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가득 채워진 전시장은 얼마나 환상적이고 흥미진진할까. 어른이 되어서도 빽빽이 글만 있는 책보다 그림 있는 여유로운 책이 좋은 나는, ‘그림책이 참 좋아’에 적극 동의하며 전시 공간을 찾았다.
‘2025 그림책이 참 좋아展’은 지난 12월 20일에 시작해 올해 3월 2일까지 이어지며, 예술의전당에서 만나볼 수 있다. 누적 판매 800만 권을 자랑하는 ㈜책읽는곰의 그림책이 참 좋아 시리즈부터, 2024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한 해외 작가의 작품까지. 그야말로 그림책 계의 어벤져스가 뭉친 전시라 할 수 있겠다.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며 하나둘씩 작품을 거쳐 갈 때마다 어딘가 어정쩡한 자세가 반복되었다. 꼿꼿이 허리를 펴고 관람하던 다른 전시와는 달리, 약 30도 앞으로 굽혀야 작품과 소개 글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잠시 뒤 도슨트 투어를 돌고 있는 아이들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아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하여 만든 구조였구나.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전시이지만, 특히나 그림책을 좋아하고 많이 찾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전시였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 온 부모님은 아이 옆에 쭈그려 앉아 눈높이를 수평으로 맞추고, 작품 속 그림을 아이의 시선으로 공유하기도 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세심한 배려의 흔적뿐만 아니라 곳곳에 숨겨진 체험 공간도 눈길을 끌었다. 그저 그림책 세상을 겉에서만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으로 직접 들어가 사진도 찍어보고, 현실로 튀어나온 그림 모형을 만지며 입체적 경험을 도왔다. 또한 초대형 미디어아트로 구현된 생동감 넘치는 그림책 세상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꽁꽁꽁 댕댕 ⓒ 윤정주, 책읽는곰
최숙희, 윤정주, 김영진, 유설화 등 국내 최고의 그림책 작가 20여 명의 개성이 담긴 그림 스타일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었다. 색연필의 얇은 결이 느껴질 정도로 겹겹이 쌓인 그림, 수채화로 색의 경계를 투명하게 번져놓은 그림, 페이퍼 아트를 제작하고 촬영해 그대로 책에 담은 작품까지. 저마다의 풍부한 상상력이 다채로운 그림 표현으로 펼쳐져 있었다.
대표적으로 ‘꽁꽁꽁 댕댕’은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엄마가 깜빡하고 냉장고에 넣고 간 휴대폰으로 딸 민지가 다쳤다는 전화가 오자, 소시지 삼총사와 셀러리는 본인들의 맛있는 냄새로 강아지 꽁지를 꾀어 엄마 회사로 전달하러 간다. 냉장고와 휴대폰, 강아지. 전혀 연관성이 없는 듯한 세 개의 단어로 흥미로운 스토리를 만들고, 음식들에 표정을 부여하여 상황의 몰입도를 높인 작가의 센스가 돋보였다.
네 기분은 어떤 색깔이니 ⓒ 최숙희, 책읽는곰
사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림책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점점 심오해졌다. 아기자기한 그림 뒤에 그려진 사소한 요소에도 신경을 쓰고, 대화 속에 숨겨진 뜻이 있을 거라고 의심을 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겪어온 수많은 경험에 빗대어 그림책을 흡수하다 보니 그림책의 순수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반면 이번 전시에서 접한 그림책들은 있는 그대로, 어린 시절 순수함에 가까운 감정들을 떠올리며 감상할 수 있었다. 물론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그들과 동화된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작가들이 던진 다정한 질문에 잠시 어렸을 때의 나로 이입하며 솔직한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네 기분은 어떤 색깔이니?” _ 최숙희 작가
“‘아니’라고 말하면 왜 안 돼? ‘아니’라고 말하는 게 꼭 나쁘기만 한 걸까?” _ 노인경 작가
‘2025 그림책이 참 좋아展’은 아이들에게 전시라는 콘텐츠를 가장 쉽고 재미있게 알릴 수 있는 기획인 것 같다. 집뿐만 아니라 학교 교과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그림책을 소재로 했기에 내용 이해의 정도와 익숙함은 물론이고, 아이들 스스로 다양한 감정을 파악하고 표현하기 좋은 공간이라 생각한다.
어른 역시 아이의 시선에 위치하면서 색다른 상상력에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동시에 던지는 작가의 메시지는 평범한 일상 속 신선한 자극이 되고, 마음에 담긴 그림의 잔상은 잔잔한 힐링을 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