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몸의 중심에서 우리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하는 존재에 관하여 [공연]

<내가 물에서 본 것(What I Sense in the Matter)> 김보라 안무작 / 24.10.17(목)-19(토) / LG아트센터 시그니쳐 홀
글 입력 2024.12.1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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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물에서 본 것(What I Sense in the Matter)>은 질문도 대답도 아니다. 춤과 몸의 얽힘 속에서 적나라하게 벗겨지는 무언가는 독자에게 불쾌감을 넘어 반성하게 한다. 김보라 안무가는 이번 작품에서 낯선 공생 속 ‘무한히 변화하는 몸’에 대해 탐구하였다. 시험관 아기 시술인 보조생식기술(ART, Assisted Reproductive Technologies)에서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몸의 위치에 관한 의심과 질문들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로써 몸과 기술이 결합해 만든 비선형적 사고, 윤리에 어긋나는 문제점들을 바라본 본인의 경험을 깊은 물 속에 녹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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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의 차가운 바닥과 적나라한 흰 조명, 아무 효과 없는 뒷배경, 살점 같아 보이는 물질을 여러 개 몸에 단 무용수들의 광경은 기계를 찍어내는 공장인 듯 차갑고 날카로운 분위기와 함께 병원 혹은 시험관을 연상시킨다. 이후 무용수들은 파란 비닐을 뜯어내며 귀가 찢어질 듯한 소음을 유발하는데, 이는 겉으로 멀쩡해 보이던 ‘물속’을 들여봄과 함께 수차례 난임 시술을 받은 김보라 안무가의 사적이고도 공통적인 여성의 이야기가 시작됨을 알린다. 제목에 담긴 ‘물’은 단순한 물(water)가 아닌, 물질 혹은 문제(matter)의 개념을 담는다. 여기서 안무가는 몸을 하나의 인간이 아닌 물질로 보고 있다는 점이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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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서 무용수들은 하나의 세포가 여러 개로 분열하듯 움직이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몸속에서의 신비로움을 제시한다. 입 안에 물을 머금고 이를 삼키기도 하고, 뱉어내기도 하며, 뱉은 물에 몸을 적셔내기도 한다. 여기서 물은 여성의 몸에서 생명에게 부여하는 산소 역할과 함께 여러 현상이 일어나는 물질(matter)로써 읽힌다. 무대 후반부에 등장하는 계란판은 처음에 깨지지 않고 바닥에 놓이지만, 후에 인정사정없이 던져지며 깨지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는 여러 개의 수정란, 즉 생명이 무자비하게 여겨지고 있으며, 사물로 취급받는 몸을 통해 이를 등한시한 병원에서의 경험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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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그의 사유가 포스트 휴머니즘적 몸의 현상화를 담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지금껏 몸을 매개로 한 장르를 해온 안무가와 무용수들은 무의식적으로 몸이 온전한 ‘나’와 일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 속에서 몸을 다양한 혼합체로서 바라보고, 몸을 둘러싼 이외의 것들을 제외하며 몸을 비위계적 존재로 설정하였다. 안무가는 난임 시술을 둘러싼 ‘여성의 몸’ 또한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허구를 촉발하는 역할을 요구받는 모순된 위치에 놓여 있다고 주장한다. 이외의 것들을 제외했을 때, 남는 물질인 몸으로서 인간이자 여성 되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인간 되기를 실천하며 기존의 위계질서를 타파하는 포스트 휴머니즘적, 페미니즘적 몸 담론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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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작품에서 ‘안무가가 물에서 본 것’은 중요치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통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전개 방식은 공통되게 ‘몸’을 무대 위로 꺼내놓았다. 불연속적이고 불완전한 동작, 끊임없이 연출되는 위태로운 상황, 앞선 상황과 모순되는 상황은 여성 몸의 중심에서 느껴지는 생명에 대한 존중과 혐오감을 동시에 들춰낸 작품이다. 김보라 안무가의 경험을 토대로 난임 시술에서의 물질이자 문제이자 동시에 물의를 빚는 것들에 관한 몸의 기록으로서의 안무(choreo-graphy)를 실천하며 ‘만들어진 몸’이 아닌 ‘되어가고 있는 몸’, 또는 ‘변화하는 몸’으로 정의하였다. 이에 대한 해석은 독자에게 맡기며 우리 몸에 주어진 정답 없는 수많은 난제를 물 밖으로 꺼내놓은 셈이다.

 

 

[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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