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억은 존재를 초월한다 [영화]

글 입력 2025.01.0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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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지 않는 존재가 있을까? 모든 존재들은 자신만의 기억을 가지며, 그 기억은 보통 자신이 사랑하고, 기억하고 싶은 것들로 구성된다. 그렇기에 나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나에게 중요한 것, 나를 구성하는 내 정체성을 재확인 할 수 있다. 기억은 존재를 초월하며, 내가 기억하는 것들로 나는 재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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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양>(2022)은 바로 이런 영화다. 모두 다른 존재를 기억과 사랑을 매개로 묶어두는 영화. <애프터양>은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미래 시대를 배경으로 등장한, 휴먼 안드로이드 '양'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그에게도 가족이 있다. 그가 속해있는 가족은 백인 남성인 제이크와 흑인 여성인 키라, 그리고 아시아계 입양아 미카로 이루어진 다인종 가족이다.

 

양은 아시아계 입양아인 미카의 뿌리와 정체성을 위해 백인 아버지와 흑인 엄마가 사들인 아시아인 외형을 갖춘 오빠이자 보모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존재해왔다. 양이 어느 날 작동을 멈추자, 그를 친오빠처럼 따르던 마카는 충격을 받고 슬픔에 빠진다. 제이크는 ‘양’을 수리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수소문하다, 그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양의 특별한 메모리 뱅크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재생하며 영화는 진행된다.

 

 

 

우리를 구분 짓는 '정체성'


 

어린 미카는 오빠인 양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따른다. 안드로이드이지만 인간인 아버지 제이크보다도 더 아버지의 역할을 잘 수행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어느 날 미카는 다른 반 또래 아이들로부터 진짜 부모가 누구냐며, 지금의 부모가 진짜가 아니라며 부정 당한 채 돌아온다. 어린 미카는 진짜 부모라고 믿었던 그들이 진짜 부모가 아니라 충격을 받았다기 보다, 어쩌면 피부색이 다른 부모를 보며 어렴풋이 알게 됐을 막연한 진실을 들키자 부끄럽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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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 미카를 한 나무에 데려가 가지를 새로운 나무에 접목시키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며 설명해준다. 새로 심겨진 그 가지는 결국 나무의 일부가 되고, 그렇게 하나가 된 나무는 모두 연결되어있다는 것. 그러니 미카 역시 지금의 가족과 연결되있기에 하나라는 것. 그러나 미카가 “오빠도 그렇지”라고 했을 때 양은 대답하지 못한다.

 

미카가 도대체 왜 새로 가지를 옮기는지 묻자 양은 그것에 대해 이는 중국에서 4천년도 전에 쓰던 기술로써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얘기한다. 또한 가지가 새로 심겨진 나무 뿐 아니라 가지를 잘라온 나무, 두 나무가 모두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지를 잘라온 그 나무도 너한텐 중요한 일부야. 이해하니?"라며.

 

백인사회에서 아시아인으로서 살아가며 많은 고민과 어려움을 겪었을 코고나다 감독이, 자신과 같은 존재들에게 부여한 새로운 의미가 아닐까. 새로운 곳에 뿌리 내리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 양의 말처럼 그것은 굉장한 일이다.

 

 

 

인간적인: 인간만을 위한.


 

영화 중, 양의 기억을 탐험하던 제이크는 그가 한 여성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소문 끝에 찾게 된 그녀는 아다라는 이름의 휴먼 안드로이드이다. 양의 기억속에 있는 그녀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그녀에게 전달해주던 제이크는 안드로이드인 양이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아다에게 이렇게 묻는다.

 

“양이 테크노인 걸 힘들어했나요?, 혹시 인간이 되고 싶었나 해서요.”라고.

 

그리고 아다는 대답한다. “너무 인간다운 질문이지 않아요? 다른 존재는 모두 인간을 동경한다 생각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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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인간이 아닌 존재는, 특히 그 중에서도 휴먼 안드로이드라면 인간을 동경할거라는 편견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토록 인간적인 발상은 사실 전혀 새롭지 않다. 흑인은 백인을 동경할 것이라는 발상, 혹은 동물이 인간을, 미개한 다른 종들이 인간이라는 종이 되고싶어할 것이라는 발상.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어떤 존재로 태어났건, 혹은 만들어졌든, 누구든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고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더 마땅한 깨달음이 뒤따른다. 그것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여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다는 덧붙인다.

