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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2025년이 된 지 한 달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춥고, 여전히 목표는 이뤄내지 못했고, 여전히 슬프고, 여전히 자책한다. 2024년과 다를 게 없다. 2023년과도 다를 게 없다. 2022년.. 잠깐, 2022년과는 좀 다른 것 같다. 2022년을 생각해보니 내가 찬란하게 빛났던 시기다. 왜지? 왜 3년 전의 나는 행복하고 기쁘고 사랑이 가득했고 지금의 나는 우울하고 불안해하는 감정이 가득한 걸까?

 

2022년의 나는 자존감이 높았다. 여러 성과를 보여 타인은 물론, 나 자신도 스스로를 인정하고 아낄 수 있었다. 항상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나는 멋쟁이, 너도 멋쟁이"라며 소리 내서 말했고 그게 효과가 생각보다 좋았다. 몇 년 째 의기소침했던 내면이 성장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행복했었다. 정말 말 그대로 '멋쟁이'로 성장하고 있다고, 곧 있으면 나도 멋져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지금의 나는 볼 품 없다. 어느 정도 멋진 사람으로 사회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2022년의 내 기대와는 다르게 나는 언제나 허겁지겁, 헐레벌떡, 조급하고, 초조하고, 주눅들고, 눈치보고, 의심하고, 초라하다. 이 '초라하다' 라는 게, 평상시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문득 그게 내 처지라고 생각이 들면 엄청 창피해진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너 왜 그러냐고 묻는다. 나를 보는 눈빛에는 당혹스러움과 안타까움이 섞여있다. 그 눈빛의 의미를 알지만 더 이상 낼 힘이 없다.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나는 웃는다. 그것이 내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방패이니까.

 

2022년의 나는 활을 쏘고 있었다. 당시 활을 같이 내러 다니던 친구가 말했다. 언제든 활을 쏘고 싶으면 같이 가자고. 나는 말했다. 운동을 너무 오래 쉬어서 근육이 다 빠졌을 거라고. 그 때보다 활을 더 못 당길 거라고. 그 때도 강한 활을 낸 건 아니지 않았었냐고. 그래도 그 친구는 고맙게도 항상 괜찮다며 원할 때 가자고 한다. 기다리겠다고 한다. 너가 원할 때 불러주면 언제든 가겠다고 한다. 고마웠다.

 

집에 와서 활을 쏘던 장비들을 다시 찾았다. 2022년에 동아리 친구들과 다같이 제작한 연보라빛의 궁대와 내 손가락을 보호해주던 깍지를 만져봤다. 살짝 때를 탄 내 장비들을 부드럽고도 매끄러웠다. 문득 더 강한 활을 내겠다고 높은 파운드의 활을 당기는 것에 도전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낑낑거리면서도 매일 영상을 찍어가며 연습했다. 버겁다는 생각은 들었어도 하기 싫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나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나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그 도전이 그리웠다. 나도 무언가 늘 새로운 것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지금 나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게 서글퍼졌다. 다시 활을 쏘고 싶어 일정을 정리해보았는데, 그게 쉽지 않아 잠시 좌절했다. 가뜩이나 추운 겨울 밤, 꿀꿀한 기분을 풀고 싶었다. 유튜브에 들어가 추천으로 뜬 영상 하나를 아무거나 클릭했다. 1970년대 최고의 디스코 라는 제목의 영상이었다. 그 짧은 쇼츠에서 마음이 끌리는 음악을 하나 발견했다.

 

 

 

 

내 마음을 이끈 노래는 블론디의 'Heart of Glass'였다. 디스코 특유의 그 넘실거림과 박자가 기분 좋게 만드는 음악이다. 다음 날 아침부터 이 노래를 수도 없이 들었다. "나 나나, 나 나나 나나 나 나 나나 나 나나" 하는 후렴을 따라 흥얼거리기도 하였다. 새로운 음악이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 추가가 되자 잘 안 듣던 음악들도 추천 영상으로 뜨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마지막 라이브 공연 영상이 떠서 아무 생각 없이 눌러봤는데, 그 노래의 반주가 너무 매력적이라 홀린듯이 찾아 들었다. 그 노래는 에미이 와인하우스의 'Back to Black'. 그녀가 가진 재지(jazzy)함이, 그리고 그녀의 삶이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한동안 그녀에게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그렇게 새로운 음악에 재미를 붙이고 있을 때, 교보문고에서 음반을 판매하시는 사장님을 뵈었다. 비틀즈 음반이 있어 열심히 음반을 구경하다가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사장님께서 스티비 레이 본의 음악을 들려주시면서, 아줌마 취향이라며 나의 음악 취향을 놀리시곤 웃으셨다. 집에 가면서 스티비 레이 본의 기타 연주를 듣다가 오랜만에 정말 행복하다고 느꼈다. 사장님과 대화를 하던 순간에는 주변의 모든 것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고 무대 위 한 조명만이 그 공간을 비추는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냥 잡다하게 찾아 들었을 뿐인데 재밌는 대화가 된다는 게 경이로웠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걸 끊임없이 새로 알게 되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내가 땅이라면 나를 이루는 모래들이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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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박규희 기타리스트의 연주 영상을 듣고 있다. '숲속의 꿈'이라는 음악을 연주하는 영상을 또 아무 생각 없이 추천에 뜨길래 눌렀다가 빠져버린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별 것도 아닌 것에도 꾸준히 도전해간다. 그게 비록 거창한 게 아니고, 거창한 결과를 내는 것도 아니지만 얼떨결에 늘 도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오는 진취감과 행복으로 또 미래를 도전하고 있다. 그것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도전이 가득했던 시기만큼 내가 아름다운진 모르겠지만 일상 속에서 늘 작은 도전을 하는 내 모습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조금씩 나의 초라함이 빛남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언젠가는 좀 더 많이 반짝이겠지? 그 때처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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