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25년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꽃 - 뮤지컬 ‘베르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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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테르>가 1월 17일부터 3월 16일까지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관객을 만난다.
올해로 25주년을 맞은 <베르테르>는 감수성 풍부한 청년 베르테르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서정적인 음악으로 담아낸 창작 뮤지컬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창작 뮤지컬은 드물지 않다. 하지만 그 사랑 이야기들이 늘 공감을 얻는 것도 아니고, 초연을 끝으로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가운데, ‘베사모’라 불리는 마니아층까지 탄생시키며 25년간 사랑받은 <베르테르>는 어떤 작품일까.
고전이 지닌 생명력
나는 이렇게도 많은 것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없으면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1999), p.146
뮤지컬 <베르테르>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한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청년 베르테르가 롯데라는 여인에게 첫눈에 반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가 끝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담은 이 작품은 출간 당시 유럽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수많은 청춘이 베르테르에게 열광하며 그의 복장을 따라 했고, 급기야 그를 따라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유명인의 죽음을 모방하는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라 부르는 것도 이때부터다. 『파우스트』를 발표하기 전인 젊은 괴테는 이 작품으로 단숨에 유명 작가 반열에 오른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특징 중 하나는 서간체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인물과 그들의 서사는 철저히 베르테르의 관점으로 독자에게 전달되고, 독자는 자연스레 베르테르라는 인물의 복잡한 내면에 빠져들게 된다. 처음에는 자연을 예찬하고 삶에 기뻐하던 베르테르가 서서히 어두워지고 좌절하다가 나중에는 광기에 집어삼켜지는 모습은 소설 전체에 걸쳐 세밀하게 묘사된다. 베르테르를 그토록 행복하게 했던 사랑이라는 불꽃이 결국 그를 파괴하는 화마가 되어 돌아오는 모습은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만으로는 이 작품의 오랜 생명력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소설 속에서 베르테르는 자신의 감정에 괴로워하면서도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더 나아가 사람 한 명 한 명의 감정과 생각을 높게 평가한다. 이 소설이 출간된 당시의 유럽이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 사회였음을 고려하면 이러한 베르테르는 사회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반골적인 인물로도 읽힌다. 그 모습이 시대를 막론하고 기성 사회에 염증을 느끼는 젊은 독자와 공명하는 것은 아닐까. 18세기에 탄생한 작품이 오늘날까지 새로운 독자의 선택을 받는 이유를 이렇게 짐작해 볼 수도 있다.
무대 위에서 다시 태어난 베르테르의 사랑
독일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출간된 지 200여 년 후인 2000년, 베르테르의 사랑은 한국에서 뮤지컬로 새롭게 태어난다. 뮤지컬은 극적인 감정의 변화 또는 사건의 발생이 중요한 장르다. 그래서 보통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의 경우 더욱 극적인 방향으로 각색되는 경우가 많은데, <베르테르>는 원작의 베르테르부터가 극적인 인물이라 큰 각색보다 베르테르의 섬세한 감정 변화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려 노력했다. 이를 위해 소설에서는 비중이 크지 않은 인물에게 ‘카인즈’라는 이름을 주고 주인마님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면모를 보여주며 그를 베르테르를 비추는 거울처럼 그려냈다.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애절한 사랑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5인조 실내악단이 참여했다. 이러한 실내악 편성은 당시 뮤지컬계에서는 새로운 시도로, 훗날 <베르테르>만의 고유한 특징으로 자리 잡는다. 이렇게 공을 들여 탄생한 초연은 2001년 제7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7개 부문 후보로 올랐고, 음악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진행된 재연에서는 다소 정적인 분위기였던 초연과 달리 음악의 비중이 높아져 이때부터 지금 관객이 보는 <베르테르>에 가까워진다.
삼연까지 공연을 펼친 <베르테르>는 입소문을 타고 마니아층을 형성한다. ‘베사모’라 불리던 이들은 이른바 ‘회전문 관객’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팬층이었다. 베사모는 사연 당시 공연이 재정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자 직접 티셔츠나 배지 같은 굿즈를 제작, 판매하기도 했다. 팬이 굿즈를 제작하는 문화나 크라우드 펀딩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라 화제가 되었는데, 그만큼 <베르테르>가 길지 않은 기간에도 큰 호응을 얻었음을 보여준다.
<베르테르>가 걸어온 25년의 길
<베르테르> 20주년 기념 OST 앨범
<베르테르>는 지금까지 11번의 시즌을 거치며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돌아올 때마다 이전보다 좋은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여러 차례 수정을 거듭해 왔다. 관객의 정서도 뮤지컬계의 분위기도 초연을 선보인 2000년과는 달라졌기에 당연한 절차였을 것이다. 사연과 오연에서는 하인 카인즈가 주인마님을 지키려다 범죄를 저질러 체포되는 장면에서 시민과 귀족간의 계급갈등을 부각하기도 했고, 10주년 기념이었던 2010년 공연은 1000석 규모의 대형 뮤지컬로 돌아오기도 했다.
2013년 구연은 더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즌이다. <베르테르>로 좀 더 간결한 제목이 되었으며, 넘버 ‘자석산의 전설’과 ‘언젠가 그날’이 추가되며 음악적 완성도도 높아졌다. 정승호 무대 디자이너가 합류해 기존의 고풍스러운 무대 대신 화이트톤의 현대적인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베르테르> 하면 떠오르는 해바라기가 극의 중요한 오브제이자 베르테르라는 인물을 상징하는 꽃이 된 것도 이때부터다. 앙상블이 해바라기를 이젤 위에 내려놓는 장면, 해바라기가 하나씩 쓰러지는 장면은 많은 관객에게 <베르테르>를 새롭게 각인시켰다. 가장 최근 공연이었던 2020년에는 공연 실황을 개봉하고 OST 앨범을 발매하며 20주년을 기념했다. 또한 일본어 자막을 도입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며 새로운 관객층 유입에 힘쓰기도 했다.
<베르테르>의 지난 발자취를 더듬다 보면 유명한 배우들의 앳된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2002년에 베르테르 역을 맡은 조승우와 엄기준이 대표적이다. 조승우는 2015년 공연에서 다시 한번 베르테르를 맡아 큰 사랑을 받았고, 엄기준은 꾸준히 <베르테르>에 출연하며 작품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이번 25주년 공연에서도 그를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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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의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는 2025년에도 계속된다. 이번 25주년 공연은 조광화 연출, 정승호 무대 디자이너, 구소영 음악감독 등 오랫동안 <베르테르>에 참여해 온 제작진의 역량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2025년에 걸맞은 새로움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1월 17일 개막하는 이번 공연은 3월 16일까지 계속된다.
[김소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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