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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고등학교 삼 학년 때 나는 모든 대학에 떨어졌다.


내가 준비하던 문예창작과는 대부분 실기로 학생을 뽑았고, 개설 대학 또한 일반과에 비해 턱 없이 부족했다. 경쟁률 또한 낮으면 10대 1, 높으면 80대 1 이상으로 뛰었다. 글 쓰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내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재수가 확정되고 나서부터 매일 내 선택을 후회했다.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가 꽃다운 청춘을 보내고 있는데, 방구석에 앉아 다리부터 천천히 시들어가는 듯한 내가 너무나도 싫었다. 만개의 계절인 봄이 원망스러웠다.


매일 한 편의 단편 소설을 읽고 분석문을 쓴 뒤 침대에 누우면 뼈의 무게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 무게가 너무 육중하게 느껴져서 쉽게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영원한 잠을 자게 해 달라고 믿지도 않는 신에게 빈 적도 있었다.


영화를 보고 그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실수를 용납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미워하고 원망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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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걸즈’의 내용은 어렵지 않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정확하다. '실수해도, 고난이 닥쳐와도, 우리 스윙하자.'


영화는 학교의 야구부 응원을 다니던 밴드 동아리의 학생들이 상한 도시락으로 인해 식중독에 걸린 뒤, 공석이 된 자리를 낙제 여고생이었던 주인공 토모코와 친구들이 들어가게 되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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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밴드 활동을 위해 트럼펫, 색소폰, 트럼본 등의 악기를 다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연습한다. 폐활량을 기르기 위해 매일 아침 러닝을 뛰고, 방학 내내 붙어다니며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 악기에서 입을 떼지 않는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입원했던 밴드부가 퇴원함과 동시에 원래의 자리, 그러니까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여기서 굴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밴드인 ‘스윙걸즈’를 꾸려 연습에 매진하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큰 대회에 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대회에 제출해야 하는 연습 비디오테이프를 늦게 보내 출연권조차 얻지 못한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우천으로 다른 팀이 빠지게 되며 무대에 대신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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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스윙걸즈가 성황리에 공연하는 것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눈길을 뚫고 온 스윙걸즈를 비웃던 관객들도, 스윙걸즈가 연주하는 멋진 하모니에 감동하며 그들과 함께 춤을 춘다.


분명 밝고 유쾌한 장면인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영화 속의 주인공 토모코와 그 친구들은 실수를 참 많이 한다. 사실 누구보다 밴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싶으면서 ‘이런 지루한 활동 하기 싫었다고’ 악담을 퍼붓기도 하고, 중고 장터에서 악기를 잘못 사 연주 시도조차 못 하는 상황에 부닥치기도 하며, 앞에서 서술했듯 비디오를 보내지 않아 대회에 나가지 못할 위기를 맞닥뜨리기도 한다.


연속되는 실수 속에서 그들은 웃음을 잃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간다. 또한 그들의 실수에 대해 아무도 지탄하거나 타이르지 않는다. 무릇 학생이란 그래도 되는 나이니까 말이다.


내가 입시를 준비했던 고등학교 삼 학년과 스무 살 또한 마음껏 실수해도 되는 나이였다. 남들보다 느리다고 해서, 혹은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한다고 해서 비난하는 사람 한 명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왜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세웠을까.


평균보다 큰 키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태아처럼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잤던 그때의 나에게 이 영화를 너무나도 보여주고 싶었다. 실수해도 괜찮다고,  조금 느린 것도 나쁘지 않다고. 좀만 잤다가 다시 일어나면 된다고. 너, 정말 그래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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