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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욕망의 비극


 

18세기 프랑스, 생선 비린내로 가득한 시장에서 태어난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이하 그루누이)는 태어남과 동시에 버려졌다. 만약 그가 울지 않고 그대로 죽어버렸다면, 그의 존재는 오물과 썩은 내음 사이에 묻혀 흔적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살고자 발버둥 치며 끝내 울음을 터트렸을 때, 자식을 버린 그의 어미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루누이는 남다른 후각의 소유자였다. 그는 세상 모든 냄새를 구별하고 기억했다. 처음에는 좋은 향, 나쁜 향 가릴 것 없이 모든 향을 탐했지만, 어느 날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여인의 체취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는 그녀의 향을 소유하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였고, 그녀를 미행하다 우발적인 살인까지 저지르고 만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죽음보다도 그녀의 체취가 사라져 간다는 것에 절망했다. '향'이라는 비가시적 대상을 소유하고자 몸부림치는 남자, 비극의 시작이었다.

 

 

 

욕망을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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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에서 화려한 장식과 패션은 잔혹한 현실을 가리기 위한 도구였다. 악취를 감추기 위한 향수, 더러운 길의 오물을 피하기 위한 모자와 높은 구두는 결핍과 불완전함에서 비롯된 욕망의 산물이었다.

 

라깡은 ‘욕망은 결핍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욕구(need)는 요구(demand)로 표출되고, 충족될 듯 충족되지 않는 잔여물은 욕망(desire)으로 이어진다. 그루누이의 욕망 또한 자신의 결핍에서 비롯되었다. 흔히 사람들이 ‘무취’라고 말하는 것들에서도 고유의 향을 감각하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결국 자기 몸에서 어떤 냄새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치 그의 존재는 세상에서 지워진 듯 희미했다. 그는 이러한 소외감에서 벗어나고자 완벽한 향을 찾아가둠으로써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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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to learn how to capture scent.

- 향을 가둘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해요.

 

 

'욕망을 욕망한다.’ 그루누이는 특정한 향수 자체를 갈망한 것이 아니라, '그 향을 사랑하고 탐하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했다. 욕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다. 완전히 충족되었다고 믿는 그때, 충족되지 못한 채 남은 부산물은 다시 새로운 욕망을 낳는다. 완벽한 향수를 만들어 냈을 때, 그토록 바라던 사랑을 얻은 듯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향수에 취한 채 애정을 보냈을 뿐, 끝내 그는 외면받았다. 향이 모두 증발해 버렸을 때, 그는 세상에 남겨진 단 한 명의 고립된 존재가 된다. 본디 향이란 그런 것이다.


 

 

그루누이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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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는 동시에, 실체 없는 대상을 향한 집착은 자기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 현대사회는 증명의 사회이다. 우리도 그루누이와 같이 ‘완벽한 향수’를 찾아 헤매는지도 모르겠다. 외모, 스펙, 재력을 욕망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이는 우리의 솔직한 욕망이며, 욕망이 없다면 발전도 없다.

 

그루누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살고자 하는 욕망,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은 몇 번이고 그루누이를 살려냈다. 또 비루하고 불합리한 삶에서 군말 없이 버틸 수 있는 힘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실체 없는 향'을 손에 넣고자 했던 그릇된 탐욕은 결국 사람의 체취를 빼앗기 위한 살인이라는 비뚤어진 욕망을 낳는다.

 

언젠가는 이 갈증이 해소될 것이라는 믿음. 욕망의 오류이자, 비극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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