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의 취준일지 2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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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학 4년 과정을 마치고 22년 1월부터 24년 12월 현재까지 취업이라는 살얼음판에서 조난당한 만 26세 청춘의 취업일지. 그러다 얼음낚시도 하고 살금살금 얼음을 밟아가며 그럭저럭 얼음판 위에서도 낭만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 이야기.
오늘은 ‘절망’ 그 자체였던 1편에 이어 ‘희망’ 몇 스푼을 넣은 2편, 어느 정도 마실만 해진 인생라떼 한 잔을 대접하고자 한다.
불면의 밤에는 ‘긍정’이 특효약
인생에서의 ‘자신감 그래프’가 있다면, 아마 취업준비를 하는 기간에 그 그래프는 범위 내에서 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거듭되는 불합격 소식과, 조금씩 떨어져가는 잔고의 극적인 콜라보는 정말이지 한 사람을 무너뜨리기 충분한 무언가 이기 때문이다. 지금 느끼는 불안함의 원인이, 미처 몰랐던 나의 부족함과, 과거의 태만, 태생적인 단점 때문인 것 같아 자꾸만 과거의 나를 탓하게 되었다. 더 열심히 자격증 시험을 준비해 볼걸. 더 빨리 직무적성을 찾아 집중해 볼걸. 더 꾸준히 블로그나 유튜브를 운영 해볼걸. 늘 혼자인 것 같은 외로운 취업준비. 탓할 사람이 나밖에 없었기에 나는 그렇게 과거의 나를, 또 나이기 때문에 지독하게도 잘 알고 있는 나의 단점을 파고들면서 스스로를 무너뜨렸다.
그렇게 나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나서야 그런 생각을 차츰 그만두게 되었다. 더 탓하고 스스로를 비난 해봐야, 나는 나일 것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참 서글펐다. 세상사람 모두가 ‘나’라는 한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느라 바쁜 일생을 보내는데, 나는 사사건건 나에게 이렇게 날 선 잣대를 들이밀게 된 게. 그래서 그때부터는 무너진 나를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긍정을 한껏 곁들여서!
세상에는 절대적인 단점도, 절대적인 장점도 없다는 말이 있다. 나는 조급한 성격 때문에 가끔 실수가 있지만, 그만큼 어떤 일이든 빨리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다. 한 분야를 꾸준히 파고드는 진득함은 없지만, 반대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다. 그렇게 따듯한 긍정 100%의 시선으로 내가 가진 성격과 능력들을 다시 정의해나갔다. 그렇게 하니 어떤 것이든 괜찮지 않은 것은 없었다. ‘일단 지금의 나로도 충분히 괜찮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정말 바꾸고 싶은 것들은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랬더니 그전에는 바뀌어야만 하는 것들 투성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것을 넘어 칭찬해 주고픈 기특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모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누군가는 이를 ‘정신승리’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때 체득하게 된 습관적 긍정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도 내가 아주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비기가 되었다. 불합격 소식을 들으면, ‘왜’일까를 생각할 시간의 여지는 딱 제한된 만큼만 주었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와 더 맞는 다른 회사에 입사할 기회가 주어지려나보다!’ 혹은 ‘불합격한 이유 중 봉사시간이 있지 않을까?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었으니, 그래도 하나 얻었다’ 하고 생각하는 것. 표면적으로는 그저 나빠 보이는 일에도 그 반대 면이 존재한다. 눈에 잘 보이는 ‘나쁜 것’은 나에게 짧게만 보여주고, 필사적으로 그 반대 면을 찾는 것을 체화하려고 했다. 나에 대한 긍정, 그리고 나를 둘러싼 외부에 대한 긍정. 이 두 가지를 시스템화하고 난 후에 더 이상은 과거를 후회하고, 또 미래를 불안해하는 불면의 밤을 보내지 않았다.
나만의 1:1 맞춤 힐링 셰프 = 나
취업준비 중 가장 소홀하기 쉬운 것 중에 하나가 건강이다. 촉박한 일정의 지원서 마감일을 지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다 보면 쉽게 자정을 넘기기도, 또 스트레스를 푼다는 명목으로 자극적인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도 했다. 그때는 ‘어차피 취업 준비하는 동안만인데’ , 또 ‘취업이 가장 중요하니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 ‘하루’가 모여 점점 나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좋지 않은 생활습관, 특히 식습관이 이대로 굳어진다면 취업보다 중요한 건강을 잃을 것 같아 건강한 식습관을 위해 노력했다. 그중 하나는 ‘요리’이다. 배달음식은 너무나 즉각적인 행복을 주지만, 자극적인 경우가 많기에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직접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월남쌈을 많이 해 먹었다. 한 쌈 한 쌈 정갈하게 만들 때의 뿌듯함과 쫄깃 아삭한 식감에 제대로 힐링할 수 있다.
