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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지킬앤하이드는 대한민국의 명실상부 '국민 뮤지컬'로 자리잡은지 오래되었다. 모두가 한 번쯤 들어본 넘버 '지금 이 순간', 믿고 볼 수 있는 스타 배우들, 인간의 이중성이라는 흥미로운 주제. 그래서일까, 지킬앤하이드는 많은 이들에게 입문용 뮤지컬로 추천된다.


그렇지만 나의 첫 관극 후기를 한 줄로 말해보자면 이렇다.

 

‘이해할 수 없는 명곡의 대잔치’.


이 혼란스러움은 지킬앤하이드의 줄거리에 기인한다.

 

 

 

지킬의 실험 그리고 인격별 러브라인


 

간단히 지킬앤하이드의 줄거리를 소개해보자면, 이야기는 크게 두 줄기로 나뉜다. 지킬의 실험 그리고 지킬의 인격별 러브라인이다.

 

런던의 의사 '헨리 지킬'은 자신의 아버지를 포함한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생각한다. 바로 인간의 본성을 둘로 나눌 수 있는 약을 만드는 것. 병원 이사진 모두가 그의 실험을 반대하지만 지킬은 자신의 실험이 성공할 것이라 확신을 가진 채,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기로 결심한다. (여기서 나오는 노래가 그 유명한 '지금 이 순간'이다.)

 

지킬이 이렇게 실험을 감행하는 사이 지킬의 약혼녀 '엠마'는 모두가 지킬을 미쳤다고 말해도 꿋꿋이 그를 믿어준다. 술집의 쇼걸 '루시'는 지킬을 뒤에서 연모하며, 그 짝사랑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엠마와 루시는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극의 2막에서 지킬은 하이드로 변해 그동안 실험을 반대하던 자들을 하나하나 죽이고 밤마다 루시를 탐한다. 엠마는 여전히 지킬을 기다리고, 루시는 밤이 되면 찾아오는 하이드를 자포자기한 채 받아들인다. 극이 진짜 파멸로 치닫을 때는 지킬이 루시에게 편지를 보낼 때다. 하이드의 악행을 알게 된 지킬은 루시의 안전을 위해 그녀에게 런던을 떠나 새 인생을 살라는 편지를 보낸다. 루시는 새 인생을 꿈꿔보며 런던을 떠나려 하지만, 그 순간 하이드가 찾아온다. 하이드는 자신을 떠나는 루시에게 분노해 끝내 루시를 죽이고 만다.

 

루시가 죽자마자 돌아온 지킬은 충격을 받아 도망친 후 하이드를 억제할 마지막 주사를 자신에게 놓는다. 한동안 하이드가 나타나지 않자 성공했다고 생각한 지킬은 엠마와 결혼식을 올리지만, 결혼식 도중 하이드가 돌아온다. 지킬은 결국 자살을 택하고, 엠마의 품에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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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극적인 줄거리를 미리 알고 가도, 지킬앤하이드는 생각보다 따라가기 힘든 뮤지컬이다. 웅장한 넘버에 감탄이 저절로 나오지만, 지킬과 하이드를 왔다 갔다 하는 주인공에게 공감하기가 다소 어렵다. 게다가 인격별 러브라인까지 추가된다.

 

 

 

지킬은 ‘선’이 아니고 하이드는 ‘악’이 아니다


 

주인공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이유는 그에게 ‘선’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지킬앤하이드 중 지킬이 ‘선’을 담당하지 않았던가?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거지? 대체 저 사람한테 선한 면이 어디 있는가.


아, 그런데 여러 번 곱씹으며 알았다. 나도 지킬에게 잠시 속았다. 지킬은 선이 아닌 ‘통제’일 뿐이고, 하이드는 악이 아닌 ‘자유’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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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킬은 처음부터 매우 위선적이고 오만한 인물이다. 아무리 빅토리아 시대라고는 하지만 정신질환을 악으로 규정하며 자신이 구원해주겠다는 환상을 품는다. 모든 게 자신의 통제에 있다고 생각하며 지킬이 부르는 명곡 '지금 이 순간'은, 실제 뮤지컬을 본 사람이라면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가 그토록 오만하게 들릴 수 없다. 오히려 작곡가가 그렇게 웅장하고 아름답게 노래를 만든 이유가 이 아이러니함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선과 악을 분리하는 실험 속에서 알게 된 그의 또 다른 자아 하이드. 그는 '악'이 아니다. 선과 악의 경계는 의외로 모호하다. 하이드가 첫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 우리는 이상하게 쾌감을 느낀다. 그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이드가 홍길동 역할을 하나? 같은 기대도 내심 품게 된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 수록 하이드는 사실 지킬이 원한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을 골라 죽인 것에 불과했다.


