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스물XX이 되었다. 남들은 아직 젊다고 말하지만, 나는 점점 더 낯선 나이를 마주하고 있다. 인생의 책임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요즘, 어쩔 줄 몰라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꿈꾸는 동시에 불안하다. 청춘의 정의는 다양하겠지만, 꿈꾸고 불안해하는 모두가 청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여기 아름답게 청춘을 드러낸 작가 세 명이 있다.
그들의 작품을 보며 그들 역시 불안한 청춘을 보냈음을 깨닫는다. 위태롭고 무섭지만 그 상황을 묵묵히 견뎌내며 작품으로 표현한 그들을 보며 또 다른 청춘을 위로한다.
1. 낸 골딘 (Nan Goldin)
낸 골딘은 미국 출신의 사진작가로 자신의 삶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기록한 작품을 남겼다.
그녀의 대표적인 '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는 1970~80년대 뉴욕 언더그라운드 문화 속 자신과 친구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이다. 이 작품에서는 성소수자, 약물 사용자, 아티스트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사진 속 인물들은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고, 춤을 추고, 술을 마신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을 생생히 담아낸 그녀의 사진들은 마치 젊은 날을 포착한 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에는 청춘의 환희와 패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 언니의 자살로 인해 일찍이 깨달은 삶의 불안 또한 여러 작품에서 드러난다.
사진 속 인물들은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깊은 불안과 혼란이 공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Nan One Month After Being Battered'는 연인에게 폭행당한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사랑과 폭력의 역설을 적나라하게 경험한 그녀의 얼굴에서 혼란과 불안을 읽을 수 있다.
낸 골딘의 사진을 통해 청춘의 표상을 확인한다. 청춘은 자유롭지만 동시에 불안하다. 사랑에 쉽게 몰입하지만 쉽게 상처받고,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지만 중독과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그녀의 작품은 청춘의 빛과 그림자, 불안과 열정이 뒤섞인 세계를 담는다.
수십 년이 지난 그녀의 작품에서 오늘날의 나와 닮은 무언가를 발견한다.
2. 프랑수아즈 사강 (Francoise Sagan)
프랑스 출신의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1954년, 18세의 나이에 데뷔한 천재 작가이다. 세련된 문체와 솔직한 감정 묘사로 청춘의 열정과 방황을 생생히 그려낸 그녀의 작품은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대부분 젊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인물들이다. 순간의 쾌락을 위해 잘못된 선택을 내리기도 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공감과 흥미를 가지고 작품을 읽었다.
'슬픔이여 안녕'은 그녀가 18세 때 처음으로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세실은 아버지처럼 방탕한 생활과 가벼운 연애를 즐긴다. 그녀에게 사랑은 진지한 감정보다는 유희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버지가 안느라는 사람과 진지한 사랑을 결심하는 것을 보고 불안을 느낀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의 사랑을 방해하고, 그 결과로 안느가 죽는다.
이 소설은 안정적인 사랑이 자유를 위협한다고 생각한 주인공이 그 안정을 무너뜨리려는 과정에서 더 큰 상실을 경험하는 이야기다. 그런 주인공의 어리석음을 보며 답답하기도 했지만, 내 안에 있는 사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청춘은 자유롭고 열정적이지만 동시에 공허하고 불안하다는 것을 그녀의 작품을 통해 절실히 느낀다.
3. 서도호 (Do Ho Suh)
서도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현대 미술가 중 한 명으로, 공간, 이동성, 정체성 등의 개념을 탐구하는 작품을 만든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과 장소, 소속감, 기억의 물리적 구현을 다루며, 특히 이동성과 경계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을 제작해 왔다.
그의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형태는 단연 '집'이다. 집은 이주와 정착을 반복하는 작가의 개인적 삶을 투영한 중요한 공간이다.
그의 작품 '서울 집/LA 집'은 한국에서 살던 전통 한옥을 반투명의 천으로 재현한 것이다. 작품을 통해 그는 외국에 거주하며 느낀 이방인의 경험을 시각화하고, 가볍고 이동 가능한 형태로 제작된 집을 통해 이주민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서도호의 작품은 단순한 건축 조각이 아니다. 공간과 기억을 통해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작품이다.
나 역시 대학생이 되고 집을 떠나 낯선 도시로 이동하게 되었다. 당분간은 기숙사에 살지만, 방학이 되면 기숙사에서 떠나야 하고, 언젠가는 자취방을 알아봐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청춘들에게 이동하는 삶과 떠나는 과정은 아주 익숙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어린 시절과 성인의 삶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그의 작품을 보며 그 역시 우리처럼 이주와 정착을 겪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시기를 보냈음을 알게 된다.
*
지금까지 각자의 청춘을 보낸 세 명의 작가를 알아보았다. 그들의 작품을 통해 내가 겪는 불안과 두려움을 위로받는다.
불안하고 두렵다는 감정은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만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삶을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이느냐가 우리의 불안과 두려움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는 무감각해지고, 당연하게 여기며 순응하는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감각을 날카롭게 다듬으며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을 자신만의 색채로 표현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야말로 청춘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미래가 두렵고 불안하지만, 이 순간이 내 인생의 빛나는 순간임을 믿으며 앞으로의 삶을 열심히 채워나가고 싶다.
나의 청춘도, 여러분의 청춘에도 적당함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