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마법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그림책이 좋아 展」은 국내 그림작가들의 마법 같은 이야기를 담았다. 340평의 공간, 20여 명의 작가들이 250여 점의 작품을 전시했다. 도착했을 때 눈에 띄었던 건 아이들 손을 잡고 온 가족들이었다. 어린아이들이라면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마련인데 섹션마다 뭐가 그리 재밌는데 그림을 보며 재잘재잘 떠드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다 흐뭇했다.
「그림책이 좋아 展」은 각각의 그림들도 좋았지만 아이들이 참여하고 경험할 수 있는 매체가 다채로워 풍성한 느낌을 주었다. 윤정주 작가의 꽁꽁꽁 시리즈는 애니메이션 관람관, 냉장고 속 친구들을 자석으로 옮길 수 있는 체험관으로 따로 이루어져 있었다.
참여형 프로그램에는 아이들이 여럿 모여 오롯이 동화 속 인물이 되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나는 중간중간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캐릭터 포토존과 배경이 살아 있는 생동감이 들어 포즈를 잡았다. 전시 배치를 잘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 밖에도 재미있는 체험들이 많았다. 볼로냐 라가치상을 받은 김규아 작가의 그림자 극장, 직접 그린 그림을 스캔해 띄우는 어린이 체험존, 미디어 아트, 그림뿐 아니라 세트장처럼 만들어 보여주는 방식도 신선했다.
내가 제일 인상 깊게 본 작품은 황케이 작가의 「꽃에서 나온 코끼리」와 시드니 스미스 작가의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다. 꽃에서 나온 코끼리는 그림만으로도 오감이 자극된다. 다음 내용이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꽃에서 나온 코끼리 ⓒ 황K, 책읽는곰
![[포맷변환][크기변환]시드니스미스.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412/20241227215336_evdetwqw.jpg)
꽃 수술 사이로 주인공 한별이가 코를 대는데 작은 코끼리가 튀어나온다. 우리가 생각하는 코끼리는 크고 웅장한데 책 속 코끼리는 포켓 코끼리다.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코끼리가 그림 전시에서 만나다니……. 뭔가 새롭다. 시드니 스미스 작가의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괜찮을 거야’는 2024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했다. 서정적인 느낌 특유의 분위기와 그림체가 내게 정말 ‘괜찮을거라고’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림만 보는데도 뭉클한 느낌이 드는 건 무엇일까? 이것이야 말로 작품 자체로 감동받는 순간일 것이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것들에 대해
나는 아동문학을 좋아한다. 책 속 펼쳐진 이야기가 어린시절 나와 만나는 순간 마법처럼 옛 감정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현실 속 쳇바퀴처럼 사는 직장인들에게, 동화는 꿈만 같다. 하늘에서 구름을 따다 솜사탕을 만들고, 내 키보다 큰 이파리를 이불 삼아 덮는다. 어릴 적 보았던 잭과 콩나무, 헨젤과 그레텔, 장화 신은 고양이를 기억하는가? 머릿속에 상상하는 생각들이 현실이 된다. 상상력을 연료 삼아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마법’이 동화 속에서는 무한하다. 특히 그림책은 주제와 상상력을 그림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매력 있는 장르다.
사 오 년 전 십이월 이맘때쯤인 것 같다. 퇴사하고 아무 생각 없이 동화를 쓰고 싶어서 열심히 아동문학을 읽고 쓰며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읽는 것과 직접 쓰는 것은 달랐지만 그 과정 속에서 얻은 게 더 컸다. 한정적인 생각의 폭을 좀 더 넓히려고 노력했고 글을 쓰며 내가 너무 틀에 갇힌 생각을 한 채 살았구나를 깨달았다.
오랜만에 전시장 속 작품들을 보니 마음속 끄트머리에 있던 동심 세포가 마구 자라나는 듯하다. 잊고 살았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진짜 어린이의 감정을 느끼려면 아이가 될 수 없으니 직접 만나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영유아, 어린아이들에게 그림책이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크고 귀엽게 그려져서? 그림책은 읽는 방식에 정답이 없고 자유롭다. 생각을 확장할 수도 있고 그 생각이 하나의 세계관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누군가 그랬다. 그림책은 평생 세 번 본다고. 어렸을 때, 부모가 됐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을 때, 허나 그때뿐일까. 그림책은 전혀 시시하지 않다. 각 시기별로 읽었던 책을 다시 곱씹으면 느낌이 다르듯이 인생의 의미 있는 철학이 담겨있다.
그런 의미로 예술의전당 그림책이 참 좋아展 관람은 잊고 살았던 어떤 감정을 깨우쳐준 매우 귀중한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