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행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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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이후 몇 년간 나의 자유를 낯설어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루 차이로 성인이 되어 좀 더 늦게 집에 갈 수 있고, 홀로 어딘가로 떠날 수 있는 것도 모두 생경하게만 느껴졌다. 왠지 허락을 받아야 할 것만 같고 누군가에게 조언을 얻고 싶은 마음은 오히려 커졌다. 많은 도움을 받아도 그 모든 여과의 역할이 나이고 책임자도 나라는 것은 부담과 행복을 동시에 맛보게 했다. 성취는 달콤했고 실패도 나름대로 견딜 수 있었지만, 점점 더 큰 것을 이루고 싶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한 강도를 원하는 욕망은 중독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성취로 느끼는 행복은 내게 매력이 없었다. 그 기쁨은 너무 찰나였고 세상에는 언제나 대단한 것들이 많아서 후에는 ‘아 별것 아니었나?’ 하며 머쓱하기도 했다. 다른 방식의 행복을 찾고 싶었다.
행복은 절대적이지 않다. 늘 기쁨과 슬픔은 함께하고 성취를 이루었을 때도 미래에 대한 막연함은 다시 나타난다. 각자가 추구하는 행복에도 종류가 다양하겠지만 어떤 것이 크고 작은지를 가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 손에 들려있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아 떠나야 한다. 삶의 목표 같은 추상적인 가치는 자주 흔들리지만, 그 속에 자신만의 것을 가져야만 덜 고통스럽게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취미는 행복 찾아다니기
나는 미세한 행복을 찾아가길 좋아한다. 아주 미시적인 것들을 바라보다 보면 점점 더 자잘한 순간들을 감지하게 된다. 혹자는 이것을 일상이라 하거나 기억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작은 순간들이 분명 더 좋은 하루들을 만들어준다. 행복은 다른 단어로도 존재한다. 그저 이름 지었을 뿐이다. 행복에도 온도 차가 있고 그 풍부함을 경험하면서 더 작은 것도, 큰 것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간다. 눈에 보일 정도로 확실한 행복도 있지만 나만 느끼는 아주 작은 것들도 역시 행복이라 생각한다. 날씨가 좋아서, 우연히 찾아낸 음악이 좋아서, 하루가 무사히 잘 지나가서. 별일 없이 사는 일들이 하나하나 채워져 일상을 이뤄낸다.
집을 구하듯이 행복 조건을 찾아간다. 날씨가 맑은 날 하는 짧은 산책, 좋아하는 영화를 수십 번 돌려보기, 친구들과 밤새 전화하기 같은 일들을 떠올리다 보면 행복에 대한 환상이 깨지기도 한다. 대부분 로또 당첨도 아니고 마라톤 완주도 아니며 대부분 지금 하면 되는 일들이다. 물론 산책도, 영화도, 통화도 매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행복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 발견해 갈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도 하고 해본 일을 다시 해보기도 하면서 나의 세상도 커져간다. 행복에 대한 환상을 깨며 더 넓은 범위를 받아들일수록, 더 풍성해지는 일상을 만난다.
요즘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푹 자고 일어나 아침 창작 모임을 할 때다.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1시간 동안 하고 싶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던 일을 하고 나면 해가 어스름 떠 있다. 아주 작지만 가장 높은 확률로 하루가 반쯤 완성된 기분을 누릴 수 있다.
내가 믿는 행복
내가 믿는 행복은 삶의 척도가 아니다. 그보다도 궁극적인 건 원하는 것을 알려는 시도들이다. 원하는 것들을 찾아 주변 구석구석 배치하고 충분히 만끽하는 것, 나는 그것을 통틀어 행복이라 부르고 싶다. 그렇기에 지극히 평범한 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이든 충분히 음미하고 흘려보내는 것이다.
분명 그렇지 못한 시간도 있다. 어떤 행복도 느끼지 못했을 때는 그 무엇도 나를 기쁘게 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오늘 행복하지 않다면 앞으로의 내 인생도 그럴 것이라 믿었다. 그랬기 때문에 더 큰 즐거움이 내게 오길 바라고 또 좌절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단 하나도 이룰 수 없는 것들이다. 그 시점으로 지금의 나를 바라본다면 전혀 행복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잦아들기 시작한 건 감사에 대한 기준이 낮아졌을 때부터였다. 건강이 좋지 않았을 무렵 유일하게 꾸준했던 건 산책이었다. 땅바닥을 보며 걷다가 문득 벤치에 앉아서 본 하늘이 너무 푸르렀다. 가을이라 단풍이 지고 평일 낮의 공기가 아주 고요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아주 오랜만에 행복을 느꼈다. 내 안의 고장 났던 센서라도 작동하기 시작한 것인지 그 이후부터 아주 작은 것들에 기뻐지기 시작했다. 조금의 시간이 흘러 그해의 마지막 수박을 먹다가 수박이 달아서 행복하네 라는 말이 생각을 하기도 전에 튀어나왔다. 내가 웃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자마자 조금 당황할 정도였다. 영원한 불행은 없었고 대단한 행복도 없었다.
오늘이 행복하지 않다고 내 인생이 전부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하지 않는다. 동시에 오늘 행복하다고 내 인생에 대해 무한한 기대를 하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나를 늘 원점으로 데려다 줄 뿐이다. 내가 행복을 느끼지 못한 시간에서 불쑥 나온 후에도 나는 어떻게 나온 지 알 수가 없었다. 좀 더 사소한 감사를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을까. 건강이 조금 나아진 후부터였을까. 여전히 추측만 하고 그 시간을 통과한 것에 감사할 뿐이다. 생각보다 삶에 큰 의미나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저 내 하루하루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시간을 겪었기 때문에 더더욱 행복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한고비를 지나왔다는 안도와 기쁨을 계속 말하고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느꼈다. 기록하고 추억하지 않으면 아무리 큰 행복도 완전히 잊힌다.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행복한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돌이켜 본다. 기쁜 일과 슬픈 일 모두 있었지만 정작 기억하고 싶고 강력하게 돌이켜보는 기억은 대부분 행복한 순간들이다. 어릴 적부터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순간들을 마구 적어 왔다. 유년 시절 작은 소파에 더 작던 몸을 구겨 자던 낮잠이나 잠결에 업힌 채로 느끼는 부모님의 등, 학교 뒤뜰에서 받은 생일 축하, 청소 후 마지막으로 나서던 체육관의 향기 같은 것들.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순간들이지만 여전히 어제처럼 생생하고 따뜻해지는 행복들을 잊지 않고 싶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가진 상태라면 충분히 행복하다.
[노현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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