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리 로페즈의 책 ‘호라이즌’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뉴욕 타임스, NPR, 가디언 선정 올해 최고의 책’, ‘전미 도서상 수상 작가 배리 로페즈의 생전 마지막 역작’.
배리 로페즈는 세계적인 산문집 작가이었는데, 사막을 걸으며 쓴 ‘여기 살아있는 것들을 위하여’와 빛과 얼음의 땅 ‘북극을 꿈꾸다’라는 책으로 유명합니다. 55년이 넘는 세월 동안 80여 개 나라를 여행하면서 스무 권이 넘는 책을 펴낸 그는 2020년 75세의 나이에 암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남긴 메모와 기록들은 텍사스 공과대학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배리 로페즈의 글에 감동을 받는 것일까요?
대개 ‘배리 로페즈는 글 자체가 그 자체이다‘라는 평이 있습니다. 사진이 없어도, 글을 통해 풍경을 상상할 수 있도록하는 구체적이고 아름다운 문체로 유명합니다.
![[크기변환]갈라파고스 제도.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1/20250103154224_vvmmtuva.jpg)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제도'
남서쪽의 활짝 열린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는데 검은 암흑 속에서 뭔가가 보였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즉각 알아차렸다. 우측 방행 뱃머리를 향해 흰색과 터키석색이 섞인 직선이 다가오고 있었고 내가 바라보는 동안 점점 더 길어졌다. ….(중략)…보트 바로 앞에 생기는 압력파를 타고 있는 돌고래 한 마리였다.….(중략)…이 선들은 물속 돌고래들의 움직임에서 자극을 받은 플랑크톤들이 내는 생물발광이었다. 배의 압력파를 평행으로 타고 있는 돌고래 여섯 마리는 각각 뚜렷이 구별되는 유령 같은 윤곽으로 물에 타원형의 빛을 밝혔다. 나는 돌고래들이 파열음으로 내는 숨소리도 들을 수 있었고 비릿한 숨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P. 407
섬세한 묘사가 이 책을 928쪽에 달하는 긴 기행문으로 만든 원인이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사람들이 찾아 읽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한, 인류학, 지질학, 정치, 생물학, 윤리학과 과학, 자연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전개도 흥미 요소 중 하나입니다. 특히 ‘3.푸에르토아요라’ 속에 담긴 배리 로페즈의 사색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섬들을 여행하며 ‘식민지 및 제국주의’(정치), ‘상어사냥과 희생되는 바다사자’(윤리학), ‘팔로산토나무와 푸른얼굴얼가니새, 그리고 주황눈숭어에게 둘러싸인 경험’,(자연) ‘바넷의 연구’(생물학)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식민지 및 제국주의
허먼 멜빌은 '엔찬타디스 또는 마법에 걸린 섬들‘에서 갈라파고스 제도가 선원들의 눈에 지옥 같은 광경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갈라파고스의 산 풍경과 거친 화산암들이 날려 있는 평원, 바싹 마른 해안을 불타버린 유형 식민지에 비유했다….. 멜빌은 포경선 동료들이 갈라파고스 제도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종종 거론하는, 이 섬들이 뿜어내는 신비로운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모호한 스페인어 단어 ‘엔칸타다’를 사용했다. (뱃사람들은 갈라파고스 제도가 섬들 사이로 해류들이 복잡하게 흘러 항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표현할 때도 "라스 엔칸타다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P. 362
갈라파고스 제도는 바닷속 화산이 분출하며 갑자기 생긴 섬으로, 에콰도르 소속입니다. 에콰도르는 제도남아메리카 대륙 북서부에 있는 나라로, 1533년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콰도르는 11개 원주민어 외에 주요 언어는 스페인어가 쓰이고 있습니다. 배리 로페즈는 특히 8레알짜리 동전을 통해 벨기에의 레오폴 2세를 떠올리며, 유럽의 식민지 당시 횡포를 회상합니다.
페로 데 프레사는 콩키스타도르들이 인디인들을 쫓아가 찢어발기도록 훈련한 방전으로, 스페인의 완력과 용맹을 상징했다…..(중략)…. 그들이 자기네 문화권이 증오하는 대상들 혹은 자신들이 욕망하는 것을 소유한 이들에게 잔인한 페로 데 프레사를 풀어 공격하게 한 역사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P. 370
이때 ‘콩키스타도르’란, 스페인어로 정복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15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아메리카 대륙에 침입한 스페인인이나 포르투갈인을 이르는 말입니다. 황금을 약탈하고 원주민들을 대량 학살하기도 하면서, 잉카제국과 아스텍 문명 등 아메리카 대륙의 고유 문명들을 파괴했습니다.
