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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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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어느 정도 풀린 2월의 어느 날 엄마와 나는 뮤지컬을 보았다. 그러기 위해 나는 반차(반일 연차)를 썼고, 엄마는 대구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오셨다. 그리고 우리 둘은 한남동의 사람들로 북적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나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뮤지컬 중 하나인 [지킬 앤 하이드]를 관람했다. 3층에서 관람할 예정이었기에 오페라글라스를 가지고 관람해야 한다는 게 필수란 걸 엄마에게 계속 어필했던 지라, 엄마는 캐리어에 오페라글라스를 1등으로 챙겼다고 한다. 너무 잘 챙겨둔 것이 문제였던 걸까? 짐을 빨리 보관함에 보관하고 자유인의 몸이 되어야 한다는 일념에 둘 다 몰두한 나머지, 오페라글라스를 캐리어에서 빼고 보관함에 캐리어를 넣어야 한다는 걸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우리는 한강진역의 물품보관함에 무거운 짐덩이들을 쏙 집어넣었다. 카페를 가던 도중 엄마가 오페라글라스를 빠트렸다고 해서 기억이 난 덕분에, 다행히도 공연 전에 찾아서 무사히 관람을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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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앤하이드]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는, 무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에 미국 배우가 내한하여 연기하는 오리지널 버전의 [지킬앤하이드]를 감상했을 때였다. 그때 나는 휴학을 앞둔 대학교 3학년이었다. 예전에는 뮤지컬을 관람하면 그 기억을 선명하게 남기기 위해 뮤지컬 전용 다이어리에 공연 티켓과 함께 나의 감상을 길게 적곤 했다. 관람할 당시 나는 철학자/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의 수업을 듣고 있었고, 나는 그 수업에서 느끼는 어려움으로 인해 휴학을 다짐했었다. (지금 보니 그때 B석의 할인가 가격은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상상하기도 어려운 무려 3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여기서 이 뮤지컬과는 뜬금없어 보이는 아우구스티누스 얘기를 가져오는 이유는, 그가 이 뮤지컬의 핵심 소재이기도 한 '선과 악'의 문제를 다뤘던 철학자 중 한 명이었고 그가 설명해 놓은 선과 악에 대한 이야기는 22살 무렵의 나에게 많은 생각거리(라 부르고 과제의 고통을 안겨주었다)를 남겨주었음을 말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는 선과 악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악은 실체가 아니다. 악은 선의 결핍이다."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아도 악은 적극적으로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 같은데, 왜 그는 악을 무력한 것처럼 보이는 결핍된 존재로 보았던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이후 근대의 라이프니츠(G.W. Leibniz)에 의해 (공식적으로 라이프니츠가 표명한 것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신정론(théodicée) 즉, 선하고 전능한 신이 창조한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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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당시 이 뮤지컬을 보기 전까지 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그러한 말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는데, [지킬앤하이드]를 보고 나서는 선/악이 혼재되어 있는 인간에게서 악을 분리해내려 했던 지킬 박사의 시도가 한편으로 이해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지를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맥락에서 조금은 이해해볼 수 있었다. 8년 전 공연 다이어리에 적혀 있는 내용을 가져오자면, "과연 인간이 악을 분리해내는 순간 그것을 주재하는 영향력이 사라져서 악이 활개를 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악은 선과 함께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이해가 된다." 적어도 '우리가 악과 관련된 무엇이 세상에 존재한다'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본다면, 선으로부터 악이 분리되어 독립된 실체가 되는 순간, 악이 선에 의해 정지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동장치조차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악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면, 악은 언제나 선과의 연관 속에서 '위치'해야만 한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자칫 악을 옹호하게 되는 것으로 결론이 흘러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8년 전의 나는 아우구스티누스와 라이프니츠를 비롯한 신정론을 도대체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이번 뮤지컬을 관람하고 나서 이 극에 대한 글을 적기 위해 손호현 저자가 쓴 도서 [악의 이유들: 기독교 신정론]을 읽게 되면서 생각을 그때보다 조금 더 발전시킬 수 있었다. 책속에서는 마치 뮤지컬 속 지킬 박사가 깊게 몰두하는 문제를 그대로 읊고 있는 듯한 문장도 발견된다. "왜 인간의 의지는 자유롭게 선만을 행하지 않고, 악도 선택하는가? 악이란 도대체 어떤 선택을 가리키는 것인가? (...) 인간은 자유의지로 항상 선만을 선택할 수는 없었는가? 태초에 항상 선을 선택하고 악을 피하는 아담 혹은 인간을 창조하는 것은 하나님에게도 불가능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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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여러 신학자들은, 항상 자발적으로 선하게만 행동하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존재하는 세계는 모든 가능한 세계 안에서 '일어날 수 없는' 세계라고 설명한다. 덧붙여 라이프니츠는 일종의 '미학적 신정론'을 가져와서, 전혀 악이 없는 세계보다 도구적 악을 가진 세계가 더 나을 수 있는, 그래서 선을 증가시킬 수 있는 세계라고까지 말한다. 그는 일종의 '대조의 방식'을 이용하여, 음식/곡예/그림/건강 등의 미학적 유비를 들면서 약간의 악이 선을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만들고 세상의 풍요로움을 자아낸다고 본다.

 

이에 따라 조금은 중도적인 이해를 해보자면 인간은 창조된 존재(피조물)이기 때문에 유한성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그로부터 인간은 악과의 대조의 기제를 통해서만 선을 인식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의 문제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동시에 이 점이 인간 존재에 대한 비극성을 불러 일으켜 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불완전하지만 그렇기에 또 아름다울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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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내가 지킬 박사였다면, 생겨날 수 있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악 그자체인 하이드가 자신에게서 분리될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놓고 자기 자신에 대한 실험을 시작했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물론 그렇게 하지 못한 데에는, 선-악을 분리해내는 실험에 대한 허가를 요청하기 위한 위원회에서 지킬 박사의 실험안이 모두로부터 거절당했고 그로 인해 급박하게 실험을 시작하고 결과를 내기 위해서였던 것이 크긴 하다. 뮤지컬의 음악에 관해서는 동일한 저서에서, 질서에 근거한 신의 섭리를 설명하기 위해 비유적으로 음악의 성질을 표현한 문장을 가져옴으로써 해당 뮤지컬의 음악에 대한 감상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노래의 각각의 소절들이 질서에 따라 '소멸'할 때 함께 이루어내는 음악이 아름다운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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