 

“뿌리에 의문을 가진 적은 있어요. 아시아인의 조건을 뭘까? 아마 미카가 뿌리를 이해하도록 돕고 싶었을거에요”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고 싶었던 것은 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감독은 여기서 이 모든 이야기를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새로 뿌리내리는 것은 또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서 말이다. 나아가, 정체성 간의 우열을 나누는 지극히 '인간적인' 행태를 꼬집는다.

 

 

 

새로운 다름, 새로운 혐오의 등장


 

우리는 끊임 없이 다른 존재를 차별하고 미워한다. 영화에서도 그렇다. <애프터양> 속 막연한 미래 시대는 자동차가 운전자없이 자동으로 움직이고, 허공에 떠있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공간을 초월한 통화가 가능한 최첨단 시대. 또한 클론이 가족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사회이면서 동시에 그런 클론의 존재들에 불편함을 느끼는 인간들이 공존하기도 한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제이크가 ‘그런’ 인간들 중 하나이다. 그는 이웃인 조지를 싫어한다. 하지만, 특별히 조지가 잘못한 것은 없다. 오히려 그에게 항상 호의적인 태도의 조지를 제이크가 싫어하는 이유는, 그가 클론인 부인과 쌍둥이 자녀와 함께 살기 때문이다. 제이크는 단지 그 이유로, 별다른 이유없이 조지를 이상한 사람이라며 괜히 꺼림칙해한다. 클론에 대한 은연중의 혐오를 갖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혐오, 차별 혹은 불호의 마음은 특정한 이유 없이 단지 다르고 낯설다는 이유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어쨌거나 그런 그(제이크)도 양이라는 안드로이드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현대인들의 이유없는 혐오, 혹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갖게되는 차별의 마음과 겉으로는 그것을 부정하는 인간다운 모순이 제이크의 모습을 통해 비춰진다.

 

 

 

사랑과 기억 속에 뒤섞이는 우리


 

영화 중반부와 후반부에 주제곡처럼 등장하는 곡 “Glide”의 노랫말이다. “I wanna be, I wanna be, I wanna be just like a melody, just like a simple sound, like a harmony” 단순한 소리처럼, 하나의 화음처럼 그냥 멜로디가 되고 싶다는 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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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종과 존재가 뒤섞여 등장하는 영화는, 양의 기억을 통해 자연스럽게 하나의 가족, 하나의 존재로서 그들을 통합시킨다. 인종으로 구분짓고 가르는 것, 인간을 다른 종으로부터 구분짓는 것, 거기에 인간 아닌,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나 기계,로봇 등의 비인간에 대한 혐오까지. 우리는 종과 사상, 인종으로 누군가의 정체성을 구분짓고 다름을 끊임없이 각인 시키며 차별의 기재로 그것을 이용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양의 기억과 양의 기억 속 남아있는 사랑 속 뒤섞여 구분 없이 모든 “존재”로서 평등한 세상을 그려진다. 양의 기억 저장소를 통해 그의 가족을 향한 사랑을 느낀 제이크와 키라는 그의 기억을 통해 그를 '기억하는 존재'로 정의한다. 더욱이 양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음을 이해하기 어린 나이인 미카는 한참이나 그를 그리워한다. 인간인 자신과 다른 존재임을 모르지 않지만, 미카는 양을 가장 있는 그대로 바라봐왔으며 그를 자신의 오빠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양이 자신에게 '서로 다른 나무에서 온 가지들이 하나를 이룰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줬던 기억, 그 기억으로부터 탄생한 '있는 그대로의 애정'은 둘 사이의 구분을 삭제함을 넘어 우리를 생동하게 한다.

 

나는 나로서 그대로 존재하는 것. 그런 '나의 정체성'들이 섞여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 내는것. 우리가 기억이라는 공통된 본질 아래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사람들은 무언가를, 그리고 누군가를 쉽게 미워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리고 함께 조화할 수 있을지도.



 

[최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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