맹견을 풀어 원주민을 학살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던 역사를 보며 배리 로페즈는 “그러한 과거사를 기억하며 분노나 후회나 슬픔을 표현하는 것을 세상 물정 모르는 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다 사라진 과거의 야만일 뿐이고 예외적 양상일 뿐이라는 듯 여기면서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계 역사에서 일어난 최악의 인구학적 재앙’이라 부르는 일, 바로 아메리카 대륙의 선주민 인구를 없애버린 일에 관해서는 귀를 닫고 싶어한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습니다.
![[크기변환]노동착취.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1/20250103154354_ptqmyzsd.jpg)
볼리비아 세로리코산
과거에 케추아족은 세로리코산이 신성한 산이며. 케주아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인격화 된 ‘에너지의 집’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스페인 사람들이 그들에게 노예 광부로서 생계를 이어가게 강요한 뒤로, 케추아 사람들 의 상상 속 그 산의 성격도 변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그 산은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존재인 악마 ‘베엘제붑’으로 여겨진다.
P. 433
식민지로 지배받던 기억은 민족의 정체성도 바꾼 것입니다. 케추아족이 세로리코산을 신성한 존재로 여겼지만, 산에서 금광 노동착취를 당하면서 현재는 악마로 여겨진다는 부분에서, 식민지는 끝났지만 그 상처의 흔적은 문화 속에 여전히 남아있음이 보여 마음 아팠습니다. 케추아족 출신 광부들은 이에 대해 ‘우리는 그 산을 먹고 그 산은 우리를 먹는다’라고 했습니다.
상어사냥과 희생되는 바다사자
![[크기변환]갈라파고스 바다사자.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1/20250103154454_uvszdacy.jpg)
갈라파고스 제도 바다사자
우리 가이드 ‘오를란도’는 갈라파고스 어부들이 바다사자 시체를 상어잡이 미끼로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 그해에 아시아의 어류 가공선들이 푸에르토비야밀 같은 마을들을 찾아와 상어 지느러미를 사겠다고 제안하며 어부들에게 그물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류 가공선들이 갈라파고스의 마을에 상륙하는 것, 바다사자를 그물로 잡는 것, 상어를 죽이고 그 지느러미를 파는 것까지 전부 다 불법이었지만, 국립공원은 그 일을 막을 자금도 인력도 없었다.
P. 412
배리 로페즈는 가이드와 함께 그물에 걸린 바다사자 열다섯 마리를 풀어주었습니다. 이 그물은 아시아 상인들이 바다사자를 잡아오라며 푸에르토비야밀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것이었습니다. 바다사자를 잡는 이유는 상어를 유인하는 미끼로 쓰기 위한 것이며, 상어를 잡아 지느러미를 팔기 위해서였습니다.
특히 중국과 일본에서는 상어 지느러미 요리(샥스핀)를 위해, 상어의 몸통은 버리고 지느러미만 잘라내어 팔기도 합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서도, 아시아 상인들이 푸에르토비야밀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주며 상어 지느러미를 사가고 있어, 간혹 해변을 거닐다가 지느러미가 잘린 상어의 시체가 보인다고 합니다.
![[크기변환]샥스핀.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1/20250103154522_uzfwndqe.jpg)
갈라파고스 제도 'Shark's pin' 요리를 위해 희생된 상어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이하 사이테스)에서는 23년 2월 23일부터 국제시장에서 멸종위기종 상어를 사고팔 수 없도록, 특정 사람들에게 상어 거래 면허증을 주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으나 불법 거래 등은 아직 못 막고 있습니다.
상어 사냥과 바다사자 포획 외에도, 갈라파고스 국립공원과 푸에르토비야밀 마을 사람들 간의 불화는 잦다고 합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대해 세계적인 관심이 쏠린 이후로 설립된 갈라파고스 국립공원 입장에서는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전부터 갈라파고스 제도에 거주했거나 이주해온 노동계층은 국립공원 안에서도 상업, 어업이 가능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충돌이 일어났으나, 특히 이사벨라 섬의 푸에르토비야밀 마을 사람들은 찰스다윈 연구소 유리창을 박살내거나, 국립공원 내 코끼리거북들을 일부러 죽이는 등 과격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팔로산토나무와 푸른얼굴얼가니새, 그리고 주황눈숭어
![[크기변환]얼가니새.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1/20250103154657_bdmcegcz.jpg)
갈라파고스 제도 푸른얼굴 얼가니새
흉내지빠귀들은 새끼 얼가니새들을 낚아채가더니, 부모 얼가니새들과 겨우 1,2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새끼들을 죽여 잡아먹는다….(중략)…바람에 휩쓸려 간 새들의 해골은 나뭇가지 위에 불길한 징조처럼 걸려있다. 푸른얼굴얼가니새의 둥지 안에서는 더 큰 새끼가 더 작은 새끼를 죽인다.
