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인의 삶으로 깨어지는 본인의 삶 [문화 전반]

글 입력 2024.12.1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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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생애 가장 멋진 연극을 보았다. 그 이름은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당시에는 손상규, 윤나무 배우의 1인극으로 공연했으나, 대중에게 사랑을 받고 1년 후 김신록, 김지현 배우가 합류한다.


처음, 이 연극을 본 충격과 설렘을 잊을 수 없어서 배우들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던 중 작년인 2023년 12월에 필자의 숨을 멈추게 한 게시물이 제작사 '프로젝트 일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다. 연극 <타인의 삶>의 2024년 11월 공연 소식. 더욱 놀라운 점은 손상규 각색, 연출로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에 나가 있으며 한국에서 본 공연이 그리웠던 필자에게는 더없이 기쁜 소식이었다.


2024년이 되고 한국에 돌아와 다시 적응하는 동안에도 연극의 원작인 2007년 개봉한 영화 <타인의 삶>을 봐야 한다는 생각은 놓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를 볼 수 있는 한국 OTT는 존재하지 않았고 유일한 방법은 유튜브에서 구매하여 보는 것이기에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9월 말, <타인의 삶> 재개봉 소식을 듣게 된다. 이것은 기회라는 생각에 유독 공휴일이 많았던 10월 어느 공휴일에 드디어 보았다.


독일 영화이기에 대사만으로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서 한순간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고, 온전히 집중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갖고 있던 생각이 있었는데, 왜 '프로젝트 일다'는 이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 손상규 배우는 이 영화를 각색, 연출하고 있는 것인가였다. 이들의 선택—<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온 더 비트> <벚꽃 동산>—이 늘 필자와 잘 맞았기에 이번엔 먼저 좋을 지점을 파악하고 싶었다.


영화는 놀라웠다. 좋았던 점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예술의 부드러운 힘을 담은 이야기와 내용을 마무리 짓는 결말이었다. 필자의 마음속 결말이 아름다워서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은 영화 목록에 곧장 들어갔고, 확실하지 않은 내용 이해와 놓친 대사들을 알고 싶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책을 찾았다. 감사하게도 책이 존재했다. 무려 2011년, 영화가 개봉한 지 4년 후에 한국에 대본집이 출간되었다. 현재는 절판이라 구매할 수 없지만, 빌릴 수 있는 도서관을 찾아 한달음에 달려가 대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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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인물의 표정과 대사만으로 확신하지 못했던 부분이 지시문을 통해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었고, 연기를 보느라 놓쳤던 대사들이 모두 적혀있었다. 텍스트로 이야기를 곱씹으며 왜 제작사와 손상규 배우는 이 작품을 선택했으며, 관객으로 어떤 부분을 기대하며 연극을 볼지 정리했다.


키워드는 세 개이다. ① 통제된 세상 ② 예술의 힘 ③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력. 각 키워드는 서로 연결되면서 더 이야기의 매력도를 높인다. 국가의 감시 안에서 살아가는 예술가에게 영향을 주고, 감시자 역할에서 반대로 영향을 받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정확하고 냉철한 세상에서 부드럽고 연약한 예술이, 한 사람의 마음에 은밀히 침투하는 게 예술을 만들어가는 사람 입장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이만: 베토벤의 소나타 "열정"에 대해 레닌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계속 듣다간 혁명을 완수하지 못할 거랬지. 이 음악을 듣는다면, 진심으로 듣는다면 계속 악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

 

영화 <타인의 삶> 중

 

 

시간은 빠르게 흘러 드디어 연극 날이 찾아왔다. 함께 연극을 보기로 한 친구는 전혀 내용을 모르는 상태로 만났다. 그에게 간단히 전체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타인의 삶>은 동독 체제하에 맡겨진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비밀경찰 '비즐러'가, 동독의 사랑을 받는 극작가 '드라이만'과 연기를 사랑하고 관객에게 인정받는 배우 '크리스타'의 집을 도청하면서, 그들의 삶에 감응하는 이야기이다.


연극을 본 후 좋은 이야기는 어떤 형태로든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연극이 주는 감동은 영화보다 직접적으로 다가온다고 느꼈다. 알고 있는 이야기더라도 눈앞에 존재들이 대사와 연기의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울고, 웃는 모습을 보니 더 몰입하게 되었다. 연극이기에 관객이 주체적으로 인물의 감정을 따라갈 수 있다는 강점도 크게 작용했다. 연극 <타인의 삶>은 6명의 배우가 거의 모든 순간 무대에 나와 있는 모습이었기에 더욱 각 인물에 집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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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영화가 관객의 성공적으로 흥미를 얻은 흐름을 따라가지만, 이따금 각색된 내용들이 발견되었다. 특정 인물의 대사가 바뀌기도 하고 중요도가 영화보다 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도 존재했다. 연극을 보면서 영화, 책을 보았을 때보다 한 인물의 존재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의 이름은 ‘예르스카’. 드라이만의 연극 대본으로 함께 공연을 올렸던 저명한 연극 연출가이다.