요리를 하면서 한 가지 또 좋은 점은 마음을 환기도 하면서 의외의 곳에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재료를 씻고 다듬고 썰고 볶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손 앞에서 잡념이 사라진다. 그리고 먹고사는 일이 가장 고단한 인생에서 ‘내가 나를 먹여 살린다’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다. 내가 나를 위해 정성으로 준비한 ‘한 끼’는 오늘뿐만 아니라, 그렇게 조금씩 쌓여 미래의 일용할 양식이 되기도 한다.
나를 돕기 위해 시작한 봉사활동
취업준비를 하면서 또 가장 크게 변화한 점은 봉사활동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조그만 원룸에서 하루종일, 자기소개서를 쓰고 인적성 공부를 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때가 많았다. 누구와 선뜻 만나자고 말하기도 꺼려졌기 때문에 그렇게 한 달 중 25일을 집에만 있는 때도 있었다. 사람이 그리웠고, 바깥공기가 그리웠다. 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노력들이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인지, 너무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지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봉사활동의 문을 두드렸다.
각종 사회복지시설에서의 프로그램 보조 봉사와 도심 플로깅, 손 편지 답장 봉사와 또 뜨거운 여름의 햇빛 아래 고추를 수확했던 농촌 농활봉사까지. 4개월 만에 100시간의 봉사시간을 달성할 만큼, 나는 그 누구보다 봉사에 진심이었다. 봉사활동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따듯한 마음을 지닌 누군가와 만나서 좋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을 하고.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나의 현 상황과, 감정에 대해서 최대한 담담하게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사진에서처럼, 봉사자에게 지급되는 간식도 식사도 내게는 너무나도 큰 일상의 선물처럼 느껴졌다. 봉사자로서 보내는 시간은 나에게 일정한 역할과, 책임감 그리고 예상보다도 큰 보람과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오랜 시간 혼자였던 내가 늘 필요로 하던 것들이었다.
또,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계기이도 하다. 유난히 길었던 올해 여름. 경기도 양평의 한 고추농장으로 농활 봉사활동을 다녀왔었다. 칫솔을 깜빡 해 슈퍼에 다녀오는 김에 눈에 띄었던 초코파이 하나. 다른 참가자들도 허기질까 있는 현금을 털어 머릿수대로 초코파이를 사서 모두 나눠먹었던 기억이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금방 정을 붙일 만큼 사람들을 좋아하고, 또 마음 쓰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늘 산만하다고 생각했던 나지만, 몇 시간 동안 앉아서 고추 따는 일에 집중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아 나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기도 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취업의 현실 속에서 ‘이대로 무너질 순 없다’가 아니라,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김에, 다시 짓자’를 택했던 나. 그렇게 처음부터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나는 원래의 것보다도 훨씬 안정적이고 또 마음에 드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취준일지는 결국 ‘취업’이라는 그럴듯한 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이 결말에 너무나도 만족한다. 소복이 내리는 눈에, 평소보다 예쁘게 말아진 월남쌈에, 나의 생각과도 너무나도 닮아있는 책의 한 구절에도 행복하기 때문에. 그동안 ‘취업을 하면 너무너무 행복하겠지’ 하고 생각해 왔다. 물론 그간의 숙원과도 같은 일이기에 이뤄진다면 좋겠지. 하지만 그보다도 나는 내가 매일을 편안하게 잠들게 하는, 내일의 작은 기대를 갖게 하는 일상의 행복들에게 더 많은 삶의 지분을 내어주고 싶다. 모든 것이 습관인데, 행복이라고 왜 그렇지 않겠는가.
햇수로는 3년간, 취업은 나의 새해 목표를 독점해 왔다. 이만 하면 많이 한 것 같다. 2025년의 새해 목표는 다른 것으로 하려 한다. 아직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더 확실하고, 더 의미 있는 것으로. 또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대는 무언가로.
[채혜인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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