P. 391
마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얼가니새에 대한 묘사는, ‘약육강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우리 인간도 얼가니새처럼 약하면 잡아먹히기도 하지만, 우리 인간의 ’약육강식‘은 태어날 때부터의 몸집 크기 등보다는 그 이후 어떻게 삶을 꾸려나가느냐에 더욱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갈라파고스에서 내가 보았던 그런 패턴은 흰 잔가지가 많지만 잎은 하나도 없던 팔로산토 나무들이 만드는 수평선, 그리고 이 선과 평행을 이루며 그 아래 펼쳐진 흰 해변이 무광의 용암이 만든 검은 선에 의해 보일 듯 말 듯 구분되고, 다시 그 아래 어두운 바다에서는 눈부신 색으로 부서지는 파도가 그보다는 더 어두운 흰색 해변으로 가 부딪치는 가운데, 이 모든 것 위로 뒤에 자리한 경사지에서는 점묘화로 그린 듯한 스칼레시아숲이 펼쳐져 있고, 어두운 바다가 이러한 육지와 하늘을 희미하게 반사하고 있는 모습이다.
P. 416
이 책 제목의 ‘호라이즌(수평선)’이 나타나는 대목이기도 하며, 갈라파고스의 풍경을 묘사하는 위 문장들은 우리로 하여금 상상하도록 만듭니다. 사진 하나 첨부하지 않은 이 책이 불친절하다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묘사들 덕분입니다.
이때 팔로산토 나무 조각은 요가 혹은 명상을 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있습니다. 향기가 좋아 심신을 안정시켜주기도 하고, 스페인어로 ‘신성한 나무’라는 뜻도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 방향제로 판매되는 것은 많이 보았으나, 책 ‘호라이즌’을 읽으며 팔로산토 나무의 본래 모습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가지는 많으나 잎은 별로 없는, 약간 작은 바오밥나무 같은 형상이었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흰 바닥이 마치 눈을 깜빡거리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올라가는 속도를 늦췄다. 이제 내가 어디로 손을 뻗든 물고기들은 우아하게 그 옆으로 비켜났다. 내가 다리를 가슴 앞으로 당겨 끌어안자 물고기들은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왔고 잠시 동안 나는 그렇게 물고기들에게 완전히 둘러싸여 있었다. 숭어 떼의 마지막 층이 내 위에서 갈라지자 3미터 정도 거리의 물 너머에 팡가의 하얀 바닥이 보였다. 주황눈숭어들과 함께한 그 일분 삼십초의 기억은 내 정신뿐아니라 몸에도 새겨졌다.
P. 452
배리 로페즈는 자연을 더 잘 즐기기 위해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하여 갈라파고스 제고 바다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물고기 떼 속에 잠시 둘러싸여 있던 기억에 대해 그는 ‘세상의 모든 귀퉁이에는 예상하지 못한, 하나로 통합된 이름 없는 눈부신 삶이 존재한다’며 언급했습니다.
바넷의 연구
나는 갈라파고스 호텔에서 당시 갈라파고스의 야생화된 개들을 연구하던 생물학자 브루스 바넷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사람의 손길에서 벗어나 야생으로 돌아간 개들의 종류는 테리어, 스패니얼, 독일 셰퍼드, 불도그, 리트리버, 그레이트데인 등 다양하다. 이들은 모두 동일한 유전형, 즉 카니스 파밀리아리스의 다양한 표현형들이다. 야생에서는 이런 표현형들이 대부분 사라진다…(중략)…같은 지역에 사는 야생화된 개들은 몇 세대만 지나도 서로 닮은 외양을 띤다.
P. 396
배리 로페즈와 만나 점심을 먹은 바넷은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을 알아냅니다. 여러 종의 개들이 같은 환경에 놓이면 비슷하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버려진 여러 종류의 개들은 저차 시간이 지나자 귀는 박쥐처럼, 털은 짧게, 배는 털이 없도록 변했다는 것입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다윈이 연구했던 것처럼, 지금도 갈라파고스 제도는 여전히 과학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는 고장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