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P로 살아가면서 다이어리를 만든다는 것

기록, 그거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몰라서
글 입력 2024.12.14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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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하면 다짐, 다짐하면 다이어리. 나에게 다이어리란 늘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늘 그런 다짐이 반복된다는 건 그다지 긍정적인 신호는 아니다. 그 다짐을 매번 이루지 못했다는 뜻이니까.

   

이루지 못한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나는 버릇 자체가 계획적이지 못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미루기’는 나의 영원한 동반자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알지만, 직감적으로 이 끈적끈적한 습성과 절대 떨어질 수 없으리란 걸 알고 있다. 그러니 내가 다이어리를 쓴다는 건, 초등학교 방학 끝 무렵에 당연하다는 듯이 30일 치 일기를 하룻밤에 써 내려갔던 것과 동일한 과정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마음을 다잡고 반복해 봐도 결과는 맨 앞과 뒷장을 빼고 텅텅. 몇 년 전부터는 그런 무의미한 지출과 행동을 방지 혹은 회피하기 위해 다이어리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어차피 안 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록하고자 하는 나의 열망과 기록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은 ‘미루기’처럼 은은하게 나의 생활에 계속 존재해 왔다. 따라서 매번 실패로 돌아가는 그 다짐을 아예 버리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 드는 다이어리를 발견했음에도 이내 그 다이어리를 내려놓고 대체품으로 언제든지 용도가 변경될 수 있는 노트를 구입하기도 했다.

 

언제쯤 이 지독한 무한 굴레를 끊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우연히 직접 나의 손으로 다이어리를 제작하게 되었다. 아주 자유로운 방식으로, 팀원들과 뜻을 모아서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다이어리를. 심지어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는 디지털로.

 

 
‘나는 잘 기록하지 못하는 인간인데,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괜찮을까?’
 

 

시작 당시, 아니 그 이후에도 꾸준히 드는 의구심은 어쩔 수 없었다. 보통 이런 건 ‘기록 장인’, ‘다꾸 장인’들이나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만큼 초심자의 시선으로 다이어리를 만들 수 있는 굉장한 기회였다. ‘기록’에 관심을 두고 있던 내가 직접 모두를 위한 기록장을 만들어가는 일이니 말이다. 더불어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다이어리가 되어야 하니 완성만 된다면야 아주 좋은 경험이 되겠단 생각을 했다. 덕분에 내색하진 않았지만, 레이아웃 하나하나를 만들면서 나라면, 학생이라면, 대학생이라면, 운동인이라면 등등 수많은 이들의 관점을 이해하려고 부단히 애썼다.

 

또 그즈음 나는 시선을 좀 더 넓은 쪽으로 돌리게 되었다. 그럼, 대체 다이어리를 쓰는 사람들은 왜, 어떤 점에서 이 기록하는 행위를 지속하고자 하는가. 이들의 기록 동기가 무엇인가.

 

찾아보고 주변에서 들은 바로는 그저 이렇게 정리하는 편이 마음이 편해서인 경우, 즉 성향 자체가 완벽한 태생적 J인 사람들이 있었고, 귀찮지만 다 기록하고 정리해야 성미가 풀리는 이도 있었다. 나는 정리를 해야 성미가 풀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귀찮아하는 편은 확실했기에 이런 이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게끔 유도하는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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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도출된 마법소녀 디자인과 컨셉은 다른 제품보다 유달리 톡톡 튀고 캐주얼한 느낌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호불호야 갈릴 수 있겠지만, 소품샵 여러 곳을 돌아보며 관찰한 결과 분명히 이런 감성을 좋아하는 누군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덧 수없이 많은 수정 절차를 거치며 만들어져가는 레이아웃을 보니, 꾸준함도 꾸준함이지만 한 페이지여도 알차게 기록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작자인 나부터가 매일 같이 기록하진 않더라도 한 번 기록할 때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돌이켜보니 내가 다이어리를 쓰고 나면 미처 기록하지 못해 드문드문 드러난 여백이 아까울 때가 있었다. 그 여백이 주는 허탈함이란. 그러니 그 허탈함이 느껴지지 않게 차라리 기록할 거리를 잔뜩 던져주는 것도 방식이겠다 싶었다. 그제야 시중에 왜 하루 한 질문에 답변하기 같은 책들이 나오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가 만든 다이어리 또한 누군가에게 있어서 일종의 기록 가이드라인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은 소박했지만 완성해 놓고 나니 5가지 버전에 4가지 컬러를 가진 엄청난 바리에이션의 다이어리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럴 계획까진 없었는데, 꽤나 그럴듯한 모양새에 뿌듯함도 밀려왔지만 그만큼 불안하기도 했다. 이건 기질적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긴 했지만, 혹여나 사용자들이 이 다이어리를 사용하면서 불편이나 무용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란 잠재의식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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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한 번 기록장을 만들어 보았으니, 다음 기록장을 만들게 된다면 더 디테일하고 옹골차지지 않을까, 하는 새로운 기대가 금방 생기기도 했다. 한 번 해본 거, 두 번 못 할 게 뭐 있냐는 마음이었다. 또 실제로 작성해 보았을 때 쉽게 하루를 기록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 만족도가 높아 생긴 마음이었다.


현재, 이 프로젝트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펀딩도 열렸다. 펀딩 금액에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자꾸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여튼 이 프로젝트에서 내가 기록에 서툰 P로서 만들어낸 기록법이 과연 몇 명에게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P로서 열망하던 목표에 직접 다다르고자 했던 이 경험은 매우 값지게 남을 것이라고 확신이 드는 시점이다. 곧 마무리 지어질 이 프로젝트의 결과를 기대해 보며,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나의 인생 기록 또한 기대해 본다.

 

 

[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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