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달이 지는 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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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별'이라는 순간을 경험한다. 연인, 친구, 부모님, 가족 등 많은 이들과의 이별을 경험하거나 자신이 그들에게서 이별하기도 한다. 국어사전에서는 이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서로 갈리어 떨어짐'
대상과 대상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서로에게서 분리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사소한 다툼이 될 수도 있고, 경제적인 이유, 돈이 될 수도 있으며, 누구도 원치 않는... '죽음'이 되기도 한다. 오늘 내가 소개할 영화는 바로 누구도 원치 않았고 때로는 갑작스러운 이별인 죽음에 대한 영화이다.
제목 : 달이 지는 밤
개봉 : 2022.09.22
국가 : 대한민국
장르 : 드라마
등급 :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 70분
감독 : 김종관, 장건재
이 영화는 두 가지 이야기로 나누어 진행된다. 첫 번째 이야기는 한 여인의 이야기로 그려진다. 버스를 타고 가던 여인은 무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린다. 버스에서 내린 여인은 마을을 지나 숲속으로 들어간다. 힘들게 산을 오르던 여인은 어디선가 들리는 방울소리에 발걸음을 멈춘다. 자신의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느낀 여인은 땅을 파기 시작하고 자신이 찾고자 하는 물건을 꺼내 들고는 발걸음을 돌린다.
어떤 허름한 집에 도착한 여인은 마을에서 사 온 촛불과 자신이 챙겨온 방울을 들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기 시작한다. 바로 자신의 딸의 죽음과 관련된 일이다. 자세하게 어떠한 의도로 이 행위를 하는지는 영화에서 소개되고 있지 않지만 죽은 딸의 흔적들을 찾는 듯 보였다. 그렇게 여인은 계속해서 의식을 진행한다.
의식을 진행하던 여인 앞에 흐릿한 형체의 또 다른 여인이 등장한다. 바로 여인의 딸이다. 여인의 딸은 그 허름한 집에서 자신의 흔적을 따라다닌다. 엄마와의 추억과 자신의 아픔, 그리고 죽음의 순간까지 그녀는 하나도 빠짐없이 자신의 죽음에 대한 흔적을 찾는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바를 이룬 듯 집을 떠나 마을 길을 걸어간다.
두 번째 이야기는 민재의 이야기로 그려진다. 서울에서 학교를 마치고 고향인 무주로 내려와 군청에서 일하는 민재는 혼자가 된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다. 어머니는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온 민재가 상당히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민재는 자신의 고향에서 즐겁게 일하며 자신의 소꿉친구이자 애인인 태규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간다. 태규는 편찮으신 할머니를 간병하며 자신의 조부모가 살아온 오래된 집을 지키며 살아간다.
어느 날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대학 친구 경윤이 민재를 찾아온다. 경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취준생이다. 열심히 노력하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는 현실에 너무나도 지친 경윤에게 민재는 이번에는 꼭 붙을 수 있을 거라며 응원해 준다. 하지만 경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렸는지 그런 민재의 응원이 힘이 되지 않는다. 그저 이 반복되는 삶이 싫어진 듯 보인다. 술을 꽤 마셨는지 비틀대는 민재와 경윤은 밖에 나와 연기를 내뿜는다. 민재는 경윤에게 자신의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하지만 경윤은 거절하며 사라진다.그리고 연락은 두절된다.
태규의 집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민재는 밤이나 새벽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보인다는 태규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민재는 태규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지만 태규가 요즘 힘들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밤이 깊어지고 민재는 태규의 집에서 잠이 든다. 시간이 지나 새벽이 되었을 때 마루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자고 있는 민재의 귀를 건드린다. 이에 잠에서 깬 민재는 마루를 내다보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로 태규가 말한 이야기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함께 옷매무새를 다듬고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이후에 영화는 태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민재의 대학 친구 경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나온 여인의 딸, 그리고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이들이 마을을 나가는 장면이 그려지며 마무리된다.영화가 시작되면서 보이는 인물과 배경, 으스스한 배경 음악 등으로 인해 나는 이게 공포영화라고 생각했다. 특히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다 무너져가는 집에 초췌한 여인, 그리고 유령까지 등장하니 이를 보는 나는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무서움, 공포스러운 분위기에 집중하기보다 인물들이 놓인 상황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니 집중되기 시작했다. 특히 첫 번째 이야기의 여인의 대사를 듣고 나는 깊은 감정에 빠져들었다.
죽은 나무를 꽃 덩굴이 둘러싸서 예쁘지만 그래도 죽은 건 죽은 거야...
하지만 꽃은 여전히 예뻐
이 대사를 듣자마자 나는 무너져버렸다. 누군가를 떠나보냈던 순간, 그 이후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이 느꼈던, 그리고 여전히 느끼고 있는 마음이 이 대사 한 소절로 표현되는 것 같았다.
죽은 나무를 꽃 덩쿨이 둘러싸서 예쁘지만 그래도 죽은 건 죽은거야...
소중한 사람이 떠났던 그 순간, 나는 믿기지 않았고 믿고 싶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 사람이 내 곁에 있는 것만 같고 함께 했던 흔적들이 여전히 내 곁에 있는데... 더 이상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었다. 그 사람과 행복했던 기억들이 이별의 아픔을 감싸안고 항상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변해 이제 난 괜찮아졌다고 생각할 즈음 아주 작은 바람으로 인해 또다시 무너졌다.
'아무리 괜찮아졌어도, 추억들이 가득해도 그 사람은 이곳에 없다. 그 사람은 죽었으니까...'
하지만 꽃은 여전히 예뻐
그 사람은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함께 했던 추억들을 바라보니 참 예쁘다. 그 사람에게 더 이상 말할 수 없지만 누군가와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참 아름답다. 그 사람은 더 이상 이곳에 없지만 나와 함께 아파했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으니 참 행복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죽은 자들이 함께 마을을 떠나 어딘가로 향하는 장면 역시 너무나 인상 깊었다. 보통 한국 영화에서 그려왔던 '저승', '귀신'은 무시무시하고 두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러지 않았다. 태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시작으로 여인의 딸, 그리고 민재 친구 경윤이 뒤를 이어 마을을 떠나갔다. 그들이 함께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 장면은 마치 남겨진 이들에게 잘 지내고 있으라고 말하는 것 같이 보였다. 그들이 떠날 때 보이는 표정은 무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무표정에서 편안함을 보았다. 더 이상 세상에 미련 갖지 않고 떠나는 그들의 편안한 표정과 걸음걸이는 영화를 보는 이들을 안심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각자의 이별의 순간들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달이 지는 밤, 그들이 우리 삶으로 잠시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경건하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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