하이드가 ’악‘이 아니기에, 지킬 또한 '선'이 아니다. 그의 최선은 위선으로 너무도 쉽게 변한다. 그 정점은 하이드가 루시를 죽인 후 돌아올 때다. 루시에 대한 죄책감을 고백하는 순간도 없고, 그저 겁에 질려 도망갈 뿐이다. 그러고 나서는 아무렇지 않게 엠마랑 결혼도 하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지킬앤하이드의 허무한 결말만은 마음에 들었다. 지킬은 오만함이 얼마나 나약한지 보여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여주인공들


 

남자 주인공은 감정 이입이 어려울진 몰라도, 나름대로 흥미롭다. 그러나 여자 주인공의 역할은, 심지어 두 명이나 있는데도 매우 한계가 명확하다. 사실 이 점은 ‘국민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서 늘 지적되어 왔으며, 여전히 개선해야 될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고전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원작이라기엔 그저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게 어울릴 정도로 딴판이다. 일단 원작과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여주인공 엠마와 루시다. 그들은 원작엔 없는 캐릭터이다. 그러나 러브라인이 아무리 필요했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그렸어야 했을까?

 

약혼녀 엠마는 지킬의 이상적인 여자다. 아름답고 순수하고, 고결하며 지킬을 무조건적으로 믿어준다. 그의 이성과 과학적 야망을 지지하는, 헌신적이고 이해심 많은 동반자다. 엠마는 지킬의 ‘선한 면’을 대변하며, 도덕적 순수성을 상징하는 성녀의 전형이다. 이는 루시와 대비되어 더욱 강조된다. 지킬은 루시와는 말 그대로 스치기만 해도 텐션이 올라가는데 비해, 엠마와는 소꿉놀이를 하는 느낌만 든다. 반면 루시는 술집에서 한 번 마주쳤음에도 그의 어두운 욕망을 직접적으로 자극한다. 지킬은 그 욕망을 인정하는 대신 실험을 강행하는 것으로 욕망을 억누르려 한다.

 

루시는 그나마 감정적으로는 엠마보다 다층적이다. 지킬과의 짧은 만남만으로도 희망을 발견하는 루시에게 마음이 가지 않은 관객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루시의 역할 또한 철저히 ‘거울’이다. 루시는 지킬과 하이드의 욕망 둘 다를 보여준다. 하이드의 사디즘, 지킬의 구원 판타지를 보여준다. 게다가 관객이 루시의 새 인생을 응원하게 되는 순간 루시는 하이드에 의해 너무나도 쉽게 죽는다. 성적 여성성은 ‘파멸’하는 결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예전에 친구와 그리스로마 신화 이야기를 나누다가, 메데이아와 페넬로페가 얼마나 다른 인물인지 얘기한 적이 있다. 메데이아는 사랑에 배신당한 뒤 복수를 선택하면서 어머니라는 역할마저 버리는 강렬한 캐릭터다. 반면, 페넬로페는 남편 오디세우스를 20년 동안 기다리며 가정을 지키는 인내와 정절의 상징 같은 인물이다. 이 둘을 이야기하면서 “성녀-창녀 이분법” 프레임을 처음 알게 되었다. 여성을 단순하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보는 프레임이다. 1) 순수하고 착하며 헌신적인 여성(성녀) 2) 욕망을 드러내고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여성(창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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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그저 흥미로운 문화 비평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킬앤하이드를 보는 순간 그 비평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엠마와 루시는 이 이분법의 구도를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이 이분법에 영감을 받은 건가 싶을 정도로 철저히 역할을 배분받은 엠마와 루시는, 각각 순수한 이상적 여성과 타락한 성적 여성의 롤을 담당하며 남성 주인공의 욕망과 갈등을 강조하는 역할만 한다.


