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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예술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대부분의 장르가 가진 특징은 감각적으로 자극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술은 시각적인 자극으로 시작되어 동시대 미술로 넘어오면서부터는 다양한 감각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고 음악은 청각적인 자극으로 이루어진 장르이다. 그에 반해, 문학은 상대적으로 감각을 직접적으로 자극한다기보단, 간접적인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장르라고 생각해 그것이 문학이 가진 특이점이라고 생각한다. 타 장르가 감각을 자극함으로써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준다면, 문학은 작가의 의도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그 글을 통해 상상을 하고 그것을 이해하여야 한다. 따라서 독자의 잠재적인 상상력에 따라 아주 다양한 이미지가 연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감각에 대하여 전혀 다르게 접근하는 장르들을 섞는 것은 때론 좋은 시너지를 낸다. 예를 들어,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소개하기 위해 해당 작품이 영감을 받은 김광섭의 '저녁에'를 함께 보여준다면, 그림으로는 김환기의 무수한 그리움을 바라보고, 글로는 김광섭이 한 자 한 자 적어내린 그 그리움과 사랑을 읽어내어 김환기가 가졌던 고향과 가족에 대한 깊은 향수에 보다 깊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미술과 문학이 시너지를 내어 독자로 하여금 예술에 더 가까워질 수 있게끔 하는 시도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소개하는 책인 <블루 베이컨>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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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의 그림에서 석화를 막는 것은 파란색이다.

나는 파란색의 이상한 장점을 이렇게 받아들인다. 파랑은 검정보다 강하다. 파랑은 어둠을 뚫고 우리에게까지 흘러온다.

 

- 51p

 

 

프랜시스 베이컨은 혼돈으로 가득 찬 20세기 전반을 살아간 화가로, 어두운 색채를 가진 기묘한 화풍이 특징이다. 그는 특히 푸른색을 작품에 스며들듯이, 혹은 격정적으로 표현하였는데 뒤틀림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그것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블루 베이컨>의 저자 야닉 에넬은 2019년 조르주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베이컨 특별전'을 관람하며 그의 그림들을 관람한 느낌을 온전히 이 책에 담았다. 검푸른빛으로 하늘이 바래는 늦은 밤에 편두통과 함께 이 전시를 관람한 야닉 에넬은 청소년기를 가득 채웠던, '폭력과 잔인함의 화가'라고 불린 베이컨의 작품들을 관람한다. 따라서 이 책은 베이컨의 불안정한 그림을 보는 만큼 불안정한 감정을 담았기에 보다 독자에 따라선 날 것 그 자체로 이 책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것이 저자와 베이컨에 보다 진솔하게 공감할 수 있는 특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칠흑보다 파랑이 더 깊게 스며드는 것처럼, 깊은 잠보다 우울이 더 깊게 스며드는 것처럼.

 

<블루 베이컨>을 이루는 챕터들은 베이컨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듯이, 야닉 에넬의 주관적인 관람평을 알려주듯이 구성되어 있다. 특이한 점은 베이컨의 연인이었던 조지 다이어의 죽음에 대하여 챕터를 3개나 할애하였다는 것인데, 25개의 챕터 중 3개를 사용한 만큼 이는 베이컨에게 중대한 사건이자, 그의 그림에 그 특이한 '광기'가 더 짙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필자는 <블루 베이컨>을 읽기 전 이 화가의 작품들을 보며 '화풍이 특이하다', '어둡고 뒤틀린 슬픔에 집중하는 그림들이 실로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정도의 느낌을 받았는데, 그의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 연인에 대한 사랑과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부재하였을 때 느껴지는 절망감, 그랑팔레에 전시되는 영광과 기쁨 속에서 느낀 가장 깊은 슬픔 등을 '조지 다이어의 죽음(1), (2), (3)' 챕터로 읽고 나니 그 화풍에서의 광기가 본인의 성장을 증명하는 것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다면 후대의 평가는 이 화가를 단순히 '폭력과 잔인함'을 대표하는 화가라고 표현하면 안되지 않을까? 이 깊은 상흔을 단순한 정서의 표현으로 이해하면 안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였는데, 아마 야닉 에넬도 비슷하게 느꼈던 것 같다. 52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분명히 하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폭력과 잔인함의 화가가 아니다. 가학적인(그리고 우리가 예술가들을 미치광이로 믿게 만드는) 것은 바로 사회다. 카라바조나 베이컨처럼 위대한 화가는 악의 편에 서지도 않고 악에 반대하지도 않는다. 그는 인간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포착하여 그것을 드러내는 형태를 부여하는 사람이다.

 

 

야닉 에넬의 글이 베이컨의 그림과 함께 읽었을 때 더 극대화되는 것은, 베이컨의 삶을, 베이컨의 그림을 보다 명확하고도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베이컨에 대한 저자의 사랑이 <블루 베이컨>이라는 하나의 통로가 되어 베이컨의 그림을 독자들이 더 공감할 수 있도록, 베이컨의 삶을 독자들이 더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블루 베이컨>이 가진 미술과 문학의 융합은 훌륭한 시너지가 되었다고 느꼈다.

 

<블루 베이컨>은 미술을 사랑하는,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존의 흥미 장르에 더욱 몰입감을 선사해줄 수 있을 것이다. 푸른 밤을 닮은 베이컨의 작품을 눈으로 보고 읽고 싶다면, 어스름한 밤에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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