연극을 본 후 그의 대사가 영화를 봤을 때보다 더 많다고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서 그의 대사를 책 속에서 다시 유심히 보았다. 예르스카는 다른 인물의 대사에서 언급되는 것을 제외하면 총 두 번 이야기에 등장한다. 처음 예르스카가 등장하는 장면은 드라이만이 그가 살고 있는 공동 아파트를 찾아가서 나누는 대화 장면이다. 두 번째는 드라이만의 쉰 번째 생일날 축하해주러 그의 집에 와서 나누는 대화 장면이다.


예르스카는 전체 이야기에서 인물 변화의 시작점이 되는 주요한 역할이지만 대사 자체는 적은 인물이다. 그 때문에 처음 영화 볼 때는 그의 존재감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의 인물로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기보다는, 전체 이야기를 심화시키는 존재로 기억되었다. 하지만 연극에서는 전혀 아니었다. 그의 대사가 유독 마음에 와닿아 기록하고 싶었다. 같은 캐릭터라 다르게 인식된 것은 제작자의 의도가 들어간 연출이 아닐지 감히 추측하게 된다.


재밌게도 같이 연극을 본 친구는 예르스카가 등장하는 장면이 흥미롭지 못했다고 말해주었다. 이런 감상평은 단 두 번 등장하는 인물이 중요도가 높은 대사를 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의 대사는 마치 손상규 연출이 관객에게 하는 말 같았다. 연출가가 자신의 자리를 잃으면 더 이상 자기 생각을 연출로 관객에게 전할 수 없는 것과 달리, 계속 어떤 형식의 글로도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극작가 드라이만과 비교하는 대사는 연출이 가진 의존성을 설명해주었다.

 

 

예르스카: 슈발버가 좋은 아이디어를 냈어?

드라이만: 좋은 건 네게서 훔친 거지.

예르스카: 그런 식으로 내가 살아 있는 거지…


예르스카: 다음 생에 나는 작가, 언제나 글 쓸 수 있는 너 같은 행복한 작가가 될 거야. 연출해서는 안 되는 연출가가 뭐겠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지. (그게 어떤 건지 이제서야 확실히 안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반복하듯) 더 이상 아무것도...

 

드라이만: 우리가 널 얼마나 존경하는지 알잖아! 우리 모두는 널 존경하고 있어!

예르스카: 그래, 내가 십년 전에 이룩한 것에 대해 그렇겠지. 아마 더 이상 그러지 않을 거야.


책 <타인의 삶> 52-53쪽, 64쪽

 

 

집에 돌아온 후, 연출가 인터뷰를 보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이 비밀경찰 비즐러인 원작 영화에 반해 손상규 연출가는 동독 체제의 두 예술가,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를 먼저 언급하고 설명하는 경향성을 보인 것이었다. 단지 우연일 수도 있지만, 사실 연극을 본 후 예르스카에 관한 깊은 감상과도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의도적이지 않았더라도 의미 없는 지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가 소개되든 언제나 비즐러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것과 분명 달랐다.


이 같은 분석이 지엽적인 영역일지 몰라도, 예술을 사랑하는 또 한 명의 관객인 필자 또한 무의식적으로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에게 더 관심이 갔다. 영화와 연극에서 그 시선이 되어준 인물이 비즐러였다.

 

연극 연출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연극에서만 할 수 있는, 한 공간에 존재하는 감시자와 감시받는 자의 구도였다. 영화에서는 물리적으로 구분될 수밖에 없던 두 인물이 한 공간에서 보이지 않게 상호작용을 하는 연출은 차츰 일어나는 비즐러의 변화에 설득력을 더해주었다.


다만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사랑하게 된 팬의 입장에서 연극 소개 글에도 쓰여있는 드라이만이 피아노 앞에서 크리스타에게 하는 대사가 연극에서 변한 점과, 홍보 포스터와 달리 도청할 때 쓰인 연극 소품을 헤드폰으로 유지하지 않은 점이 조금 아쉽게 남았다.

 

마지막까지 손상규 연출을 신뢰함으로 온 마음과 정신을 다해 연극을 받아들였고, 필자가 사랑하는 마지막 대사를 내뱉는 배우를 숨 참고 보는 순간, 일 년 남짓 기다린 연극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정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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