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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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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일도 약속도 없는 날, 집 밖을 나설 이유는 없지만 멋들어지게 옷을 입고 거리로 나선다. 목적 없이 나왔기에 딱히 갈 곳은 없다. 평소 많이 다니던 큰길보다는 좁은 골목길로 발걸음을 향해본다.


익숙한 동네지만 새롭다. 이리저리 바닥의 질감을 느껴가며 걸어본다. 목적지가 분명할 때는 결코 알 수 없었을 주변의 풍경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 늘 그곳에 있었을 테지만 미처 몰랐던 나무의 위치, 뭔가 특별해 보이는 전봇대의 모양. 평범한 동네 정경이 마치 다른 세상을 여행 온 듯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온다.

한층 설레는 기분으로 계속 걷다 보니 기분 좋은 빵 냄새와 커피 냄새가 난다. 냄새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니 미처 알지 못하던 빵집이 눈에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가게에 들어가 갓 구워 아직 포장지에 습기가 맺혀있는 빵을 고른다. 함께 먹을 커피도 같이 계산하고 나온다.

가게 안에서 먹을 수도 있지만 밖에서 먹으면 더 기분 좋을 것만 같다. 적당한 벤치 혹은 정자 혹은 큰돌 혹은 잔디바닥을 찾아 앉는다. 아직 창백한 햇살을 조명 삼아 가져온 커피와 빵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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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뇌르(Flâneur). 프랑스어로 산책자를 뜻하는 말이다.

 

 

'르 피가로'에서 보들레르는 '도시를 경험하기 위해 걸어 다니는 자'를 플라뇌르로 정의한다. 플라뇌르는 근대 사회가 도래하면서 태어난 개념으로 도시의 번잡함과 자본주의에 대한 무관심을 바탕으로 한다.

대로변을 벗어나 뒷골목을 탐험하며 내면의 세계를 추구하는 도시 산책자. 참으로 멋진 일이다.

플라뇌르는 일상에서 예술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행위이기도 하다. 발터 벤야민은 그의 저서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플라뇌르는 단순히 도시를 떠도는 관찰자가 아니라 예술가처럼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인물로 해석했다.

예술가가 현실을 넘어 상상력과 창조성을 발휘하는 것처럼 플라뇌르 역시 도시를 감각적으로 탐험하며 그 속에 내재된 의미와 감정을 포착하고 이를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21세기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예술은 더 이상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거리에 나와 안 가본 미지의 길을 탐험하며 관찰자의 시선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가게들, 나무들을 바라보자. 꼭 그걸 보고 예술적인 무언갈 떠올려야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여유 있는 미소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때그때 드는 생각 속으로 자연스레 빠져들면 될 뿐이다.

뚜렷한 목적지 없이 주변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세상을 인식하는 사람이야말로 오늘날의 보헤미안이요, 낭만주의자요,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예술가 아닐까.

쉼 없이 바쁜 삶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와 사뭇 다른 플라뇌르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새롭고도 매력적인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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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걸 탐험하며 멋나게 인생을 채워나가고 싶은 폼생폼사 인간, 강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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