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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처음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연극을 보았다. 아르코 예술극장이 위치한 대학로는 관객의 선택에 따라 결말이 바뀌거나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이머시브 등 실험적인 연출 방법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연극의 다른 이름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하지만 옴니버스식 스토리에, 서너개나 되는 역할을 바꿔가며 등장하는 멀티맨, 관객들에게 던지는 싱거운 농담 등 비슷한 레파토리의 반복을 겪을때도 있다. 그런 따듯한 진부함은 오래가는지, 다시 혜화를 찾는건 꽤 오랜시간이 지난 후다.

 

'2024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이라는 소식에 얼른 달려가서 본 '동백당, 빵집의 사람들'은 다를 것 같았고, 역시 달랐다. 좋은 극장, 열여섯명에 달하는 아낌없는 배우진 (특히 빚쟁이들이 몰려와서 웅성댈때 녹음된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이닥쳐 놀라웠다.) 인터미션을 기점으로 전개되는 1부와 2부의 탄탄한 스토리 등 복합적인 요소들이 몰입의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배우들의 조금은 어색한 사투리 연기나 진지한 장면에서 부스럭거리는 빵봉지 소리는 충분히 애교로 봐줄 수 있었다.

 


동백당 포스터(제공 프로덕션IDA).jpg



이번 연극은 <배소고지 이야기; 기억의 연못>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진주 작가와 김희영 연출 콤비의 신작으로도 알려져 있다. 사실 두분의 필모 중에서 내가 본 것이 없어서, 전작에 비해 이번 작품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유일하게 안면이 있는 "60일의 썸머"라는 독립영화가 한때 영화 감독으로도 활동했던 김희영 연출 작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되었다.

 

다음은 연극의 오피셜한 소개다.

 

<동백당; 빵집의 사람들(작 진주, 연출 김희영)>은 1947년 군산의 작은 빵집 '동백당'을 배경으로, 해방 직후 자본 주의가 태동하던 격동의 시대에 남겨진 사람들이 스스로 '함께 모여' 찾아가는 삶의 가치와 희망을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삶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시기 벌어진 사회적 변화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드는 모습을 조망하며, 거대한 변화 속에서도 간직한 소시민들의 꿈과 희망을 바라본다. 독립운동가였던 큰 사장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모은 돈을 들고 떠난지 십여 년. 작은 사장 '여왕림'과 수석 제빵사 '공주'는 동백당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물자 부족, 빚 독촉, 대형 제과점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는다. 한편, 일본인이 떠나고 직업을 잃은 조선인들, 늙고 병들어 버림받은 일본인 등 마을에 남겨진 사람들은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모아 '협동조합'을 만들어 글과 제빵 기술을 배우며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찾고, 서로 연대하며 용기를 얻는다. <배소고지 이야기; 기억의 연못>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진주 작가와 김희영 연출 콤비의 신작 <동백당; 빵집의 사람들>은 일제 수탈의 항구이자 첨단 문화의 창구였던 '군산'과 그곳 의 특별한 식문화로 자리 잡은 '빵'을 전환'이라는 커다란 비유로 삼고, 인간의 욕망과 성장을 따뜻하게 담아낸다.



131 (1).jpg

 

 

이번 연극에서 내가 느낀 연출포인트는 세가지 정도가 있다.

 

먼저 마치 액자를 통해 무대를 보는 것 같은 구조의 프로시니엄 무대를 허물고 무대를 중심으로 관객이 마주보고 앉도록 객석을 배치했다는 점이다. 가장 좋았던 것은 배우들이 굳이 앞을 보고 연기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한쪽을 바라보고 대사를 하면 결국 반대편 관객들에게는 등을 보이는 식이라 오히려 관객을 덜 의식하고 등장인물들 서로가 더 집중하는 모습이 보여 좋았다.

 

두 번째로 무대 전체를 가르는 얇은 막이다. 이 막으로 인해 안과 밖의 구분이 생기는 동시에 반투명한 경계가 생기고, 양쪽 객석의 관객들은 서로 다른 형태의 움직임을 경험하게 된다. 또 독립 후 한국에 잔류한 일본인 츠바키와 후유에의 대화에 자막이 영사되기도 한다. 모니터나 스크린 같이 현대 기술이 묻어나는 소품을 썼다면 참 부조화스러웠을텐데, 시대상에 녹아드는 소재를 잘 선택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극 속에서 등장하는 ‘시식회’를 찾은 손님들을 바로 관객으로 두고, 직접 빵을 준 것이다. 이를 위해 2001년부터 서울 동작구에서 영업을 이어오고 있는 진짜 동네 빵집 ‘더밀베이커리’와 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김희영 연출이 "관객들과 배우들이 한 무대에 가까이 둘러앉아 같이 빵을 맛보고 냄새를 맡으며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보고자 한다." 라고 언급한 것 처럼, 등장인물들이 직접 쥐어준 빵으로 인해 나 또한 동백당의 고심에 발을 들이게 되어버렸다.

 

사실 요즘들어 눈에 띄는 독특함보다 어설프지 않음, 사소한 디테일이 완성도 있는 공연을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동백당은 두가지 사이에서 잘 균형을 잡아 신선하면서 마음이 편한, 든든한 공연이었다.


"비가 올줄 알면 우산을 써야제요"

 

"꿈 하나 끝나면 다른 꿈 꾸면서 사는거지"

 

하는 대사가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둘 다 유학파 백수 '산'에게 하는 말이다.

 

현진건의 '술권하는 사회'가 문득 떠올랐다. 홧증과 하이칼라가 아닌 사회가 술을 권한다던 일제치하의 그 남편이, 독립후엔 미워할 대상이 사라져 어찌 살아가야할지 모르는 '산'의 모습이 되었을까?

 

언제나 상황은 고달프고 배울수록 괴리감은 크게 다가오지만 결국 중심을 잡고 살아나가야 한다고, 겪어내야 한다고 말하는 듯 하다.

 

 


임지영 (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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