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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날, 한 택시기사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굉장히 무례한 사람이었고, 그의 선 넘은 이야기들에 나는 차마 '관심 없어요'라고 말하지 못해 대신 내가 불편하지 않은 주제로 계속 대화를 이끌어 나가려고 노력했다. 이야기 중 그는 아내에 대해 말을 꺼냈고, 나는 차라리 그의 연애 이야기를 듣기로 마음 먹었다.

 

"선생님께서는 아내를 많이 사랑하세요?"

"물론이지. 집에 돌아오면 천장에서 아내 얼굴이 계속 어른거렸어. 가족도, 나라도 버리게 하는게 사랑이야."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그의 멈출 줄 모르는 소음과도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택시 기사 조차도 밤에 잠을 못이루게 했던 사랑의 존재에 대하여. 그의 말이 옳다. 수많은 역사의 비극이 사랑의 힘을 증명한다.

 

나는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본능의 최전선이라고 생각한다. 생리학적인 반응, 진화적인 필요, 그리고 사회적 요구에 의해 발생하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심리적 압박. 이 모든 것이 결합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복합적인 본능의 결과물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그러나 택시 기사의 말처럼 사람들은 때때로 이러한 본능으로 인해 본능을 거스른다. 사랑 때문에 가족도, 나라도, 심지어 자기 자신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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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랑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미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는 로테에게 연정을 느껴버린 그의 고통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고, 뮤지컬 [베르테르]로 다시금 우리에게 찾아와 그 여운을 깊이 남겼다. 2025년, 올해는 그런 뮤지컬 [베르테르]의 25주년이 되는 해다.

 

극의 1막은 내내 '사랑의 시작'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청년 베르테르가 로테에게 가진 순수한 사랑과, 알베르트와 로테가 갖고 있는 마음 깊은 안정된 사랑, 술집에서는 신분 차이로 인해 괴로워하는 소년의 고뇌의 사랑과, '왕년'의 깊었던 사랑을 유쾌하게 노래하는 중년의 여성까지. 각기 다른 사랑의 형태가 저마다의 마음에서 싹을 틔운다.

 

그러나 극이 2막으로 올라가자 마음에서 싹 튼 사랑은 저마다의 심장 속 생명을 흡수하여, 온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알베르트는 분노했고, 로테를 실신했으며, 소년은 살인을 저질렀고, 우리의 청년 베르테르는 자살했다. 모두, 오직 사랑 때문이다.

 

청년 베르테르는 로테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발버둥쳤다. 멀리 떠나보기도 하고,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른 이와의 사랑으로 인해 행복해하는 로테를 바라보다보면 그는 세상이 무너지는 슬픔을 느꼈다. 그 슬픔은 자신의 죽음보다도 괴로운 것이었다.

 

베르테르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죽음을 택하기로 했다. 자신만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그가 사랑하는 로테와 그의 남편 알베르트로부터 한 자루의 총을 빌린 베르테르의 발 밑으로는 무수한 해바라기들이 피어있었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상징하는 황금빛 꽃잎 위에서 로테가 선물한 리본으로 총과 자신의 손을 단단히 엮는 베르테르를 보며 나는 본능을 이기는 본능, 사랑에 대하여 생각한다.

 

베르테르가 품고 있는 사랑은 앞서 내가 언급했던 그 모든 본능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비논리적인 사랑이었다. 종족의 번식도 불가능하고, 사회적 인정도 받지 못하며, 행복의 호르몬도 분비될 수 없는 사랑이다. 쓸모와 무쓸모로 따진다면 100% 무쓸모에 가까운 사랑이리라. 베르테르는 그 무쓸모의 사랑을 자신의 생존의 욕구조차도 뛰어넘는 고통으로 인지하고, 직접 생을 마무리 지으며 끝마쳤다.

 

이루지 못하는 사랑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뮤지컬 [베르테르]의 원작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독일을 뒤흔들었고 수많은 젊은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베르테르의 고통에 공감하여 함께 자살하는 젊은 청년들의 죽음에 '베르테르 효과'라는 심리학적 단어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베르테르의 사랑이 차마 어떠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논리를 벗어나고 비이성적인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베르테르의 죽음을 공감하고 추모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토록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생존의 본능에 따라 충실히 움직이는 짐승도, 이성에 따라 모든 논리만 따지는 로봇도 아니다.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자기 자신마저도 어쩌지 못하고 휘청일 정도로 타오르는 그것이 인간이 갖고 있는 사랑이며, 바로 베르테르가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며 그 의미를 각인시킨 사랑이다.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뮤지컬 [베르테르]의 이야기는 다른 사회적 문제도 다루지 않고 오직 '사랑' 그 자체만을 노래한다. 그렇기에 그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다른 무엇보다도 숭고하게 다가온다. 그 모든 세상의 문제를 제쳐두고 오직 사랑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죽고 사는 무대 위 수많은 캐릭터들을 보며 관람객들은 사랑의 정의와 의미를 되새김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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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어쩌면 그렇게도

눈부실 수 있는지

당신의 그 환한 빛만큼씩

내 마음엔 그림자가 지는데

나 그대 이제 이별 고하려는데

내 입술이 얼음처럼 붙어버리면

나 그대를 차마 떠나려는데

내 발길이 붙어서 뗄 수가 없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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