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한 번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전화를 좋아하지 않는 대다 굳이 재잘거리며 말하는 게 귀찮았다. 그럼에도 몇 명에게선 전화가 왔다. 카톡으로 하면 되건만 왜 전화를 할까. 괜찮냐, 어디에 며칠 입원하냐, 수술시간은 얼마나 되냐, 어느 정도 치료를 받아야 하냐, 구구절절 꼬리에 꼬리를 잇는 질문들……. 오히려 잘 됐다 생각했다. 주변에 남은 사람이 없어서. 있었으면 더 신경 쓰였겠지. 난 편안히 수술대에 오를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눈을 뜨니 병실이었는데 다른 몇 명의 사람들은 저녁이 되니 가족들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OO이 밥은 먹었고? 유치원은 갔어?”
“약은 선반 위에 있고, 가방은 작은방에 있어”
아이와 영상통화를 하는 엄마, 다 큰 딸과 수술 후일담을 이야기하는 아줌마……. 고요할 줄 알았던 육 인실에 몇 명은 재잘대며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건강을 회복하며 나도 지나간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털어놨다. 친구는 무섭고 힘들었을 거라고 본인이었으면 혼자 수술받으러 못 들어갔을 거라고 내게 씩씩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구는 딸 이름을 말하며, 딸 때문에 마음이 많이 무거웠을 거라고.
“지킬 게 있다는 건 무서운 일이야.”라고 말했다.
그 말이 가슴에 무거운 추처럼 묵직하게 내려 앉았다.
‘아 나는 지킬게 딱히 없어서 사는 게 재밌지도 아파도 그냥 그런 거였나’
그 무렵 치료가 다 끝났을 때도 그랬다. 집은 잠만 자는 곳이었고, 딱히 뭘 해도 무기력했다. 어느 날은 떠난 강아지가 보고 싶어 눈물이 날 때도, 내 삶은 왜 이럴까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다.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아픈 강아지가 간 지 일 년이 갓 넘었을 무렵 새로운 반려견이 내게 왔다. 첫 강아지를 데려온 것처럼 정말 대책 없이 데려왔다. 정확히는 내 마음이 새로운 녀석을 부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파양을 여러 번 당해서 이 집 저집 다녔던 녀석이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사람을 매우 좋아한다. 집에 오자마자 여기저기 탐색을 하고 돌아다니지만 많이 예민해 보였다. 하늘로 간 첫째랑 비슷한 듯 기질적으로 다른 면이 많았다. 얌전하고 온순하다고 들었던 성격과 다르게 요구성 짖음이 심했다. 아무리 맛있는 간식이어도 낯선 이가 주면 절대 먹지 않고, 차에서는 더 심하게 짖는다. 정확히는 커브길을 돌 때, 기어를 변경할 때,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귀신같이 알고 짖는다. 목소리는 얼마나 또랑또랑하고 큰지 왕왕- 왈왈- 거릴 때마다 심장이 벌렁거린다. 아직 한 살 반이라 여러 가지 교육도 해보고 이 방법 저 방법 시도를 해 보는 중이다. 방문교육 훈련도 몇 차례 받았다. 무엇보다 다시는 무언가를 키우지 않겠다는 나는 새로운 녀석을 데려왔다.
아빠가 내게 물었다.
“한 마리 보냈는데, 힘들지 않겠어? 아픈 거 또 보고 싶어? 고생해야 될 텐데.”
나는 대답했다.
“힘든 거보다 더 많은 행복을 주잖아”
첫째 강아지는 바빠서 산책을 자주 못 시켰는데 똥꼬발랄한 이 녀석은 매일 산책을 해야 한다. 폭설이 내린 게 아닌 이상 하루 한 번 1시간은 산책을 하고 있다. 그 덕에 나도 매일 걸어서 살이 빠지고 있다. 강아지에게 강제 산책 당하는 것이다. 사실 이 녀석을 어떻게 잘 키울지는 모르겠다. 대책 없이 데려왔으니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녀석에게 먹는 것만큼은 다양하고 좋은것들을 줘 세상에 여러 가지 맛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나는 매일 강아지와 이야기한다. 어쩌면 내 유일한 친구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메말랐던 일상에 촉촉한 단비 같달까. 눈을 맞추며 녀석에게 오늘 혹은 방금 있었던 일을 보고한다. 전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답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도. 바라만 봐주는 것으로 힘이 된다.
오늘도 축 늘어진 몸을 일으키며 나를 깨우는 녀석, 녀석의 아침밥을 차린다. ‘책임진다는 건 귀찮지만 바지런해야 하구나’ 뒹굴뒹굴하던 몸을 반사적으로 일으켰다. 커튼을 연다. ‘아 아침이 왔구나’ 그렇게 오늘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