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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돌아온 연극 <플레이위드 햄릿>, 각기 다른 개성의 여덟 햄릿들이 소극장 무대를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꾸준히 사랑받는 고전인 만큼 희곡을 읽거나 연극을 관람해 왔다. 많은 사람에게 잊히지 않고 계속 회자하고 제작된다는 것은 그만큼 햄릿이 사랑받는 작품이라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 시험공부하듯 작품 제목들을 달달 외웠었다. 4대 비극과 5대 희극으로 분류되는 희곡들의 제목을 외우고 열심히 읽었다. 무엇이든 자기 주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학생 신분에 걸맞은 행동이었다. 그 가치나 의미를 모른 채 배우고 익혔던 것이 이제는 도움이 되고 있다. 공연을 보는 중에 어렴풋이 희곡의 문장이 떠오르고 내용 전개를 예측한다. 배우들의 다채로운 매력으로 소극장을 가득 메운 <플레이위드 햄릿>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담아낸 연극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1.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To be or not to be’와 ‘죽느냐 사느냐’의 괴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문장이 흔히 알고 있는 해석일 것이다. 언제나 의문이 남았던 부분이다. 원문은 존재론적 의문에서 출발하지만, 해석된 문장에서는 그것이 삶과 죽음으로 치환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일까? 햄릿을 읽으면 어렴풋이 느낄 수 있지만, 그 느낌을 문장으로 정리해 보라고 한다면 불가능했다.

 

<플레이위드 햄릿>은 이러한 의문을 친절하게 풀어내 준다. 네 명의 햄릿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된 삼촌을 당장 죽여야 할지 말지 논의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그는 당장 복수를 해도 살인자가 될 테고 그대로 있어도 아버지처럼 삼촌의 손에 죽을 수도 있다. 왕이 된 후 삼촌을 처단해도 덴마크의 백성들에게 결국엔 죽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해도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햄릿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의 생사는 달라지지 않는다. ‘죽음’, 하나로 정해져 있다. 그것을 자각하고 있는 햄릿에게 죽음과 삶은 그가 그로서 즉, ‘덴마크의 왕자인 햄릿’으로서 존재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왕자라는 수식어를 가졌던 그가 죽음이 아닌 방법으로 해당 수식어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더불어 그를 이루는 배경이 ‘덴마크의 왕자’인 한 삼촌의 위협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To be or not to be’, ‘죽느냐 사느냐’라는 문장은 복수함으로써 ‘햄릿’으로서 존재할지 말지에 대한 고뇌이자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복수를 피할 방도가 없는, 불가항력이 작용하는 상황에서 그는 ‘죽음’으로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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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독특한 진행 - <플레이위드 햄릿>의 진행 방식 중 독특한 부분은 관객이 ‘호레이쇼’가 된다는 점이다.

 

관객은 호레이쇼가 되어 햄릿의 고민을 듣고 선택에 도움을 준다. 햄릿이 죽을지 살지를 물으면 관객은 엄지를 치켜들거나 아래로 내린다. 관객의 답에 따라 전개가 달라지는 이머시브 극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산다’를 택했다. 호레이쇼가 아니라 그저 한 관객일 뿐일지라도 햄릿이 살길 바랐다. ‘햄릿’은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한 번쯤은 그가 삶을 택하여 비극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에 대한 발화였다.

 

결말을 알면서도 죽음을 택해 답하는 것은 다소 매정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오필리아가 죽고 햄릿은 ‘사랑하는 여자가 나 때문에 죽었다.’, ‘이렇게 살아야 돼?’라고 말했다. 비극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햄릿을 보며 ‘삶’은 그를 위하는 길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살기를 바란 것 자체가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다. 고통스러운 삶을 종용할 수는 없다. 이처럼 <플레이위드 햄릿>은 관객참여 방식을 통해 관객의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더욱 깊은 몰입감을 선사했다.


<플레이위드 햄릿>에서는 배우가 직접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춘다. 시간의 흐름을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오늘의 오필리아가 내일의 클로디어스가 된다. 그것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면서도 내용만큼은 원작에 충실하게 보여주며 관객에게 ‘햄릿’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전한다.

 

지루할 틈 없는 공연이다. 누군가 고전을 지루한 것으로 치부한다면 <플레이위드 햄릿>을 보여주리라.

 

어째서 고전이 사랑받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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