떠난 세계는 라이카를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아준, 캐롤라인의 죄책감 어린 무의식이 반영된 세계라고 한다.

 

이는 자신이 아끼던 라이카를 결국 우주로 보냈다는 죄의식이 만들어낸, 캐롤라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인 [어린 왕자]가 녹여진 세계는 어딘가 짠한 마음도 느끼게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욕심으로 떠나보낸 동물들이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으리라는, 인간적인(여기에서는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 또한 제시하고 있다.

 

공연을 보고 나오며,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공연은 무척 좋았지만, 내가 감동을 받았던 장면들마저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일까, 하는 생각에 미묘한 죄책감이 느껴졌다.

 

앞서 말한 줄거리의 끝은, 다시 B612 로  돌아온 라이카가 지구에서 보내진 다른 동물들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켜, 라이카 이후로 우주로 보내진 동물들의 사진을 보았다. 흑백 사진에 찍힌 동물들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고, 조금은 슬퍼 보이기도 했다.

 

그들도 어딘가의 별에서 살고 있을까? 아니면, 우주의 어느 구멍을 통해 또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났을까? 이마저도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우주 어딘가에서 그들이 행복하게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범한 무지개 다리를 건넌 것이 아닌 만큼, 인간은 결코 찾아낼 수 없는 그들만의 별에서 지내고 있기를 소망한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