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간에 쫓기지 말고 시간과 함께하기 - 뮤지컬 틱틱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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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년 전에 넷플릭스로 영화 '틱틱붐'을 본 적이 있었다. 작년 이맘때쯤 봤던 뮤지컬 '렌트'의 작곡가 조나단 라슨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영화는 집에서 봤으니 이 내용을 무대에서 생동감 있게 본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 보고 왔다. 뮤지컬이 주는 활동적인 에너지,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춤, 음악 소리까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을 들썩일 것 같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재미있게 뮤지컬을 관람했다.
뮤지컬은 시작 전부터 시계추 소리가 들린다. 이는 주인공 '존'의 불안함을 표현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소리이다. 시간은 흐르면서 30살이 다가오고, 자기가 준비하고 있는 작품에 대한 불안감이 있고 불투명한 삶에 대한 두려움, 걱정, 불안, 분노,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소리였다.
솔직히 나는 이 작품을 32살에 보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후 작품을 봤기 때문에 존의 심경을 차분히 바라볼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존과 같은 나이에 이 뮤지컬을 봤다면 펑펑 울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존이 느끼고 있는 압박감은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두려움이었다. 내가 뭘 이루지도 못한 것 같은데 앞의 자리 숫자는 바뀌려고 하고 내가 주어진 시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시간에 쫓기고 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나 역시도 그런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나도 그런 시간이 있었지.' 하면서 뮤지컬을 보게 됐다.
30살 봄 어느 새벽. 문득 잠에서 깨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아, 목표를 이뤘다고 끝이 아니구나. 새로운 퀘스트들이 계속 내 인생에 등장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오랜 시간 목표로 준비했던 것들 중 창업이라는 목표를 하나 이뤘는데 내 생각보다 허무했다. 목표를 이뤘을 때 주는 성취감과 짜릿함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고 그것을 이루고 난 후 잘 끌고 가기 위해 계속해서 퀘스트를 해나갔던 게 기억에 남는다. 워크숍 공연을 끝내고 또다시 새로운 작품을 써야 한다는 수잔의 말에 존이 느낌 허무감에 내 새벽의 모습과 어렴풋이 겹쳐 보였다.
생일날, 희망적인 연락을 받은 존이 있다. 그 전화를 받고 난 후의 표정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어안이 벙벙한 것 같기도 하고 너무 놀란 것 같은 표정이기도 했다. 이 공연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표정이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어느 순간 시계 추의 틱틱 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존의 시간에 쫓기지 않고 함께하게 된 것 같다.
나는 이 뮤지컬을 보면서 내가 시간을 붙잡는 것도 아니고, 시간에 쫓기는 것이 아닌 시간과 함께 내 인생이 흘러가는 것이라고 바라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불안감은 누구나 다 다른 모양으로 가지고 있을 테니 나의 불안감도 잘 다독이며 인생이 흘러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두려움, 불안, 기쁨, 희망 등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면서 살고 싶다.
긴 대사도 집중해서 연기하는 배우들, 다양한 역할도 맛깔나게 소화하는 배우들, 악기의 소리가 공연에 아주 잘 어울리고 듣기 좋았다. 공연을 보고 난 후 공연장을 빠져나오면서 관객들의 얼굴을 봤는데 10대 학생들부터 어른들까지 연령대가 굉장히 다양했다. 나는 원래 공연의 연령대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시간'이 의미 있는 공연이라 그런지 각자가 느끼는 시간의 불안감이 궁금해졌다. 이런 궁금함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이라 더 인상 깊었다.
연초에 본 뮤지컬인 만큼 올해 시간도 알차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김지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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