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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개의 카페가 있는 대한민국의 '대(大) 카페 시대'

그 중 오직 단 하나의 카페만이 선사할 수 있는 순간은 분명 있다고 믿는 청년의

진솔한 카페 관찰 일지

 

 

 

01. 선망의 수플레와 카페 [5to7]


 

아직 디저트라는 존재가 생소하던 시절, 수플레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은 어린 시절 TV로 보던 애니메이션을 통해서였다. 당시 애니메이션에는 소녀 주인공들이 파르페, 수플레, 팬케이크 등 당시의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디저트를 먹는 장면들이 자주 나왔다. 그 시절 나에게 달달한 디저트는 시장표 빵 몇 가지가 전부였기에, 화면 속으로 보이는 화려하고 달콤해 보이는 각양각색의 디저트들에 선망을 갖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속 단맛 가득한 장면들은 이후 내 머릿속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게 되었다.

 

20대가 되어 본격적으로 디저트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팬케이크를 비롯해, 마카롱, 크레페까지, 어릴 적 내가 꿈꾸었던 다양한 디저트들을 하나씩 맛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수플레만은 그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

 

내가 수플레라는 디저트를 마침내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였다. 성수동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길목 한편,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다 보면 구옥의 빌라를 개조하여 만든 [5to7]이라는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디저트를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해당 카페에 대하여 몇 번 들은 적이 있을 정도로 그곳의 수플레는 유명했다. 나는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드디어 수플레를 맛볼 기회가 왔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Time to be free], 즉 '자유로워지는 시간'을 의미하는 문구가 적혀있는 고즈넉한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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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내부로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탁 트여 중앙에 길게 놓인 오픈 바였다. 브루잉 바처럼 길게 이어진 사각형의 바 안으로는 깔끔하게 검은색 옷을 맞춰 입은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시간이었기 때문에 카페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그러나 직원들은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친절하게 손님들을 응대하면서도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실수 한 번이라도 할 법 한데, 그들은 모두 어지러움 없이 차분하게 디저트와 음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픈 바를 사이에 두고 탁 트인 통유리창 옆으로는 한국인들뿐만이 아닌 외국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은은한 조명 아래, 테이블마다 분홍빛 딸기 수플레와 녹색의 녹차 수플레 등 다양한 색감 알록달록한 수플레들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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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으로도 사람들이 드나드는 모습을 보고 조심스럽게 계단을 한 층 더 오르니, 한층 더 넓고 시야가 확 트인 공간이 펼쳐졌다. 화이트 톤으로 꾸며진 넓은 공간, 탁 트인 통유리창, 그리고 간격을 두고 놓인 우드톤 가구들이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같이 온 일행이 있다면 한숨의 여유를 돌리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근황을 나누기에 적합한 공간이었다. 그날 내가 혼자가 아니었다면 분명 이 따뜻한 3층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꼭 2층에 머무르고 싶었다. 계란 흰자를 머랭 치는 소리와 핸드드립 커피가 추출되는 소리, 잔잔한 음악 소리와 대화 소리까지. 사방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들이 혼자 온 나에게 전달하는 다정함이 있었다. 나는 창가에 앉아 수플레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 소리들 속에 몸을 맡기기로 마음 먹고 2층의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한쪽에 조용히 앉아 시간을 보내자 어느 순간 나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이 카페의 사장님이었다. 또렷한 눈빛이 인상 깊었던 그와 나는 기자와 사장의 관계로 인사를 나누었다. 곧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02. '핫플레이스'가 되기 전, 그가 사랑한 동네


 

나는 '핫플레이스'에 위치한 유명한 카페라고 하면, '핫플레이스'가 먼저 생기고 그 이후 카페가 생겨났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상권이 활발해지며 예쁜 카페가 생겨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런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각지의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이 모이다보며 또한 자연스럽게 카페는 유명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편견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5to7] 사장님은 오히려 성수동이라는 곳이 '핫플레이스'라는 곳으로 떠오르기 전부터 성수동의 변화를 지켜봐온 진정한 원주민이었다. 어릴 적부터 서울숲의 녹음을 마시고, 성수동이 갖고 있었던 골목의 다정함과 고즈넉함을 바라보며 자라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창업을 한다면 성수동에서 가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해왔다. 골목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 상권이 지금과는 다르게 형성이 되지 않았던, '우리 모두의 성수'가 아닌 '그저 우리만의 성수' 였을 때부터 말이다. 자신이 자라온 이 지역이 다른 이들에게 많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에게는 품어져 있었다.

