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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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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의 사진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위축되고 소심해 보인다. 살면서 한 번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흔한 얼굴이랄까. 우리가 보통 위대한 예술가에게서 기대하는 어떤 대담하고 자신만만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언뜻 유약해보이는 인상을 가진 쇼스타코비치는 보기와는 달리 독재 정치와 전쟁으로 얼룩진 러시아 현대사를 관통하며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는 어렸을 때 러시아 황실이 무너지고 볼셰비키 공산당이 집권하는 것을 목격했다. 레닌과 스탈린 독재 시절을 거쳐 나치군과의 참혹한 전쟁을 견디고 기어이 포스트 스탈린 시대까지 생존하면서도 쉬지 않고 곡을 썼던 사람. 그의 인생을 따라가 보면 독재와 전쟁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예술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짚어볼 수 있다. (1편 "전쟁 한복판에서도 예술이 할 수 있는 일" 참고)

 

더불어 예술이란 누구의 것이고, 예술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담론에도 흥미로운 사례집을 제공한다. 이번 편에서는 쇼스타코비치의 삶과 음악을 중점으로 예술의 ‘기능’과 잠재성을 파헤쳐볼 것이다.

 

 

 

예술은 누구의 것인가?


 

러시아 황실이 몰락한 후 권력을 잡은 볼셰비키 공산당은 음악과 예술이 더 이상 귀족의 것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예술은 이제 ‘인민의 것’이 되었다. 그런데 인민의 것이 되는 순간 예술은 어떤 기능을 해야만 했다. “인민을 위한” 예술.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가?

 

레닌은 예술의 힘을 알았다. 그래서 공산주의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데 예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레닌 시대가 저물고 스탈린이 집권하며 대규모 숙청이 시작되자, 예술이 “공산당과 인민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오로지 당국이 판단하게 되었다. 스탈린이 비판하는 예술은 전부 유해한 것이었다. 아무도 그 기준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건 무엇도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스탈린의 공포 정치의 핵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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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누군가의 것’이 되고 그 기능이 특정되는 순간, 오용된다.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따라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을 가르는 기준이 성립하고,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예술은 검열된다. 표현의 자유가 박탈당한다.

 

당대에 소련의 스타 작곡가였던 쇼스타코비치조차 스탈린의 무작위식 검열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의 오페라 <므첸스크와 맥베스 부인>이 스탈린과 당국에 의해 공개적인 비판을 당한 것이다. 이제 그는 언제 잡혀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루하루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살얼음판 걷듯이 살아내며 그는 묵묵히 곡을 썼다. 다음에 발표하는 곡에서만큼은 그가 ‘공산당과 인민을 위한 음악’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했다.

 

교향곡 5번이 초연되던 날, 쇼스타코비치는 무척 긴장한 채로 공연에 참석했다. 관객들은 느린 3악장에서 스탈린의 독재 아래에서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이어진 4악장에서 힘차고도 요란한 승리의 팡파레로 곡이 마무리되었다.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당국에서도 무척 흡족해하며 드디어 쇼스타코비치가 교화되어 ‘모범적인’ 음악을 만들어냈다고 평했다. 한동안 이 곡은 소련 체제를 선전하고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활용되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연주 영상  

 

 

주목할 점은, 교향곡 5번이 스탈린에 의해 학살된 사람들에 대한 애도의 시간을 준 것과 동시에 스탈린의 공산당을 찬양하는 데도 성공했다는 점이다. 한 곡이 완전히 상반된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었다. 요즘 와서는 4악장에 대한 의견마저도 분분하다. 4악장의 요란한 피날레는 진정한 승리가 아니라 마치 강요된 것만 같은 억지스러운 승리라는 것이다. 어느 쪽이 진짜 쇼스타코비치의 의도였을까?

 

 

 

예술은 사상을 전달할 수 있는가?



어떤 말이나 글도 철저히 검열되고 감시되던 시기에 살았던 인물이라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기록은 대체로 불완전하거나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가 소련 체제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한 말이나 글은 당에 의해 강압되었거나 왜곡되었을 확률이 높다. 포스트 스탈린 시대에 가서는 그의 음악이 재평가되면서 스탈린과 소련 체제에 대한 비판을 은밀히 음악으로 표현하여 불의에 맞선 인물처럼 해석되기도 한다. 쇼스타코비치는 과연 소련 체제를 앞다투어 선전하고 사회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음악을 써내려간 작곡가였나? 아니면 목숨을 위협받는 와중에도 체제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고 예술에 녹여냈던 작곡가인가?

 

분명한 건 쇼스타코비치가 용감히 불의에 맞서 싸운 영웅의 서사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기록만으로 그의 실제 내면이 어땠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죽음의 위협 앞에서 조용히 살아남기 위해 애쓰며 목숨을 부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밖에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에 하루아침에 잡혀갈 수도 있는 시대였다. 그가 영웅이 되고자 투쟁했다면 그의 음악도 없었을 것이다. 투사처럼 맞서 싸우는 대신 그는 음악을 만들었다. 작곡가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생존하여 음악으로써 기록하는 일.