물론, 그렇게 치면 모든 인물이 주인공 중심으로 돌아가며 극의 장치로 기능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작중 성추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주교의 추악한 욕망은 오로지 주교의 것이다. 지킬이 심은 것이 아니다. 반면 두 여주인공의 욕망은 철저히 지킬에 의해서만 생겨난다. 엠마는 지킬이 무슨 미친 짓을 하든, 그의 이상을 꿈꾸고 기다려준다. 루시도 마찬가지다. 지킬에게 구원받거나 하이드의 육체적 욕망에 갑자기 동조하는 캐릭터가 된다. 하이드에게 휘둘리며 ‘나도 몰랐던 나’라는 루시의 말은 그저 의아하다.

 

엄청난 여성 서사를 바라는 게 아니다. 루시의 허무한 죽음과 엠마의 엄청난 헌신이 이해가 안 갈 뿐이다. 특히 엠마는 지킬이라면 그저 '눈막귀막'으로 일관해, 거의 광기로 느껴질 지경이다. 엠마가 지킬의 어두운 변화를 목격했을 때 엠마는 슬프기만 했을까? 그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과연 한 순간도 안 들었을까? 엠마의 내적 갈등을 보여줬더라면, 엠마가 이토록 평면적이진 않았을 것이다.


지킬앤하이드의 캐치프레이즈는 ‘가장 아름다운 스릴러’. 두 여자 주인공 입장에서는 그저 '잔인한 러브라인'일 뿐이다.


 

 

그래서 막장범죄극으로 보면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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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킬앤하이드의 매력은 '길티 플레져'이다. 다소 불편한 점이 느껴져도 '지킬의 막장범죄극'으로 보는 순간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본작의 쾌감을 선뜻 받아들이게 된다.

 

특히 넘버들 ‘지금 이 순간’(하이드로 변할 때), ‘얼라이브’(하이드가 살인할 때), ‘머더 머더’(하이드가 연쇄살인할 때)로 이어지는 장면들은 극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짐에 따라 도파민이 가장 샘솟는 구간이다. 2막부터 갑작스레 빨라지는 줄거리 때문에 넘버들이 살짝 동떨어진 느낌을 주기도 한다. 다만, 이 역시 그냥 콘서트 세트리스트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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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성 있는 넘버들을 탑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해서 부르는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20년간 철저히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로 사랑받아왔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배우의 퍼포먼스를 보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 정말로 뮤지컬이 아니라 '테마 콘서트'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야기 자체에 공감하기엔 불친절한 요소가 많으며 배우들이 ‘멱살잡고 끌고 가는 뮤지컬’이다. 그러나 아무리 배우들이 신들린 연기와 노래를 보여줘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음악의 아름다운 밸런스를 가져오려면 지킬앤하이드는 아직 더 연구가 필요해보인다.

 

최근 지킬앤하이드의 제작사 오디컴퍼니가 월드투어버젼을 만들어 '역수출'에 성공했다고 들었다. 앞으로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와 만날 뮤지컬이다. 그래서일까, 지킬앤하이드의 몰입도와 개연성은 더욱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나는 아직도 엠마와 루시가 궁금하다. 그리고 지킬에게도 좀 더 연민을 느껴보고 싶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뮤지컬이 길티 플레져가 아닌, 좀 더 떳떳한 즐거움을 선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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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추천: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길티 플레져를 계속 느끼고 싶다면


 

지킬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책, <우리 안의 악마> - 줄리아 쇼

 

이 책은 ‘악의 처벌’에 관한 책이 아니라 ‘악의 예방’을 탐구한 책이다. 생각보다 악은 사소한 것에서 발생하기에, 사람을 악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래서 게으른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블루스퀘어 3층에 있는 북라운지에도 구비되어 있는 책이다. 만약 공연 전 일찍 도착했다면, 지킬이 된 기분으로 ‘악’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극을 좀 더 신선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위선적인 욕망에 대하여, 영화 <트루 스토리>

 

인정하기 싫은 내면의 욕망으로 사실을 바라볼 때 '진실'은 곧바로 오염되버림을 말하는 영화. 뉴욕타임스 기자 마이클 핀클(조나 힐 분)과 교활한 범죄자 크리스챤 롱고(제임스 프랭코 분)가 어떻게 자신의 욕망에 취해 서로를 속이고, 스스로를 속이는지 보여준다. 실화에 기반한 영화라 더욱 흥미롭다.

 

지킬앤하이드처럼, 사람들에게 내재된 '위선적인 욕망'에 대해 말한다. 지킬앤하이드에서는 통제와 자유를 강렬하게 대비시켰다면, 영화 트루스토리는 계속해서 캐릭터들의 욕망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다가 마지막에 이를 신랄하게 폭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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