 

"제가 처음 이 카페를 시작했을 때, 이곳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조용한 동네였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곳에서 가게를 하고 싶었어요. 성장에 보탬이 되고 싶었으니까요."

 

그의 말에 나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저는 창업이라는 것은 당연히 사람이 많이 가는 곳에 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5to7]이 성수동에 위치한 이유도 성수동이 유명한 동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오히려 그 반대라니 놀라워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사장님께는 성수동에 카페를 만든다는 것이 오히려 도박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수동이 이렇게 유명해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그 당시의 저는 제가 사랑하는 이 골목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고, 조금 더 다채롭게 변화 시키고 싶었어요. 속된 말로 이곳을 살리고 싶었죠. 요즘은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시는 곳이 되어 기쁠 따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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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5시부터 7시까지의 여유를 담은 공간


 

그와 대화를 하며 알게 된 점은, 이 공간의 이름과 슬로건, 그리고 수플레라는 디저트는 모두 하나의 맥락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예쁘고 맛있는 것을 찾다가 수플레를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수플레는 그저 하나의 디저트가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유’ 그 자체였다.


스물일곱에서 스물여덟. 인생의 방향을 고민하던 그 나이에 그는 카페를 시작했다. 모두가 숨 가쁘게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자신의 자리를 고민했고, 그는 자라온 동네, 성수동에서 함께 자란 오랜 친구들이 잠시라도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는 바쁜 하루를 마무리하는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노을빛이 스며드는 시간 속에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쉼'이라는 콘셉트를 정한 이후 그는 한국에서 의미하는 '쉼'의 의미를 곱씹어보았다. 한국 사회에서 여유는 때때로 또 다른 노력의 형태처럼 여겨진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쉼마저도 치열하게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여유를 주는 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그는 어쩌면 그것이 '기다림'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수플레는 즉석에서 만든다 하더라도 오랜 정성이 필요한 디저트였으니까. 한 입의 달콤함을 위해 기다림을 갖는 과정에 그는 휴식을 녹여내는 것이 그가 떠올린 '쉼'에 대한 해답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오직 기다림과 쉼의 공간이 있는 곳, 그곳이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수플레를 먹을 수 있는 [5to7]이었다.

 

 

 

04. 먹는 재미의 수플레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솔직히 말하면, 제게 수플레는 아직 낯선 디저트예요. 그래서인지 [5to7]의 수플레만이 갖고 있는 강점에 대해 더욱 궁금한 것 같아요. 이후 다른 곳에서 다른 수플레를 먹을 때, [5to7]에서 먹었던 맛을 추억하며 함께 먹고 싶어요."

 

내가 용기 내서 말했을 때, 그는 빙그레 웃으며 이야기했다.

 

"수플레로 아이템을 선택했을 때, 정말 이 세상의 다양한 수플레를 먹어본 것 같아요. 그리고 느낀 것이 일본은 전통에 강하고, 대만은 속도에 강하다는 것이었죠. 전통이 있는 역사 깊은 일본의 수플레와 빠르면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대만의 수플레에서 더 나아가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도록 한국만의 특색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리고 한국은 다양하게 변주를 주고 조합하여 색다른 디저트를 창조하는 데에 강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저는 한국에서만 선보일 수 있는 디저트를 만들고 싶었어요.

 

수플레는 부드럽고 폭신한 게 특징이에요. 그만큼 자칫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죠. 저는 '부드럽고 맛있다'를 넘어서서 '먹는 재미까지 있다'는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었고, 그렇게 나오게 된 것이 저희 대표 메뉴인 [펄 크림 브륄레 수플레]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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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떠난 이후, 나는 그가 이야기했던 '재미'를 주는 [펄 크림 브륄레 수플레]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펄 크림 브륄레 수플레]를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그의 이야기에 따라 수플레를 준비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나는 커피 한 모금과 함께 여유를 즐기며 차분하게 수플레를 기다렸다. 그리고 10분에서 2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마침내 수플레가 준비되었다.