 

적어도 그는 음악에서만큼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음악이 증명했다. 음악 안에 무언가 진실된 것이 담겨있지 않았다면 백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음악이 전세계에서 성황리에 연주되고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는 자신의 내밀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음악에 넣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솔직했기에 그 무언가는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래서 거기 담긴 그의 진심이란 무엇인가? 진심이 무엇이든 우리가 그걸 정확하게 읽는 것이 가능할까? 음악은 정말 사상을 전달할 수 있는 걸까?

 

레닌그라드가 봉쇄되었을 때 전쟁의 분위기를 반전시켰던 교향곡 7번의 사례를 보자. 교향곡 7번에서 가장 유명한 1악장은 반복적인 선율이 작게 시작되어 점차 커지면서 흉포해지는 구조이다. 당시 레닌그라드 시민들에게는 나치군의 진격이 점차 고조되며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런데 포스트 스탈린 시대에 가서는 스탈린의 폭정이 점차 흉포해져가는 것을 묘사한 것이라고 해석되었다. 이 곡은 소련의 라이벌이었던 미국에서도 수십차례 연주되었는데, 자국의 전쟁을 앞둔 미군 병사들을 상대로 연주된 적도 있다. 그렇게 교향곡 7번은 보편적인 전쟁 음악으로 받아들여져 갔다.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음악은 활발히 연주되며 이제는 더 넓은 의미로서의 ‘폭력’을 상징하게 되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연주 영상  

 

 

그러니까, 이 음악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2025년의 대한민국을 사는 사람에게는 나치군의 진격이나 스탈린의 폭정으로 들리지는 않을 확률이 높다. 미미하게 시작되어 점차 성장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게 되는 폭력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의 음악이 백년을 견디며 살아남은 이유는 그것이 가진 보편성의 힘에 있다.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각자만의 폭력을 상상하며 그것을 ‘들어낸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나치의 폭력을, 포스트 스탈린 시대의 관객들은 스탈린 독재의 폭력을, 전쟁을 앞둔 미군 병사들은 적국의 폭력을, 2025년의 나는 내 인생에 닥친 갑작스러운 비극의 폭력성을 들어낸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이 죽어가던 레닌그라드의 사기를 올리고 전쟁 상황을 반전시킨 마법같은 이야기는 단지 음악이 훌륭해서만은 아니었다. 음악의 힘은 최종적으로 청중이 만들었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인간으로 남으려는 의지과 희망을 기어코 “들어냈다”. 그리하여 이 음악은 마법같은 힘을 가진 음악이 될 수 있었다. 음악이 그들에게서 끌어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음악에서 끌어냈다.

 

 

예술은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모든 시대의 것이고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그것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것이다. 예술은 귀족과 후원자의 것이 아니듯, 이제는 인민과 당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 (..) 그는 모든 이들을 위해 작곡을 했고, 누구를 위해서도 작곡하지 않았다. 들을 수 있는 귀들을 위해 작곡을 했다. 그래서 그는 예술의 참된 정의는 편재하는 것이며, 예술의 거짓된 정의는 어느 한 특정 기능에 부여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 <시대의 소음> 중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음악에 대해 묻는 질문을 싫어했다고 한다. “나는 이미 말하려는 바를 다 말했어요.”라고만 답할 뿐이었다. 어떤 주제와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음악에 이미 모든 것을 다 솔직하게 표현했다는 것이다.

 

음악의 힘은 듣는 사람에게 달렸다. 쇼스타코비치가 진짜로 자신의 음악에 의도적으로 당을 비판한 주제를 은밀히 담은 건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고 아직까지도 논쟁의 여지가 많다. 당은 그의 음악에서 체제 찬양과 승리의 메시지를 들었고, 누군가는 비아냥과 조롱을 들었다. 진실은 무엇인가? 모두가 쇼스타코비치의 생각을 궁금해한다.

 

하지만 핵심은 음악이다. 그가 한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음악은 사람들에게 저마다 다른 것을 의미할 것이고, 그것이 곧 음악의 핵심이자 힘이다. 우리는 ‘듣고자 하는 것’을 들을 것이다. 음악은 청중이 만든다. 음악은 청중을 말한다. 청중의 이야기를 한다. 청중을 주인공으로 만든다.

 

 

시간이 흐를 것이고, 음악학자들이 논쟁을 계속한다 해도 그의 음악은 자기 힘으로 서기 시작할 것이다. 전기뿐 아니라 역사도 희미해져 갈 것이다. 어쩌면 언젠가는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교과서 속의 말에 불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에도 가치가 있다면 - 여전히 들어줄 귀가 있다면 - 그의 음악은… 그냥 음악이 될 것이다. 작곡가가 바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 음악은 결국 음악의 것이니까.

 

- 시대의 소음 중

 

 

다시 1편의 주제로 돌아가보자. 전쟁 와중에도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사람이 사람답지 못할 때조차 예술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술은 그 어떤 기록보다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기록물이자, 모두가 각자 저마다의 내밀한 이야기를 저장할 수 있는 일기장이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소련 시민들에게, 그리고 지금까지의 관객들에게 그렇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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