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왔다. 그 말은 ‘아직 새해니까’ 하며 핑계를 댈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까치 까치 설날이 아니라 우리 우리 설날이 왔기에 이제는 정말 새해 계획을 실천해야 한다. 긴 연휴를 맞아 작년 문화생활을 돌아보니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단연 AJR의 무대였다. 처음 보는 기발한 연출과 곡별로 맞춘 섬세한 무대구성, 그리고 그걸 직접 본 순간은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왼쪽부터 애덤(Adam Met), 잭(Jack Met), 라이언(Ryan Met)
AJR은 미국의 인디 팝 밴드로, 애덤(Adam Met), 잭(Jack Met), 라이언(Ryan Met), 삼 형제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지은 밴드다. 2005년 뉴욕에서 결성해 거리공연으로 커리어를 시작하였고 이후 독창적인 사운드와 감각적인 가사로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특히 밝은 멜로디 속에 담긴 깊은 가사는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많은 공감을 받고 있다. 대표곡으로는 ‘Weak’, ‘Burn the House Down’, ‘Bang!’, ‘World’s Smallest Violin’ 등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Karma’는 현대인의 불안을 가장 잘 담아낸 곡으로 주목받는다.
‘Karma’는 세 번째 앨범 ‘Neotheater’에서 첫 번째로 작곡된 곡으로 잭은 한 팟캐스트에 나와 이 곡의 가사가 자신의 실제 경험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그는 2018년 초, 두 번째 앨범 ‘The click’이 크나큰 성공을 해 오랜 무명을 끝내고 세계 투어를 다녔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일, 경험을 해도 자신의 기분이 나아지지 않자, 아래 가사를 적었다고 한다.
I've been so good, I've been helpful and friendly
전 계속 착하게 살았어요, 도움을 주고 친절하게요
I've been so good. Why am I feeling empty?
진짜 착하게 살았어요. 근데 왜 공허함만 느껴질까요?
I've been so good. I've been so good this year.
착하게 살았는데요, 올해는 착하게 살았어요.
And I've been so good. Where the hell is the Karma?
전 진짜 착하게 살았는데요. 카르마는 대체 어디있죠?
*가사 의역
문장을 적는 순간 그는 이 내용이 분명 노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애덤에게 말했지만 반대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지나치게 부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가사와 같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면, 이에 관해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Karma를 세상에 내기로 했다고 한다.
I've been so good, I've been helpful and friendly
I've been so good, why am I feeling empty?
I've been so good, I've been so good this year
I've been so good, but it's still getting harder
I've been so good, where the hell is the karma?
I've been so good, I've been so good this year
Why, are you asking me why?
My days and nights are filled with disappointment
Fine, oh no, everything's fine
I'm not sure why I booked today's appointment
I've been so good, I've been helpful and friendly
I've been so good, why am I feeling empty?
I've been so good, I've been so good this year
I've been so good, but it's still getting harder
I've been so good, where the hell is the karma?
I've been so good, I've been so good this year
What, am I normal or not?
Am I crazier than other patients?
Right, I've done everything right
So where's the karma doc, I've lost my patience
'Cause I've been so good, I've been working my ass off
I've been so good, still, I'm lonely and stressed out
I've been so good, I've been so good this year
And I've been so good, but it's still getting harder
I've been so good, where the hell is the karma?
I've been so good, I've been so good this year
Ah-ah-ah-ah / Ah-ah-ah-ah / Ah-ah-ah-ah-ah /
Ah-ah-ah-ah / Ah-ah-ah-ah / Ah-ah-ah-ah-ah
I've been so good this year
I've been so good this year
Time, I know we're out of time
But what if sad thoughts come and I can't stop it
Bye, I don't wanna say bye
If only I could keep you in my pocket
To give me some diagnosis of why I'm so hollow
Please give me instructions, I promise I'll follow
I tripped on my ankle and fractured my elbow
But doesn't that mean that the tour's gonna sell though?
I try to explain the good faith that's been wasted
But after an hour it sounds like complaining
Wait don't go away, can I lie here forever?
You say that I'm better, why don't I feel better?
The universe works in mysterious ways
But I'm starting to think it ain't working for me
Doctor, should I be good?
Should I be good this year?
*
사실 가사 속 'Karma'는 종교적 개념인 ‘카르마(Karma)’와는 약간 다르다.
종교에서 말하는 카르마는 모든 행동이 결과를 낳고, 그 결과가 다시 새로운 행동으로 이어지며, 더 나아가 윤회의 개념 속에서 다음 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하지만 노래 속 화자는 이러한 사후의 개념보다는 선행을 베푼 후 보상을 바라는 현재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가사에 나오는 불만들은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선행과 보상의 관계를 의심하는 현대인의 정서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믿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선한 행동이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혹은 악한 사람이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인다면, 우리는 왜 선을 행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AJR은 노래를 통해 직접적인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그 대신, ‘올해도 좋은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생각할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삶을 살다 보면 나를 괴롭히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람이나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똑같은 사람이 되지 말자’라며 자신을 다독이고, 참고, 넘어가려 노력하지만, 때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우리는 에너지가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호의로 베푼 친절이 당연한 권리처럼 요구될 때, 또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마저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선을 행하는 것은 보상을 바라지 않고 해야 완성되는 것 같다. 반응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카르마를 쌓아가는 것이다. 그 길은 고단할 수도 있고, 예상과 다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을 행하는 것이다. 삶이란 결국,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의 선택을 쌓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설날을 맞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며,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겠다. 반드시 보상이 따르지 않더라도,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결국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은 나 자신이기에.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