 

 

 

05. 사르르, 쫀득, 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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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처음 마주하는 수플레를 앞에 두고 포크를 조심스레 가져다 댔다. 포크 끝에 닿은 그것은 빵 같기도, 푸딩 같기도 했다. 빵과 같이 퐁실퐁실 부풀어 올라 있으면서도, 접시를 움직이거나 포크로 조금씩 두드릴 때마다 푸딩처럼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휘청였다. 수플레 위엔 얇게 굳은 설탕 코팅이 덮여 있었다. 포크로 톡 두드리면 경쾌하게 깨지는 소리가 났고, 그 아래엔 크림이 풍성하게 퍼져 있었다. 옆에는 검은 타피오카 펄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막상 수플레를 마주하니, 어떻게 먹는 것이 좋을지 괜히 조심스러워졌다. 수플레만 한 입 떠서 먹어볼까? 크림의 맛을 먼저 볼까? 머뭇거리다가 내가 내린 결정은 설탕막과 수플레, 그리고 타피오카 펄을 떠서 동시에 먹는 것이었다. 그가 이야기하는 '먹는 재미'를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그렇게 처음 수플레를 입 안에 넣었을 때 마주한 수플레의 느낌은, 입에서 녹아내린다는 것이었다. 뻔한 표현이지만 달리 이야기할 말이 없다. 그 순간만큼은 디저트가 혀 위에서 정말로 사르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공기처럼 가벼운 수플레의 텍스처가 입 안에 감기면서 부드럽게 바스러졌고, 달콤함과 함께 고소한 계란 흰자의 풍미가 입안에 퍼졌다. 그리고 그 부드러움과 촉촉함 위로 설탕의 바삭함과 펄의 쫀득함이 톡톡 튀듯 더해졌다. 타피오카 펄을 씹으며 쫀득함과 옅은 고소함을 수플레와 함께 느끼다 보면 어느 순간 바삭거리며 달콤한 캐러멜 코팅이 깨져 단맛이 입안에 퍼졌다.

 

가장 놀라웠던 건, 이질적일 줄 알았던 이 모든 맛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잘 어울렸다는 점이다. 사실 '펄'과 '크림 브륄레'와 '수플레'는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졌기에 맛이 따로 놀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크림 브륄레의 달콤한 캐러멜 맛이 계란 흰자의 부드러운 풍미와 펄의 고소함을 감싸며 오히려 조화를 이루었다. 이처럼 다채로운 맛과 식감을 느끼다가 입안의 단맛이 강해졌을 때 쌉쌀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면, 지금까지의 풍성한 맛이 아메리카노에 씻기며 이보다 더한 행복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그가 이야기하는 '먹는 재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수플레라는 디저트는 다른 디저트에 비해 볼륨이 있는 디저트다. 아무리 맛있는 것이더라도, 똑같은 단 맛을 계속해서 먹는다면 물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펄 크림 브륄레 수플레]는 혼자서 수플레 하나를 다 먹어치우는 과정에서 지겨움을 느낄 틈이 없었다. 부드럽고 싶으면 수플레를, 쫀득하게 무언가를 씹고 싶으면 펄을, 바삭하게 단 맛을 먹고 싶으면 크림 브륄레는 먹고, 그러다 또 세 개를 한 입에 먹으며 조화로움을 느끼다 아메리카노를 먹으면 어느새 그릇의 바닥이 보였다.

 

 

 

06. 기다림을 먹은 시간


 

어느새 접시는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그와의 대화, 여유의 공기, 유리창 너머의 오후 햇살은 그곳에 앉아 여운을 느끼는 나에게 함께 남아 있었다. 처음엔 단지 궁금했던 디저트 하나였지만, [5to7]에서 만난 수플레는 나에게 '기다림을 통해 얻는 즐거움'이라는 작은 진실을 가르쳐 주었다.

 

기다림은 때때로 지루함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에서 수플레를 기다리는 시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쉼이었다. ‘빨리’에 익숙한 나에게 ‘천천히’라는 속도를 다시 알려준 이 디저트. 나는 그날, 단순한 단맛이 아니라 '시간을 음미하는 법'을 배웠다.

 

단 한 번의 경험에 불과했기에 나에게 수플레는 여전히 낯선 디저트다. 하지만 처음 먹어본 수플레가 주었던 여유와 다정함은, 이후 다른 수플레를 먹는다 하더라도 오래 마음에 남아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어째서인지 가뿐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오후 수플레 만큼이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페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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