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싫어하는 것에 관해 쓰기로 했다. 저번에 싫어하는 ‘것’에 관해 쓴 적이 있는 만큼, 이번에는 ‘싫어하는’ 것에 관해 쓰기로 했다.


‘싫어하다’를 사전에 검색하면 함께 뜨는 유의어의 범위가 은근히 넓다. ‘낯가리다’, ‘꺼리다’부터 ‘질색하다’, ‘혐오하다’까지. 이 넓은 스펙트럼에서 ‘싫어하다’는 어디에 가까운 말인지 궁금해져 단어의 정의를 확인한다.


‘싫어하다’는 ‘싫게 여기다’는 뜻이고, 또 ‘싫다’는 ‘마음에 들지 아니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싫어하다’는 ‘마음에 들지 아니하게 여기다’.

 

 

 

상상 1.


 

갑자기 ‘마음에 들지 아니하게 여기는’ 것이 싫어하는 것, 그러니까 부정적인 것이 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내 마음에 들게 여기는 것이 좋은 것임은 이해가 간다-참고로 ‘마음에 들다’는 ‘(무엇이 사람의) 마음이나 감정에 좋게 여겨지다’라는 관용구. 하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게 여기는 것이 가치 평가가 들어가지 않는 ‘무관심’이나 ‘그럭저럭’, ‘괜찮다’ 단계를 거뜬히 뛰어넘고 곧바로 싫. 어. 한. 다. 상태가 되는 것이 좀 의아하다.


상상 1. 내 마음이 동그랗게 있을 때 그 원의 안쪽에 놓인 것들이 내 마음에 드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그밖에 있는 것들은 모조리 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이렇게 생각하면 사람들은 그냥 다 같이 혐오 속에 빠져 살아야 할 것 같다. 아무리 ‘마음이 넓은’ 사람이어도 전체로 보면 ‘속이 좁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너무 야박한 표현이다.

 


kiley-lawson-RpDUXKjb7DM-unsplash.jpg

 

 

 

인류애를 위한 상상 2.



이번에는 가로로 선을 긋고 그것을 마음의 경계라고 이름 붙인다. 그 선 위에 오는 것은 마음에 드는 것, 그 아래에 위치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 마음에 들게 여기다/좋아하다 

~~~ (0) 마음 경계선 ~~~

(-) 마음에 들지 않게 여기다/싫어하다

 


이렇게 보면 마음에 들지 않게 여기는 것이 싫어하는 것인 이유를 알 수 있다. 정확히 경계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면 아주 조금이라도 양의 값이나 음의 값을 갖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을 이렇게 그린 뒤 사람들에게 각자 마음속에 물건을 놓아보라 하면 저 경계선이 미어터질 것이다. 그럼에도 양의 값도 음의 값도 갖지 않고, 호오가 없는 저 상태를 그저 경계라고만 표현해야 하는 것이 여전히 아쉽다. 아무리 “좋지도 싫지도 않아”라고 강조해 봐도 “아니 그래도 아주 조금이라도 더 치우치는 쪽이 있을 것 아니냐”며 ‘보통이다’라는 답을 용납하지 않는 심리 검사 같다. 


게다가 이 그림은 일명 ‘아리송’ 상태, 그러니까 좋은지 싫은지 잘 모르겠는 애매한 상태를 잘 나타낼 수 없다. 이 아리송한 것들도 경계에 놓여야 할 것 같은데, 그러면 좋지도 싫지도 않은 것들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 

 

 

 

경계선의 밀집도를 낮추기 위한 상상 3.



이건 허즈버그의 ‘2요인 이론’에서 비롯한다. 2요인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구는 만족 요인(동기 요인)과 불만 요인(위생 요인)으로 구분되고 이 두 요인은 상호 독립적이다. 만족도가 하나의 척도로 이루어져서 높으면 만족, 낮으면 불만족 상태가 되리라는 통념과는 달리, 만족도와 불만족도는 각각의 척도를 갖고 별개의 값을 가진다.


이 이론을 마음에도 적용하면 마음은 동그라미 두 개로 그려져야 한다. 좋아하는 마음 동그라미 하나랑 싫어하는 마음 동그라미 하나. 이 두 마음은 겹칠 수도 있기 때문에 좋아하고도 싫어하는 마음이 있을 수도 있고,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마음도 있을 수 있다.



(      좋아하는 마음  (        )  싫어하는 마음      )

 

이 상상도를 보편화하려면 기존의 표현과는 다른 언어생활이 준비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마음에 들어?’라고 물었을 때,

a) 응, 좋아하는 마음에 들어. (호O 불호X)

b) 응, 싫어하는 마음에 들어. (호X 불호O)

c) 응,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에 들어. (호O 불호O)

d) 아니, 마음에 안 들어. (호X 불호X)

e) 잘 모르겠어. (호-- 불호--)

의 답변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초기의 혼란은 불가피하겠지만, 복잡한 마음 상태를 표현할 수 있으며, 다섯 가지 답변 모두 벤다이어그램으로도 명확히 나타난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 상상도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싫어하다’의 정의가 ‘싫어하는 마음에 들게 여기다’가 되어버린다는 순환 정의 오류에 빠진다는 것. 사전을 뒤져보며 ‘싫어하다’의 유의어를 활용하려 해도 그 단어들의 정의에 ‘싫어하다’가 이미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싫어하는’ 것을 단순히 ‘좋아하다의 대척점에 있는 것’, 또는 ‘내 마음 바깥에 있는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공포와 같은 인간의 원초적 감정에서부터 접근하며 새로이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지금껏 개인의 취향으로만 여겨지고 제대로 논의되지 않던 ‘좋음’과 ‘싫음’의 정의를 재고하여 극도의 개인화가 이루어지는 세태에서 현대인의 보편적인 감정을 찾는 데 기여할 것이며 이제 장황하게 시작하여 허황하게 끝나는 글을 황급히 마무리하는 바이다.

 

 

 

image.pn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