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의 나는 지금처럼 책을 좋아했던 아이가 아니었다. 특히, 학교에서 지정한 권장 도서를 읽어야 하는 일이란 그때 당시 나에게 그 무엇보다도 하기 싫어했던 활동이었다. 꾸역꾸역 도서관에 앉아 권장 도서가 꽂힌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골라 읽는 척을 하며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평소처럼 학급에서 도서관을 가는 날, 그날도 나는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가져와 표지를 펼쳤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라는 제목이 적힌 표지를 펼치자, 강렬한 인상을 주는 첫 문장을 마주했다.
때로는 크리스마스에도 악마 같은 아이가 태어난다.
이 문장을 읽고선 뒷이야기가 궁금해져 페이지를 넘기며 글을 읽어 나갔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주했던 소설의 기억은 강렬했고, 강한 끌림을 선사했다.
어린 시절 나는 <나의 오렌지 나무>의 주인공인 제제처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아이였다. 그렇기에 소설을 읽으며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고,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책을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주인공인 제제는 다섯 살짜리 남자아이이다. 보호자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임에도 제제는 가족들에게 지속적인 학대를 당한다. 그의 가족들은 자신들의 처한 상황이 힘들다는 핑계로 제제에게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풀고자 했고, 이에 제제는 가족 탓을 하는 게 아닌, 자신에게 문제가 있어 미움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와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던 제제와 제제의 가족들은 형편이 안 좋아져 이사를 가게 된 곳에서 한 그루의 작은 나무를 마주하게 된다. 제제는 나무에 '밍기뉴'라는 애칭을 붙이며 자신의 유일한 친구이자, 쉼터로 여긴다. 제제는 그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이야기들을 밍기뉴에게 털어놓으며 유년 시절을 버틴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제제가 의지하고 자신의 아버지로 삼고 싶었던 '포르투가' 아저씨가 기차 사고로 목숨을 잃자, 그리운 마음에 아저씨에게 쓰는 편지에 적힌 내용 중 일부이다. 나는 또래보다 비교적 빠르게 철이 든 편에 속했기에 이 질문을 읽고, 그때 당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며 빨리 철이 들라며 잔소리하곤 했다. 어릴 때의 나는 어른들이 빨리 철 들어야 한다고 하니까 빨리 철 든 아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철 든 아이는 존재하지 않으며, 철이란 어린아이의 성장이 아닌, 어른들의 욕심이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다.
아이를 좋아하는 어른은 아이가 빨리 철 들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어른만이 자신의 몫을 해내는 어린아이를 원한다.
글을 쓰기 위해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다시 읽어보았는데, 청소년 필독서가 아닌 어른들을 위한 필독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당시의 내가 어떻게 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가슴 아픈 소설이었다.
어린 시절을 보낸 어른이라면 누구나 가슴 속에 '밍기뉴'가 존재한다. 자신만의 '밍기뉴'를 지키며 어른이 된 어른이라면, 혹은 '밍기뉴'를 베어버린 어른이 되었더라 하더라도 어린 아이들이 자신만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보호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유년 시절이 소중하게 기억될수록 다른 누군가의 유년 시절 역시 좋은 기억이 될 수 있길 바라는 소망을 품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