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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포스터] 퓰리처상 사진전.jpg

 

 

과거가 우리를 도울 수 있는가? 불행은 되풀이되는 것인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진 퓰리처상, 특히나 인정받는 보도 부문의 사진들은 인생에서 한 번쯤 직접 봐야 할 사진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사진을 보며 나는 과거와 현재를 손쉽게 연결 지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전시회를 다녀오니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이 밀려왔다. 어째서 우리는 비극적인 역사를 반복하는가? 인간의 본성은 대체 무엇인가? 인간에게 있어 신념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저널리즘의 본질은 무엇인가?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참혹한 순간들이 한눈에 펼쳐졌다. 전쟁, 재난, 저항, 희망. 각각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인간의 본성과 시대적 흐름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우리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과 폭력이라는 비극



긴 역사를 자랑하는 퓰리처상이니만큼 전시된 사진의 수도 상당하다. ‘과거가 우리를 도울 수 있나?'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퓰리처상 사진전은, 194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시간 흐름의 순서대로 인상적인 사진들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과 함께 전시된 설명글이 워낙 자세하게 작성되어 있어, 오디오 도슨트가 없이도 전시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흑백의 사진들로 시작한 전시가 고화질의 색채가 풍부한한 사진들로 막을 내리면,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아무래도 수많은 사진이 비극적인 순간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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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수상작, '피켓 라인', 밀턴 브룩스, Alamy Stock Photo

 

 

특히나 전쟁과 폭력의 한 장면을 담은 사진들은 전시회를 다녀오고 며칠이 지난 지금도 뇌리에 박혀있다. 전쟁을 제외하고 인간의 역사를 논할 수 있을까? 제1차, 2차 세계대전부터 한국전쟁, 수많은 지역에서 벌어진 내전까지 살상과 폭력으로 점철된 전쟁은 지금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분쟁의 본질은 같다. 영토, 권력, 이념을 위해 싸우는 양 진영이 존재하며 그 가운데에는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 안야 니드링하우스

 

 

전쟁은 결국 소수의 신념 때문에 무고한 다수가 피해를 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전쟁이 끔찍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 ‘피해’는 되돌릴 수 없는 회복 불가능한 것, 이를테면 죽음과 트라우마, 한 인간과 한 사회를 파멸로 몰아가는 것이다.



성조기, 수리바치산에 게양되다 - Alamy Stock Photo.jpg

▲ 1945년 수상작, '성조기, 수리바치산에 게양되다', 조 로젠탈, Alamy Stock Photo

 

 

제2차 세계대전 중 여섯 명의 해병이 성조기를 들어 올리는 이 사진은 실제로 보니 장엄하고 웅장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사진 속 장소는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이오지마이고, 사진 속 3명을 포함한 약 6천여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었다는 내막은 이들의 고통과 괴로움을 가슴 깊이 느끼게 했다.


2차 세계대전의 사진을 보고 한 시간쯤 뒤에 러-우 전쟁으로 죽음에 가까워진 임산부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없는 답답하고 암담한 기분에 할 말을 잃게 된다. 그 긴 역사 속에서 숱한 전쟁에 가담하고 또 지켜본 인간은 여전히 같은 역사를 반복한다.


 


'신념'이라는 본질


 

그럼에도 동료를 살리거나 약자를 보호하려고 위험을 무릅쓰는 찰나의 순간을 촬영한 사진들을 보면, 인간은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같은 인간을 구할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들이 떠오른다.


두 시간 정도 사진전 내부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결국 이 모든 인간사의 비극과 극적 사건들의 출발은 인간의 믿음과 신념 때문이라는 점을 부정하기 어려워진다. 우리가 믿고 우리가 보는 것, 우리가 따르고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늘 어떠한 결과를 초래한다. 전쟁, 폭력, 차별과 그 극단에 있는 구조와 도움, 사랑과 평화까지 우리의 눈에 결과론적으로 보이는 모든 사건은 결국 우리의 신념으로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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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년 수상작, '고민을 함께 하는 두 사람', 폴 바티스, Alamy Stock Photo

 

 

그러니 한 사회와 한 국가를 책임지는 지도자 집단의 신념은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개인은 저마다의 신념으로 지도자를 선출하고, 이것이 반복되며 세상은 미세하게 변해갈 수 있다. 그렇기에 아이젠하워와 존 F. 케네디의 뒷모습을 포착한 사진을 보며 그 어깨에 지워진 거대한 짐의 무게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는다


 

사진전 내부 곳곳의 벽에는 저널리스트들이 말한 함축적 문장들이 깃들어있다. 한 저널리스트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자신이 찍는 사람이 아직도 숨이 붙어있는지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는 말을 남겼다. 그들이 취재하는 현장이 비극과 죽음에 얼마나 가깝게 맞닿아있는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 모든 사건을 목숨 걸고 기록하는 건 결국 저널리스트였다. 그렇게 기록한 사진이 세상에 공개되어 예상치 못한 윤리적 질타를 받게 되어도 그들은 기록했다. 늘 기자의 업무와 개인의 윤리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결국 그들은 기록하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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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의 시작에서 던져진 ‘과거가 우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저널리스트 에디 애덤스의 말로 마무리된다.


 

"무기는 단지 파괴할 뿐이다. 그러나 가슴으로 찍는 사진가의 카메라는 사랑, 희망, 열정을 담아 삶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끈다. 그 모든 일은 1/500초로 충분하다. 삶은 지속되고,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 에디 애덤스

 

 

때로는 백 마디의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와 닿을 때가 있다. 저널리스트의 눈과 손을 거쳐 나온 퓰리처상 수상 사진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사회를 압축적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사진전을 나오며 여러 가지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찜찜하면서도 씁쓸한 그 기분에서 시작된 생각은 지금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럼에도 그러한 기분과 거기에서 출발하는 생각들이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퓰리처상 사진전은 인생에서 꼭 한 번쯤 봐야 할 전시이면서,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금’ 봐야 할 전시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전히 비극을 되풀이하고 있다. 과거가 현재를 돕기 위해선 현재의 우리가 과거를 다시 돌아보며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할 것이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김효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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