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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학부 저학년 시절, 수업 내에서 주어진 주제로 작업을 하는 수업을 들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주제는 [편의점]이었고, 평소에 불안과 우울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주로 작업했던 내게는 되려 막연하게만 느껴졌다. 때문에 다른 수업에 비해 고민하는 기간을 길게 가졌고, 컨펌 날짜는 빠르게 다가와 결국 작업실에서 밤을 새게 되었다. 물론 맨정신으로 밤을 새기에는 너무 힘이 들었기 때문에, 교내 편의점에 팔던 카페인 음료를 마시며 그림을 그렸다. 카페인에 강한 편이 아니었기에 어느 시점까지는 잠이 깨었지만, 그 이후로는 심장이 지나치게 빠르게 뛰거나 속이 답답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평소에는 쉽게 느낄 수 없던, 미묘하게 고통스럽고도 들뜨는 경험 자체를 캔버스로 옮겨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고, 높은 카페인 함량으로 유명하던 모 편의점의 [스누피 커피 우유]를 그리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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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 캔버스에 아크릴, 2022

이어지는 시리즈가 꽤 많지만, 그것들은 다른 글에서 이어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배경은 카페인 성분이 몸에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미묘한 울렁거림과 불쾌하게 들뜨는 기분 같은, 평소에 느껴볼 수 없는 감각을 시각화하기 위해 나름대로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이 작업에 대해 얘기할 때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남들 앞에 서는 느낌이라 한동안 꺼내어 보는 일도, 그림에 대해 자세하게 말하는 일도 망설였다. 그만큼 일상에서 무언가를 찾아서 창작물로 전환하는 일은 내게 낯설고 어려운 일이었다. 내게 그림은 캔버스 앞에 앉아서, 마음을 먹고 시작하는 일처럼 느껴졌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때문에 이어지는 다음의 글에서는, 그러한 마음을 어떻게 가볍게 바꾸고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물론 이 글에서는 어쩔 수 없는 데드라인 때문에 작업을 시작했지만!) 캔버스나 컴퓨터 앞에 앉기는 참 어렵고, 점 하나를 찍는 일은 더욱 어려우니까. 그렇다면 창작물의 주제라도 마음 편히 접할 수 있는 것들로 정해보는 것이 어떨까, 단순히 밤을 새야 한다는 이유로 편의점에서 집어 왔던 카페인 음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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